지금의 경제위기는 일반적으로 체감하는 것 이상으로 심각한 것 같습니다. 주위의 경제주체들이 한탄소리를 퍼붓는 것도 여느때보다 높지만 금년중반쯤이면 풀리기 시작할 것이라고 전망했던 경제전문가들과 경제정책주관자들의 소리가 쑥 들어가고 금년말에 가서야 경기가 회복의 조짐을 보일지 모르겠다는 예측이 가장 낙관적인 소리로 나오는 것은 경제위기의 깊음을 나타냅니다.

공식적인 경제지표들이 이를 웅변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미국경제의 성장(GDP)이 작년 마지막분기에 -0.2%에 이어 -3.8%로 하락했고 미국연방준비은행수장인 버낭키의 예측은 2009년 전해에 -1.3%로 떨어질 것으로 비관할 정도입니다.

일반국민들의 경제생활에 직접 와 닿는 일자리의 상황도 매우 비관적입니다. 1월 실업율이 1970년-1980년대 미국경제가 몸살이를 했던 스태그플레숀 당시 이후 가장 높은 7.6%를 기록했고 버낭키는 금년에 8.8%까지, 어느 전문가는 2자리수까지 올라갈 것임을 내다보고 있을 만큼 일반국민경제상황이 극히 어둡습니다.

1930년대 대공황이후 가장 극심한 것으로 진단되고 있는 금번경제위기는 어디에 연유한 것입니까? 이는 누구나 주장하는 바와같이 재정금융시장의 위기 및 불안정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실물국민경제가 활발하게 돌아가는 데에 필요한 윤활유의 역할을 하는 재정금융시장이 불안정하게 요동을 치게되어 윤활유의 공급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재정금융시장의 위기는 뉴욕증권시장의 다우죤스주식지수가 잘 말해 줍니다. 2007년 10월 14,000대에서 지난주에 7500대로 폭락했습니다. 주식시장자본기치의 절반정도가 1년4개월만에 경기바람과 함께 사라진 것입니다.

그러면 재정금융시장의 위기는 왜 일어나는 것입니까? 모든 재정금융을 뒷받침하고 있던 자산가치가 거품같이 폭등했다가 파열했음이 하나의 연유이고, 신용이 폭증했다가 위축됬음이 다른 연유입니다. 자산가치의 거품파열은 재정금융의 밑바닥을 약하게 만들었고, 신용붐의 위축은 가정과 기업의 도산을 낳았고 낳고 있습니다.

자산거품파열과 신용붐위축이 재정금융시장에 남겨 놓은 것은 산더미같은 빚(부채)뿐입니다. 재정금융시장이라고 하는 것은 벗기고 보면 ‘빚’을 상품으로 포장해서 사고 파는 장터를 의미합니다. 모든 경제활동에는 가정이든 기업이든 정부이든 빚 즉 재정금융이 없으면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일 수 없읍니다. 즉 빚이 없이는 일반국민경제 전체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문제는 빚의 존재여부에 있는 것이 아니고 채무자가 부담할 수 있을 정도로 적절하냐하는 빚의 크기에 있습니다. 빚의 크기에 관련된 적정성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아직 없지만, 빚이 부담능력을 훨씬 뛰어 넘을 정도로 확장되어 있으면 재정금융시장에 파탄이 오게 되고 연이어 실물국민경제에 위기와 위축을 결과히게 됩니다. 지금의 경제위기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통계에 의하면 미국경제의 사적 빚은 2000년에 22조달러이었든 것이 2007년 41조달러로 거의 2배가 들었습니다. 빚이 7년 사이 2배로 증가한 것은 경제활동이 활발했던 것을 나타내는 것이겠지만 부담능력의 지표인 국내총생산 (GDP) 에 대비해 보면, 2000년에 GDP의 2.2배이었던 것이 2007년에는 거의 3배로 폭등한 것이 얼마나 미국경제의 사적 빚이 부담능력을 뛰어 넘어 폭증했는지는 알 수 있습니다.

골드만삭스의 계산에 의하면, 지금 미국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는 불실융자빚이 5.7조달러로 GDP의 40%에 육박하고 있다는 통계는 이를 증명합니다.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지금의 경제위기, 더 나아가 재정금융위기를 푸는 열쇠는 엄청난 사적 빚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겠습니다. 경제전문가들의 논쟁을 차치하고 성경에서 그 방법론을 2가지 찾아 불 수 있겠습니다. 하나는 빚처리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빚에 대한 기본자세입니다.

성경에서 가르쳐 주는 빚처리방법은 빚의 탕감입니다. 예수님은 많은 예화를 통해서 빚의 탕감을 용서와 사랑의 표현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가운데에도 원문에 의하면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자(빚진자)를 사(탕감)하여 준 것 같이 우리죄(빚)를 사(탕감)하여 주옵시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실제 재정금융위기구제정책으로 여러 가지 빚처리방법을 고안할 수 있겠지만 불실융자빚을 한 곳으로 몰아 정리하는 ‘Bad Banks'정책과 그래도 건실한 빚을 몰아 재정금융시장을 살리는 ’Good Banks'정책이 늪같은 지금의 재정금융위기를 극복해 나갈 수 있는 빚탕감정책이라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빚에 대하여 경제주체들이 간직하고 있는 기본자세입니다. 자본시장경제를 통한 국민경제의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윤활유를 공급하는 재정금융시장의 활성화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재정금융시장이 활성화하다는 것은 빚이 많이 만들어 지고 온전하게 잘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빚이 온전하게 잘 돌아가기 위해서는 경제주체들, 즉 채무자들과 채무관리자들이 빚에 대한 기본자세를 온전하게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빚에 대한 기본자세와 관련해서 바울은 “우리가 빚진자로되”라고 우리는 모두 빚진자라는 정체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빚진 자는 육신에게 빚을 져서 육신대로 사는 것이 아니고, 영에게 빚을 져서 영적으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육신에게 빚을 져서 육신대로 산다는 것은 탐욕으로 빚을 져서 탐욕대로 살아 간다는 뜻입니다. 소비자들은 시험에 들게 할 정도로 과다한 소비를 하였고, 재정금융관리자들은 폭리를 얻기 위하여 복잡한 재정금융파생상품을 마구 만들어 냈습니다. 이러한 탐욕이 개인가정과 재정금융분야의 빚을 불실융자빚이라는 중독성쓰레기를 재정금융시장에 쌓이게 한 것입니다.

영에게 빚을 져서 영적으로 산다는 것은 사랑의 빚을 지고 이웃사랑의 삶을 산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웃사랑이란 무엇입니까? 경제행위가 이기적임에 기초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타적이며 전체적인 선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경제행위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경제정책담당자들은 빚탕감이라는 자세로 Bad Banks와 Good Banks의 정책으로 빚을 관리/처리하고, 경제주체들은 육신적인 탐욕이 아니고 영적인 사랑으로 빚진 자들이라는 정체성과 기본자세를 간직하고 경재의 삶을 영위하게 된다면, 지금의 경제위기는 극복하게 될 것이고, 평강과 번영이 약속될 것입니다.

(백 순, 미국노동성경제학자/지스카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