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아신대학교)
(Photo : ) 신성욱 교수(아신대학교)

[1]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부활 주일이다. 이날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Happy Easter!”라고 인사한다. 하지만 이 용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사용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이기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Easter’라는 단어는 고대 게르만 신화에 나오는 ‘에오스트레’(Eostre)라는 여신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에오스트레는 ‘봄과 빛의 여신’으로, 고대인들은 봄의 분점을 기념하며 이 여신을 숭배하는 축제를 열었다.

[2] 기독교가 전파되는 과정에서 이 축제 기간이 예수님의 부활 기념 시기와 겹치게 되자, 자연스럽게 그 명칭을 가져다 쓰게 된 것이다.
따라서 ‘Easter’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부활의 본질보다는 ‘이스터 버니’(토끼)나 ‘이스터 에그’(달걀) 같은 풍습이 더 부각되고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 토끼와 달걀은 원래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이교도 축제의 요소들이었다.

[3] 이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승리’라는 부활의 핵심 가치가 가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다. 성경 원문(헬라어)은 부활절을 ‘파스카’(Πάσχα)로 기록하고 있다. 이는 히브리어 ‘페사흐’(פסח)에서 유래되었으며, 구약의 ‘유월절을 의미한다. 따라서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원받은 사건이 예수님의 부활로 완성되었다는 신학적 의미를 담기에는 ‘Easter’보다는 ‘Pascha’나 ‘Resurrection’이 더 적합하다.

[4] 그래서 많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용어의 세속화를 피하고 부활의 의미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 부활절을 다음과 같은 용어로 수정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Resurrection Day”, “Resurrection Sunday”, “Pascha.”
나는 부활절에 그리스도인들이 나눌 수 있는 인사 용어로 “Happy Resurrection Day!”를 추천하고 싶다. “행복한 부활절 되세요!”란 의미로.

[5] 부활 주일에 ‘빈 무덤’(Empty tomb)이란 제목으로 설교하는 이들이 꽤 많다. 그런데 이 또한 잘못된 설정임을 알지 못한 채 사용하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으로 안다.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마리아의 얘기를 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 무덤으로 찾아왔다. 그들이 무덤 안에 들어가서 본 광경은 결코 빈 무덤이 아니었다. 부활 못지않은 기적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무덤이었기 때문이다.

[6] 예수님이 사라지고 없다는 점에선 ‘빈 무덤’이 맞겠지만, 그분이 남겨놓고 떠나신 무덤 안은 부활에 대한 소망과 확신을 주기에 충분한 흔적이 놓여 있었음을 놓쳐선 안 된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찾아가신 장면이 나온다. 예수님처럼 잡혀서 죽을까 봐 두려운 나머지 제자들은 문을 걸어 잠근 채 숨어 있는 곳에 예수님은 노크도 없이 방 안으로 들어가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이 이전 몸과 달랐다는 얘기다.

[7] 그렇다. 그분은 부활의 변형체를 입으셨다. 그렇다면 머리 부분은 수건으로 목에서 발끝까지는 세마포로 감쌌던 그분의 시신은 부활하시자마자 자신을 감싼 수건과 세마포를 벗겨내지 않은 상태에서 몸만 쑥 빠져나오셨다는 말이다. 이전 한글 개역 성경에서처럼 “개켜놓거나”, 풀어헤친 채 사라지신 것이 아니란 말이다. 개역 개정이 수정한 번역대로 목 부분이 잘린 채 수의 안의 내용물인 시신만 사라진 채 원래 그대로 고스란히 놓여 있는 상태였다.

[8] 이 모습을 무덤 안에 들어간 베드로와 요한이 보았다 상상해 보라.
허물 벗고 새 생명으로 탈바꿈한 매미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없지만, 그 껍데기는 현장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런데 그 껍데기 등에는 새로운 몸이 터치고 나온 구멍이 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목격했던 수의에는 예수님이 터치고 나온 구멍조차 보이질 않았을 것이다. 그분의 몸이 이전과는 다른 변화된 몸이었기 때문이다.

[9] 부활도 불가능한 기적이지만, 누가 수의를 풀어주지 않은 상태에서 몸만 쏙 빠져나오는 일 또한 놀라운 기적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
예수님의 부활은 나사로의 부활과는 차원이 달랐다. 나사로는 이전 몸으로 다시 살아났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수건과 세마포에 싸여 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10] 하지만 예수님의 상황은 그와는 전혀 다른 경우였다. 그럼에도 ‘빈 무덤’이란 제목으로 설교하는 게 옳은 것인지 생각해 보라. 그건 마치 ‘앙꼬 없는 찐빵’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처럼 믿기 어려운 광경을 목격하고 한동안 감격에 빠져 있었을 베드로와 요한을 상상해 보라. 예수님이 입으신 그 부활체는 장차 경험할 우리 미래의 모습 아닌가. 이 가슴 벅찬 부활절에 우리 모두 이렇게 인사해 보자. “Happy Resurrection 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