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심 프로젝트를 운영하면서 미국 카톨릭 대학교 인간 생태학 연구소 연구원인 안드레아 피치오티-바이어(Andrea Picciotti-Bayer)가 최근 "찰리 커크 살인 사건에 겁먹지 말라"(Don't let Charlie Kirk's murder scare you)는 글을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에 기고했다. 다음은 그의 글 전문이다.
9월 10일, 미국이 9·11 희생자들을 기리기 하루 전, 또 하나의 폭력이 사회를 뒤흔들었다. 기독교 신앙을 삶의 중심에 두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젊은 보수 성향 활동가 찰리 커크가 암살당한 것이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정치적 암살을 넘어, 일부에서 이를 공개적으로 기뻐하는 모습까지 드러나며 충격을 더했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굳건한 믿음이다. 신앙에 따라 살아가는 삶은 진리와 선, 아름다움에 적대적인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평화의 도구로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다시금 보여준다.
커크의 목소리는 복음에서 비롯됐다. 그는 모든 인간 생명의 존엄, 결혼의 자연적 제도, 하나님이 주신 남성과 여성의 정체성을 분명히 증언했다. 한때 널리 받아들여졌던 이 진리들은 이제 많은 진보 진영에서 "증오"로 규정되고 있다. 선을 악이라 하고, 악을 선이라 하는 일은 새로운 일이 아니지만, 신앙에 대한 적대는 점점 더 날카롭고 끊임없으며, 이제는 비극적으로도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커크는 영적 각성을 경험하며 교회로 돌아오려는 수많은 젊은 미국인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는 신앙이 단순한 개인적 취미가 아니라 행동과 정직, 대화를 위한 토대임을 보여주었다. 지난 주 일요일 로마에서 레오 14세 교황에 의해 시성된 카를로 아쿠티스와 피에르 조르지오 프라사티 성인들처럼, 커크 또한 신앙이 삶 전반을 형성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의 죽음을 얼마 앞두고, 아내는 두 아이의 어머니로서 시편 46편 1절 말씀을 X(구 트위터)에 게시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이 말씀은 이제 더욱 깊은 울림을 준다. 세상이 깨어져도 하나님은 여전히 함께 계심을 일깨워준다.
필자는 두 아이를 클래식 기독교 학교에 데려다주는 차량 대기 중 커크의 암살 소식을 접했다. 그 순간은 소름 끼칠 정도였다. 그 학교는 지난해 세 명의 어린이와 세 명의 성인이 총격으로 목숨을 잃었던 학교와 유사했고, 최근 미네소타에서 발생한 미사 중 참사를 떠올리게 했다.
9월 10일과 11일의 매일 미사 성경 읽기는 더욱 깊은 의미를 가졌다. 골로새서에서는 "긍휼과 자비, 겸손과 온유, 오래 참음을 입고, 그 위에 사랑을 더하라"고 했다. 9·11의 복음 말씀은 더 강하게 다가왔다. 누가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미워하는 자에게 선을 행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고,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명하셨다. 그리스도인의 악에 대한 응답은 복수가 아니라 자비이며, 이는 어렵지만 모든 신자가 따라야 할 길이다.
커크의 죽음은 9·11 기념일과 맞물려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24년 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테러로 미국을 파괴하려 했다. 오늘날에는 또 다른 위협이 내부에서 자라나고 있다. 비행기를 폭탄으로 삼지는 않지만, 문화적 적대와 조롱, 종교적 신념에 대한 공격이 새로운 형태의 위협으로 자리 잡았다.
무고한 이들에게 향하는 증오, 전통적 결혼과 생물학적 현실을 옹호했다는 이유로 '편견자'로 낙인찍히는 현실, 의견 차이가 인간성을 부정하는 상황 속에서 폭력은 종종 최종적 결말로 이어진다.
최근 며칠 동안 필자는 명문 세속 대학에 다니는 딸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 동급생들이 커크의 죽음에 냉소하거나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나는 그녀에게 그것이 무지에서 비롯된 것임을 설명했다. 신앙이 마음과 지성을 동시에 형성한다는 것을 경험하지 못했고, 하늘에 계신 사랑의 아버지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커크의 죽음은 모든 신자에게 경종을 울린다. 진실한 종교적 신념에 기초한 확신은 위험하거나 차별적인 것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대응은 분명하고 흔들림 없어야 한다.
첫째, 우리는 찰리의 가족과 친구들, 심지어 그의 생명을 앗아간 가해자를 위해서도 애도하고 기도해야 한다. 이는 어렵지만, 복수심에 사로잡힌 이들과 우리를 구별 짓는다.
둘째, 우리는 신앙을 공개적으로 살아내야 한다. 골로새서는 그리스도의 평화가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라고 가르친다. 누가복음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명한다. 시편 46편은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이자 힘이심을 상기시킨다. 이 약속들은 세상의 인정이나 편안함을 보장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미움보다 강하고 하나님의 정의가 반드시 실현될 것임을 확신하게 한다.
찰리 커크의 삶과 죽음은 모든 교파의 기독교인들에게 용기와 자비, 그리고 자비심으로 굳건히 서라는 도전을 던진다. 우리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증오를 치유로, 절망을 희망으로, 죽음을 영원한 생명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도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