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내전 이후 재편의 기로에 선 국가의 미래를 두고, 시리아 토착 기독교 공동체와 활동가들이 고대 언어 아람어(시리아어)의 헌법적 보호를 촉구하고 나섰다. 그들의 목소리는 단순한 언어 보존을 넘어 정체성과 존재 자체를 지키기 위한 절박한 요청으로 읽힌다.

2011년 발발한 시리아 내전은 국가를 깊은 혼란 속으로 몰아넣었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민족과 종교를 기반으로 한 무장단체들이 등장했다. 기독교 신자들이 중심이 된 시리아군사평의회(MFS)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시리아민주군(SDF)의 일원으로 이슬람국가(IS)와의 전투에 참여해 왔다.

현재 이들 조직과 정치 세력은 이슬람주의 단체 HTS가 주도하는 과도 정부와 함께 새로운 헌법 제정을 통한 국가 재건 논의에 참여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시리아어를 지키려는 움직임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인권운동가 사르다르 샤리프(Sardar Sharif)는 시리아어 출판사 기고문을 통해 "시리아어를 헌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고대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다음 세대에 계승하기 위한 근본적인 조치"라고 강조했다. 시리아어는 예수 그리스도가 사용했던 아람어의 후대 형태로, 중동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언어 유산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샤리프는 이어 "언어에 대한 보호와 공적 인정은 단지 문화 보존을 넘어, 시리아 내 다양한 공동체 간 공존을 강화하는 핵심 요소"라고 지적했다. 언어가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공동체의 기억과 정체성을 담는 그릇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현장에서는 이미 '지워짐'이 진행되고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활동가 단체 '행동을 위한 요구'(ADFA)는 최근 성명을 통해 시리아 북동부 하사케 지역에서 공공 표지판에서 시리아어가 사라지고 아랍어와 쿠르드어만 남게 된 현실을 언급했다.

이들은 "겉으로는 행정적 변화처럼 보일 수 있으나, 토착민들에게는 존재가 서서히 지워지는 경험"이라며 "무기도 유혈 사태도 없지만, 분명한 말살의 과정"이라고 비판했다.

ADFA는 특히 유럽연합(EU)에 직접적인 행동을 촉구했다. 이들은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Ursula von der Leyen) 집행위원장을 향해 "시리아의 미래와 개혁을 논의하면서 한 민족의 정체성이 조용히 사라지는 상황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문화의 말살은 결코 개혁이 될 수 없으며, 이는 돌이킬 수 없는 상실로 이어진다"며 시리아 토착 공동체의 권리 보호를 위한 국제사회의 개입을 요구했다.

이들의 문제 제기는 단지 한 언어의 존폐를 넘어선다. 전쟁 이후 재건이라는 이름 아래 진행되는 변화 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남고 어떤 기억이 사라질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폐허 위에 세워질 새로운 시리아가 과연 다양성을 품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지, 아니면 침묵 속에서 또 하나의 역사와 공동체가 사라질지-그 갈림길에서 언어는 지금 마지막 신호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