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월 15일은, 맥아더 장군 인천상륙 작전 전승 75주년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나는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 장군 동상 앞 광장 기념식에 마지막 축도 순서를 맡았다. 전승 기념식에는 미국 대리 대사를 비롯해, 각국의 대사들, 그리고 예비역 육군 대장을 비롯한 여러 자유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시민들이 맥아더 장군 동상 앞에 함께 했었다. 그 행사를 주관한 것은, 한·미 맥아더 장군 기념 사업회와 임마누엘 재단이었다. 기념식 행사는 기독교적으로 메시지와 기도가 있었고, 축도로 행사의 모든 순서가 마무리 되었다.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 작전의 성공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유대한민국은 75년 전에 없어지고 공산화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니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 작전은 우리나라를 살린 기적의 전략이었다. 그의 과감한 결단, 지휘력, 그리고 불가능에 가까운 성공 때문에 세계 전쟁사에 길이 빛날 작전이었다. 물론 맥아더 장군을 불러들인 것은, 6·25전쟁 중에 이승만 건국 대통령의 탁월한 지도력이었다.
사실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 작전에 대해 당시 미 합참의 평가는 거의 불가능으로 판정했고, 성공 확률은 1-5%라고 했다. 그 이유는 조수간만의 차가 세계 최고로 9m~10m였고, 상륙이 가능하다 해도 그 시간은 하루 두 번, 30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거기다 좁은 수로와 암초로 이루어진 해안 지형, 그리고 상륙한다 해도 서울까지 시가전을 치러야 했었다. 그래서 당시 해병대 고위 장군들은 브리핑에서 "이것은 '자살 작전(Self-destractive mission)'이다"라고 했단다. 하지만 맥아더 장군은 평생 기독교 세계관을 가졌을 뿐 아니라, '전투에서 기도하는 장군'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의 기도는 이랬다.
① 작전의 성공이 하나님의 도우심에 달려있다는 고백
② 병사들의 안전을 위한 간구
③ 한국을 공산주의 침략에서 지켜달라는 기도
④ 정의로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달라는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평소 맥아더 장군은, 이런 말을 자주 했었다. "나는 인간의 지혜보다 더 높은 능력에 의지하여 이 작전을 수행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의 자유를 지켜내야 한다"고 늘 말했다.
그렇게 그는 자유와 인권은 '하나님이 주신 가치'라고 믿었을 뿐 아니라, 한국을 공산주의에 넘겨줄 수 없다는 강한 신념을 가졌었다. 그러니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맥아더 장군의 기도가, 6·25 참극에서 오늘의 자유대한민국을 살린 것이다. 기념식이 끝날 즘에 순서 맡은 사람들에게 6·25 참전 용사들에게 주는 메달이 수여되었다. 메달에는 'The Korean War Veterans Memorial, Thanks and Honor'라고 쓰여 있었고, 육각형 별 모양의 붉은색 무늬 주변을 황금색으로 도안 된 멋진 메달이었다. 그리고 메달의 끈은 참전 16개국의 국기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금메달의 특징은 변질이나 변색이 없고, 자자손손 대물림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나도 기념식에 순서를 맡았다고 해서 이 귀한 메달을 받았다. 그런데 6·25 참전 용사들에게 주는 메달은 아주 특수하다고 했다. 아직도 한국은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라, 휴전 상태이다.
그리고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고, 군사 분계선을 가로지르는 남과 북이 각각 2km씩, 총 4km의 비무장 지대가 155마일까지 뻗어 있다. 동해 고성에서 서해 김포까지다. 나는 55년 전, 군종장교로서 휴전선 철조망이 있는 부대에 근무한 적이 있다. 그런데 DMZ 자체는 무장 금지 구역이지만, 그 주변은 철책, 감시장비, 지뢰, 그리고 철조망이 겹겹이 싸여 있다. 세월이 많이 흘러서인지 철조망은 녹슬었고, 격전지에는 수많은 탄피가 널부러저 있었다. 그런데 분단의 상징인 녹슨 철조망과 탄피를 수거해서, 포스코의 용광로에서 그것을 녹여냈다. 그리고 그 쇳물은 여러 번의 정제 과정을 거쳐서 아름다운 메달을 만들었다고 한다. 6·25 참전 용사들에게 주는 자랑스러운 메달이고, 영원히 잊지 못할 값진 메달이었다.
1950년 북한 공산군의 남침으로 우리 강토는 완전히 망가졌다. 당시 이름도 잘 모르는 나라, 지구의 어느 곳에 있었는지도 모르는 나라를 살리기 위해, U.N 산하 16개국의 젊은이들이 이 땅에서 생명을 바치고 피를 흘렸다. 또 우리나라에 군대는 파견하지 못했지만, 수많은 나라들이 구호품을 보내왔고, 지원금을 보냈다. 캄보디아 같은 나라도 쌀과 돈을 보냈다. 6·25 때 U.N 연합군이 우리를 돕지 않았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이 지구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필자는 그때 10살이었는데, 부모님을 따라 산을 넘고, 내를 건너 포항에서 울산 방어진까지 3개월 동안 고된 피난 생활을 했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녹슨 철조망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폐기물 상태였지만, 이승만 대통령의 초인적인 전후 수습,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로 다시 일어섰고, 신실한 주의 종들이 부르짖는 '기도'와 불꽃처럼 외치던 '말씀'과 '성령'의 불에 녹아져 오늘날 찬란하게 빛나는 선진국이 되었고, 금메달의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23: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