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헤터 반즈의 기고글인 '복음을 전할 때 우리가 가장 자주 잊는 단 한 가지 질문'(The No. 1 question we forget to ask when sharing the Gospel)을 9일 게재했다.
헤더 반즈는 디시전 포인트(Decision Point)의 특별 프로젝트 디렉터로서 직원 모집과 훈련에 집중하며 조직 전반의 전략적 프로젝트를 이끌어 사명을 확장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복음 전도에 더 효과적이고 싶은가? 그렇다면 올바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복음을 전할 때 우리는 결과를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성령의 능력으로 말하고,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해야 한다. 우리의 역할은 충실히 복음을 전하는 것이며, 사람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이끄시는 일은 오직 하나님께 속해 있다(요한복음 6:44).
그렇다면 복음을 나눌 때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가? 좋은 질문은 많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한 가지, '응답을 이끌어내는 질문'을 잊는다. 호기심과 사랑, 그리고 용기를 가진 복음 전도자가 되고 싶다면, 복음을 전한 후 반드시 이렇게 물어야 한다: "오늘 예수님을 믿는 데 방해되는 것이 있나요?"
이 질문은 휘튼대 명예교수이자 《The Sacrament of Evangelism》의 저자인 제리 루트 박사(Dr. Jerry Root)에게서 배운 것이다. 그는 일상 속에서 개인 전도의 본을 보이며 수많은 신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런 질문을 피하려 하는가? 아마 긴장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이 맞는 때일까?' 걱정되기도 하고, 상대가 불편해할까 염려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순간일수록 복음을 전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예수님께 믿음으로 나아오도록 담대히 초대해야 한다.
이 질문은 상대가 예수님을 믿을 준비가 되었는지, 혹은 어떤 의심이나 장벽이 그를 막고 있는지를 알게 한다. 대답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이 질문은 대화를 열고, 반응을 초대하는 문이 되기 때문이다.
복음을 전할 때 강한 메시지로 시작해 놓고 약한 초대로 끝내지 말자. 그건 마치 가장 귀한 선물을 아름답게 포장해놓고, "어떻게 열어야 하는지" 말해주지 않는 것과 같다.
1. 성경은 "오늘이 구원의 날이다"이라고 말한다
복음을 나누는 순간, 우리는 감히 하나님의 자비가 지금 그 사람을 회개로 이끌고 있지 않다고 단정할 수 있는가?(로마서 2:4) 그에게 오늘이 구원의 날이 아닐 것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그의 마음은 완고할 수도 있고, 이미 준비되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다. 그 마음속에서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고 계신지는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
우리가 아는 단 한 가지는 이것이다: "오늘이 구원의 날이다." 바울은 복음을 전한 후 이렇게 강하게 초대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되, '은혜 받을 만한 때에 내가 너를 들었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이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이 구원의 날이로다." (고린도후서 5:20, 6:2)
바울의 말에는 긴박함이 있다. 그는 복음을 전할 때 결단을 촉구했다. 하나님과 화목할지, 그리스도를 거부할지 그것은 선택의 문제다. 바울은 "지금 결단하라"고 외쳤다. 미루지 말고, 다시 한 번 듣고 흘려보내지 말고,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정하라.
그가 사용한 "간청하다(implore)"라는 단어는 '간절히 부탁하다, 애원하다, 절박히 구하다'라는 뜻이다. 그만큼 바울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들이 그리스도 없이 사는 것을 원치 않았다.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예수님을 믿으라고 간절히 권한 적이 언제인가? 바울처럼 긴급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한다면, 우리의 대화는 얼마나 달라질까?
2. 복음에는 두 가지 반응만 있다
복음에 대한 반응은 오직 두 가지뿐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길, 혹은 그리스도 없이 사는 길이다. 요한일서 5장 11-13절이 말하듯, 사람은 믿고 회개하며 예수님을 주와 구주로 영접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분을 거부한다. 중립은 없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를 제3의 선택처럼 여기지만, 그리스도에 대한 중립은 곧 거부다.
이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너의 진리" "나의 진리"가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도, 진리를 말하는 것은 사랑의 행위다. 고린도전서 13장 6절은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느니라." 따라서 진리를 전하는 것이 곧 사랑이다.
사람이 예수님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가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기뻐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에게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선택이 지금 눈앞에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로마서 1장 16절은 이렇게 선포한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이 시대에 우리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지금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놀라운 때다. 성경 판매가 다시 늘어나고, 교회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용기와 사랑, 그리고 호기심으로 복음을 전하며 결단으로 초대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