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아신대학교)
(Photo : ) 신성욱 교수(아신대학교)

[1] 내일 주일은 서울 모 교회에서 설교와 함께 특강을 하는 날이다. 그 교회에서 설교한다고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왜냐하면 신대원 1학년 말, 교육전도사 사역을 위해 지원했다가 떨어진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때 교육전도사 한 명을 뽑는데, 2학년 선배 한 명과 내가 1차로 최종 합격해서 면접 보러 처음 방문한 적이 있다. 계산해 보니 그때 가보고 38년 만에 두 번째 방문이다. 당시 담임 목사님은 부흥회 가셔서 계시지 않았다.

[2] 당회원 장로님들과 당회실에서 면접을 봤다. 선배가 먼저 들어간 후 5분 만에 나와서 나랑 인사 나눈 후 사라졌다. 그다음 내가 들어갔는데, 질문이 딱 하나였다. “성경을 몇 독 했나요?”라는 질문이었다. “정확하게 세어보진 않았지만, 한 50독은 한 거 같다”라고 대답했다. “많이 읽으셨군요. 기도 한 번 해주세요.”라는 대답에 기도한 후 기숙사로 돌아왔다.
그 교회는 같은 반 친구네 교회여서 몇 주 뒤 그로부터 내가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3] 선배가 최종 합격한 것이었다. 이유가 궁금했다. 친구가 답해줬다. 선배는 성경을 100독 한 사람이었단다. 충격적이었다. 순간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 지금도 기억난다. “이 나이에 성경 50독을 한 나도 미친놈이지만, 그놈은 더 미친놈이네!”
나로선 초유의 참을 당한 날이었다. 덕분에 더 좋은 교회와 담임 목사님을 만나 유학의 꿈을 키우다가 학위를 마치고 돌아왔다.

[4] 하지만 그때 입은 상처가 사라진 건 아니었다. 시카고에서 유학할 당시, 나를 떨어뜨렸던 그 교회 담임 목사님 아들이 모 교회에 담임으로 부임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분과 교제하며 호형호제하던 어느 날, 신대원 시절의 내 아픈 추억을 그분께 얘기한 적이 있다. 그때 그분이 이렇게 말했다. “바보 같은 장로들이 인재를 몰라봤군!”
내일 그 교회에서 설교를 한다.

[5] 그동안 꼭 한 번 거기에 가서 설교하는 날이 오기를 학수고대했었는데, 그 꿈이 마침내 이뤄진다. 그래서 내 가슴이 이리도 뛰는 것이다. 물론 원수 갚는 심정은 결코 아니다.
성경 100독을 한 선배에게 밀려 떨어진 사실을 안 그날, 그날을 기점으로 난 이전보다 더 지독하게 성경 읽기에 몰두했다. 신대원 시절, 그 많은 과목의 강의를 듣고 페이퍼를 쓰고 히브리어와 헬라어 시험을 매주 치면서도 하루에 성경 95장씩을 읽었다.

[6] 하루 목표를 채우기 위해 잠을 몇 시간 자지 않은 채 수업도 하고 페이퍼도 쓰고 시험도 치고 했다. 그 결과 지금 성경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었다. 그날의 실패와 아픔이 전화위복이 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그 교회에 다시 한번 가서 설교해 보고 싶었던 게다.
‘주일학교 교사 헌신예배’인데, 교사들을 대상으로 설교도 하고 특강도 한다.
어떤 본문으로 설교할 것인가 기도 끝에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로 정했다.

[7] 이미 준비되어 있는 설교문이긴 하지만, 새롭게 만드는 심정으로 본문을 다시 들여다보고 묵상했다. 혹시라도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한 내용이 있는지 살펴보다가 그동안 캐내지 못한 보화 하나를 새롭게 발견했다. 그 기쁨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한 달란트 묻어두었다가 주인에게 한 달란트 가지고 나와서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는 책망과 저주를 받은 청지기가 있다.

[8] 그와 2달란트와 5달란트를 남긴 청지기의 차이가 뭘까? 두 청지기는 자신들의 재능에 맞게 최고를 맡긴 주인을 위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땀 흘리고 수고해서 배나 남겼다. 하지만 한 달란트 받은 청지기는 주인이 맡긴 것으로 장사하지 않고 땅에 묻어두었다가 가지고 나왔다. 이유가 뭘까? ‘비교 의식’ 때문이다.
주인에 대한 잘못된 착각으로 인해 자기의 사명까지 착각해 버린 것이다.

[9]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마 25:16-17). 여기에 “바로 가서”라는 말이 있다. 주인에게 장사 밑천을 받은 후 곧바로 땀 흘리고 수고해서 장사한 것이다. 반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다”(18).
여기에 우리말로 똑같이 번역된 단어가 있다.

[10] “가서”라는 말이다. 하지만 원어로 보면 2달란트와 5달란트 받은 사람에게 사용된 “가서”라는 헬라어와 1달란트 받은 사람에게 사용된 “가서”라는 헬라어가 다르다. 앞에 단어는 “πορευθεὶς”이고 뒤에 단어는 “ἀπελθὼν”이다. 이걸 원어와 문맥에 맞게 새롭게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사명의 길로 가서’(πορευθεὶς)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마 25:16)

[11]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사명의 길에서 벗어나서’(ἀπελθὼν)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마 25:18).
“사명의 길로 가서”와 “사명의 길에서 벗어나서”의 차이가 보이는가? 전후 문맥과 원어의 차이가 의미의 차이를 말해주고 있었다. 새로운 발견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묵상하면 할수록, 파면 팔수록 새로운 보화들이 쏟아짐을 또다시 체험한 하루였다.

[12] ‘성경 100독’이나 ‘성경 50독’이 중요한 게 아니다. 한 구절을 읽더라도 제대로 된 의미를 파악하고 읽느냐가 중요하고, 그보다 중요한 건 깨닫고 파악한 지식과 진리대로 순종하여 ‘열매 맺는 삶’이다. 변화 없는 지식은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성경도 사랑하고 순종도 사랑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로 날마다 새로워져야 한다. 아울러 내일 내가 전하는 말씀이 교사들에게 큰 은혜와 도전의 시간으로 체험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