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가스 갈보리장로교회  백인호 장로
(Photo : ) 라스베가스 갈보리장로교회 백인호 장로

군생활을 마치고 신입 사원 시절이다.목회자가 된 대학동창인 C씨는 학창시절에 꽤나 나와 친하게 지낸 친구였다. 퇴근후 그는 서울 한 복판에 위치한 명동 나의 사무실을 종종 방문해 우리는 명동 중심가 골목에 널려 있는 식당겸 술집이나 맥주집에서 한잔 하면서 피곤을 달래가며 스트레스를 풀면서 세상 돌아 가는 이야기에 열변을 토한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시끄러운 소음 가운데서도 성경 이야기를 하며 예수를 믿으라고 나에게 복음을 전한다. 그는 덩치에 어울리게 그의 큰 목소리도 주위가 떠나갈 정도로 우렁차다. 예수를 믿으라고 열변을 토할때 마다 나는 이 분위기가 복음을 전할 분위기가 아니니 다음에 이야기 하자고 하며 한발 뒤로 물러서곤 했다.

나도 어린 중학시절 한때 예수님을 믿은 적이 있었다. 새해를 맞이하여 온가족이 모여 제사를 지낸다고 야단 법석인데 나는 제사는 우상숭배라고 하며 아침밥도 안먹고 집을 나가버린 적도 있다.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졌다고 나는 믿었기에 그 친구의 열변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주고 이해하고 수긍을 했다.

이제 세상은 많이 변했다. 상상만 하던 로봇이 판치는 세상이 왔다.제품을 조립하고 검사하는 일 ,물건을 옮기고 분류하는 일, 집청소 음식 서빙이나 , 노인이나 환자를 도와주고 있다. 정밀한 수술까지 돕는 일 까지 하고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왜 로봇은 세상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 곁으로 가게 하지 못할까. 인간의 탐욕과 악을 왜 소멸하지 못할까. 기술이 모자라서 일까 .아니면 불가능한 일일까.인간의 능력은 한계가 있어서 일까.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시 흙으로 사람을 만들고 생기를(Living soul)불어 넣어 만들었다고 한다.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로 창조된 인간은 단순한 로봇이 아니다. 선택할수 있는 자유를 가진 존재로 창조 되었다. 하나님은 본질이 사랑 이시므로 사랑을 나누며 관계를 맺기위해 인간을 창조 하셨다.인간은 아무리 좋은 말을해도 본인이 받아 드리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 존재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인간은 혼자가 아니라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서로 관계가 없는 상황에서 복음이 전해 질수 있을까.내가 상대방을 알고 상대방이 나를 알때 관계가 깊어지는 것이고 그의 말을 경청하게 된다. 관계가 없다는것은 사랑이 없다는 말과 무관하지 않는다. 상대방에 대한 무관심에는 절대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교회가 신앙고백과 교리가 있다 하더라도 사랑의 실천이 없다면 복음이 전해 지겠는가. 교회를 사랑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교회 건물을 잘 가꾸고 예배를 성대한 의식을 가지고 웅장하게 예배를 드린다는 뜻인가. 헌금을 많이 낸다고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것일까.교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이다.서로 이해하고 용서하고 섬기려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말씀을 배우고 기도하고 격려 하면서 신앙적으로 함께 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교회내에 성도들간에 관계가 없다면 사랑도 없다. 소리나는 꽹괴리에 불과하다. 사랑은 교회내에 성도들간에 관계속에 온전하게 묶는 띠의 역활을 한다 골3:14

관계속에 타인이 무슨생각을 하는지 어떤 환경에 처했는지 파악이 가능하며 이웃을 사랑할수 있는 배려의 정신이 나오게 되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도와주고 몸이 불편한 사람은 격려해 주고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고 힘들어 하는 사람에겐 따뜻한 말한마디 와 격려을 해주며 함게 나누는 사랑의 띠가 든든해야 복음이 전파 되지 않겠는가.

새신자가 몇번 출석했다가 포기 하는 경우도 있다. 잘 나오던 성도가 갑자기 출석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당사자도 반성해 볼 문제지만 교회내 각부서의 점검과 리더쉽의 문제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기업에 있어서 이윤의 극대화와 조직 성과를 높이는 핵심 요소가 상하 의사소통이 핵심 요소인것 같이 복음 전파의 효휼성을 창출하기 위하여 성도들간의 의사소통이 필요한것은 두말할것도 없다.

인간에게는 자유의사 결정권이 있고 감정을 소유한 존재이다. 감정 조절을 할수있는 존재 이므로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은 후에 준비된 복음전파는 더욱 설득력이 있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로 본다면 교회의 친교 봉사부의 역할이 인간의 감정 조절을 사로잡는 중요한 부서로서 목회자의 설득력에 못지 않게 중요한 부서이다.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구세주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셨다. 교회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전하여 죽어가는 생명을 구원해야 하는 공동체로서 복음 전파의 의무가 부여되여 있다. 진정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복음전파를 위하여 성도들 간에 배려의 정신으로 사랑의 띠를 단단히 두루고 복음을 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