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나무에게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나무를 통해 인생을 배웁니다. 인생의 계절을 배웁니다. 생존하고 성장하는 원리를 배웁니다. 홀로 서서 자리를 지키는 고독을 배웁니다. 사람들의 눈에 띄든 띄지 않든, 맡겨진 자리를 조용히 지키는 성실함을 배웁니다. 머물러야 할 때와 떠나야 할 때를 배웁니다. 헤르만 헤세는 나무가 자신에게 설교자였다고 말합니다. “나무는 내게 언제나 사무치는 설교자였다. 나무와 이야기할 줄 아는 사람, 나무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은 진리를 경험한다. 나무는 교훈이나 비결을 설교하지 않는다. 삶의 가장 근원적인 법칙을 노래할 뿐이다.”
헤세에게 나무가 설교자였다면, 제게 나무는 스승입니다. 그래서 나무에 관해 쓴 책을 만나면 스승을 만난 듯한 마음이 듭니다. 이번에 제가 만난 책은 마틴 슐레스케의 《가문비나무의 노래》입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아름다운 울림을 선물하는 바이올린을 만드는 가문비나무(spruce)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고지대에 빼곡히 자라는 나무들은 바이올린 제작자에게 가히 은총입니다. 이런 곳에 곧추선 가문비나무는 아주 위쪽에만 가지가 나 있습니다. 밑동에서부터 40-50미터 까지는 가지 하나 없이 줄기만 곧게 뻗어 있습니다. 바이올린의 공명판으로 사용하기에 이보다 좋은 나무는 없습니다. 저지대에서 몇 년 만에 서둘러 자란 나무는 고지대에서 200-300년 넘는 세월 동안 서서히 자란 가문비나무와 견줄 수 없습니다. ... 수목 한계선 바로 아래의 척박한 환경은 가문비나무에게는 고난이지만, 울림에는 축복입니다. 메마른 땅이라는 위기를 통해 나무는 아주 단단해지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목재가 울림의 소명을 받습니다.” (마틴 슐레스케, 『가문비나무의 노래』, 니케북스, 17쪽)
아름다운 소리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사람도 쉽게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 견뎌낸 시간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나무가 생존하고 성장하려면 적절한 온도와 수분, 그리고 토양이 필요합니다. 수목 한계선이란 기후 조건이나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나무가 더 이상 자라기 어려운 경계선을 말합니다. 고도가 높아지거나 위도가 높아질수록 기온은 낮아지고, 강풍과 혹독한 추위 속에서 나무는 살아남기조차 쉽지 않습니다. 그런 환경을 견디며 살아남은 나무는 작고 기이한 모습으로 자랍니다.
수목 한계선에서 자란 나무들은 바람에 눌려 마치 무릎을 꿇은 듯한 모습으로 자라기도 합니다. 이 ‘무릎 꿇은 나무’들은 극한의 고통 속에서 내면을 단단히 키웠기에, 세계에서 가장 공명이 뛰어난 고가의 바이올린 재료가 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바이올린도 바로 이러한 나무로 만들어졌습니다. 울림과 공명을 위해서는 역경을 통과해야 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인내에서 태어납니다. 마틴 슐레스케는 고지대 가문비나무를 통해 세 가지 지혜를 나누어 줍니다.
첫째, 견딤의 지혜입니다. 견딤이 없이는 쓰임이 없습니다. 견딤의 길이가 쓰임의 길이를 결정합니다. 바이올린 재료로 쓰이는 가문비나무는 200-300년을 견딘 나무입니다. 아름다운 선율을 선물해 주는 나무로 쓰임 받기 위해서는 견디고 또 견뎌야 합니다. 척박한 환경에서 자란 나무는 저항력을 기르고, 세포는 진동하는 법을 배웁니다. 반대로 따뜻한 곳에서 빨리 자란 나무는 저항력이 약해 깊은 공명을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둘째, 비움의 지혜입니다. 가문비나무는 마르고 죽은 가지를 스스로 떨쳐냅니다. 그렇게 죽은 것을 내려놓은 자리에서 울림의 진수가 태어납니다. 가문비나무는 비울 것을 철저히 비우라고 가르칩니다. 옳지 않은 것과 이별하라고 말합니다. 유통기한이 지난 것은 내려놓으라고 가르칩니다. 익숙한 것들과 결별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노래하는 나무는 버릴 것을 버릴 줄 압니다. 비울 것을 비울 줄 압니다. 모든 것을 취하고, 모든 힘을 다 쓴다는 것이 언제나 지혜는 아닙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모든 것을 취할 수 있다고 다 취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다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아름다운 울림이 탄생합니다.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3). 슐레스케는 이렇게 말합니다. “마음이 가난해진다는 것은 모든 것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울림을 방해하는 것을 내려놓을 줄 압니다.
셋째, 헌신의 지혜입니다. 노래하는 나무는 때가 되면 자신을 내어줍니다. 나무가 장인(匠人)의 손에 들어가면 깎이고 다듬어져 바이올린으로 울리게 됩니다. 살아 있을 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울림이 퍼져 나옵니다. 쉽게 얻은 나무로는 깊은 울림이 있는 악기를 제작할 수 없습니다. 우리 가슴을 울리는 바이올린은 견딤 속에서 태어나고, 비움과 헌신을 통해 완성됩니다.
사람들의 가슴에 울림을 남기는 인생을 위해서는 가문비나무처럼 견디고, 비우고, 헌신해야 합니다. 가는 곳마다 울림을 선물해 주십시오. 울림 있는 인생은 크지 않아도 깊고, 빠르지 않아도 오래 남습니다. 좋은 악기는 연주가 끝난 뒤에도 우리의 가슴 속에서 계속 울립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머물던 자리를 떠난 뒤에도 누군가의 마음에 남는 울림이 있다면 그 인생은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배우려는 마음만 있다면 우리는 누구에게나 배울 수 있습니다. 늘 곁에 있는 나무에게서도 배울 수 있습니다. 배운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목양실에서 강준민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