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김상환 전 대법관을,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오영준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각각 지명했다. 지난 4월에 퇴임한 문형배, 이미선 전 재판관의 후임으로 지명된 두 인사 모두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면서 헌법재판소의 이념적 구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김 헌재소장 후보자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서울중앙지법 민사수석부장판사, 대법관, 법원행정처장을 지냈다. 특히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으로, 문재인 정부 시절 김명수 대법원 체제에서 핵심 요직을 맡는 등 진보 성향이 뚜렷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오 재판관 후보자는 서울대 법대를 나와 특허법원 부장판사,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을 지냈다. 중도 성향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전신 격인 우리법연구회 활동 이력이 보여주듯 진보 성향의 법관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통령 비서실은 이번 인사를 헌법재판소 회복을 상징하는 인선으로 설명했다. "위험 수위에 달했던 헌재 흔들기를 끝내고, 헌법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독립성을 높이려는 조치"라는 거다.
이 두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되면 헌재는 지난해 10월 후 8개월 만에 재판관 9인 체제를 회복하게 된다. 그러나 일각에선 9인 체제 완성보다 헌재의 이념적 지형 변화에 더욱 민감한 반응이다. 향후 위헌 여부가 쟁점이 되는 주요 법안의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뜻이다.
현재 헌재 재판관의 이념적 구도는 보수 2명, 진보 2명, 중도 3명으로 균형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지명한 두 후보자의 임명이 완료되면 진보 성향 재판관이 4명이나 돼 균형추가 진보로 기울게 된다. 법조계에선 중도로 분류되는 정정미 재판관의 경우, 진보 성향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하고 있어 사실상 진보 성향 재판관이 헌재를 장악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이런 헌재의 지형 변화 흐름이 향후에 더욱 가속화될 것이란 점이다. 이 대통령 임기 중 헌재 재판관 2명이 추가로 교체되는데 두 재판관 지명권이 대법원장에게 있다고는 하나 현 조희대 대법원장이 정년 퇴임한 후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원장이 어떤 성향의 재판관을 지명할지는 너무도 뻔하다.
헌재의 이념적 구도 개편은 당장 여당이 추진해 온 위헌법률 심판 등 각종 헌법 심판에서 진보 진영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은 헌법 84조의 대통령 불소추 특권과 관련해 대통령 임기 중에 재판을 중지시키는 '재판 중지법(형사소송법 개정안)'과 헌법 89조 검찰총장을 공소청장으로 바꾸는 '공소청 설치·운영 법안' 등을 추진하고 있다. 또 내란이나 외환죄로 파면된 대통령이 소속한 정당에 대해 헌재에 해산 심판을 청구할 수 있는 '정당법' 개정안도 발의한 상태다.
이런 법안들이 국회를 통과하게 되면 야당인 국민의힘이 헌재에 위헌 심판 청구를 할 공산이 크다. 그런데 위헌 결정이 나오려면 헌재 재판관 9명 가운데 6명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데 이념 구도가 진보로 기울어진 마당에 정치적 의도가 짙은 문제 법안에 헌재가 제동을 걸어주길 기대하는 자체가 사실상 무의미해졌다.
김 헌재소장 후보자는 이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인물로 알려졌다. 이재명 경기지사 시절 '친형 강제 입원' 발언으로 2심에서 유죄를 받았을 때 대법원이 이른바 '권순일 판례'를 인용해 파기할 당시 대법관이었다. 이 판례는 지난 3월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모두 무죄로 판단한 서울고법 판결에 다시 인용되면서 1심 징역형으로 무산될뻔한 대선 출마 기회가 기사회생하는 결정적인 작용을 한 거다.
이 대통령이 김 전 대법관을 헌재소장 후보자로 지명한 배경이 이런 남다른 인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정부 여당과 관련한 위헌 여부 결정에 확실한 주도권을 쥐려는 의도가 깔린 전략적 포석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교계는 김 후보자의 헌재소장 지명과 관련해 이와는 다른 시각에서 우려하고 있다. 그가 동성애 커플을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인정하는 판결에 다수 의견을 낸 대법관 중 한 명으로 성 소수자를 옹호하는 입장을 견지해 온 게 주된 이유다.
한기총은 지난 발표한 성명에서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김상환 전 대법관을 지명한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며 이 문제를 거론했다.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등의 독소조항을 포함한 동성애를 합법화하려는 시도가 무산됐음에도 사법부가 헌법의 범위를 벗어난 잣대로 판단해 스스로 법질서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그가 대법관 시절에 다수 의견으로 판결한 동성애자 피부양 자격 허용 문제를 다시 직격한 거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 불과 한 달이 지났다. 그런데 벌써 많은 국민이 권력의 과도한 편중을 걱정하고 있다. 국회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여당과 행정부에 이어 사법부까지 한쪽으로 쏠리면 권력의 균형·견제라는 헌법의 삼권 분립 정신이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다.
헌재는 국민의 기본권이 부당하게 침해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이자 사회적으로 첨예한 갈등이 있는 사안에 대해 헌법적 가치를 기준으로 판단해 사회 통합에 이바지할 목적으로 세워졌다. 이런 헌법 기관이 이념 편중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고 정치의 시녀로 전락한다면 국가적으로나 국민에게 크나큰 불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