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전 대통령 탄생 150주년을 기리는 뜻깊은 자리가 마련됐다. 이승만대통령기념재단이 이 전 대통령 탄생일(3월 26일)을 하루 앞둔 25일 '우남 이승만, 세기를 넘어 세대를 잇다'란 이름으로 기념행사를 열었는데 독실한 기독교 신앙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반을 닦고 오늘의 대한민국의 초석을 다진 위대한 지도자를 다시 만나는 시간이었다. 

개회식에 이어 1부 학술회의 '대한 근대와 청년 이승만', 2부 청년세대 원탁회의 '대한민국 청년, 이승만을 다시 만나다', 3부 미래세대 원탁회의 '대한민국 미래세대, 이승만을 다시 배우다' 순서로 진행된 기념행사의 초점은 청년 이승만이 꿈꾸었던 나라에 맞춰졌다. 19세기 조선왕조 시대에 태어나 민주 공화정을 꿈꾸고 끝내 대한민국이라는 민주주의 국가를 세운 이승만의 정신과 그 위대한 신앙 역정을 되새기는 취지다. 

김황식 기념재단 이사장은 개회식 환영사에서 "우남(雩南) 이승만은 젊은 날을 바쳐 안으로는 구국 운동에 힘쓰고, 밖으로는 독립운동에 헌신했다"며 "청년 이승만의 나라를 위한 치열한 분투가 훗날 대한민국을 세우고 이끌어가는 탁월한 지도력의 밑거름이 됐다"고 평가했다. 

'청일전쟁과 청년 이승만' 주제 발제를 한 김명섭 연세대 교수는 청년 이승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그의 사상과 신념에 기독교 신앙이 녹아든 것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미국 선교사가 세운 배재학당에 입학한 청년 이승만이 서구식 자유민주주의를 배우고, 독립협회 등에서 활동하다 한성감옥에 투옥된 후 기독교인으로 변화됐다"며 그것이 훗날 개인의 자유에 기초한 독립사상을 발전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이영훈 이승만학당 교장은 이 전 대통령의 평생의 신념이자 정치철학이었던 '기독교 입국론'의 배경을 설명했다. 청년 이승만이 배재학당 시절 '나는 그곳에서 영어보다 훨씬 더 중요한 정치적 자유에 대한 사상을 배웠다'라고 회고한 바 있는데 그때 비로소 조선 사회에서 천부인권을 존중하는 기독교 국가로의 탈바꿈을 꿈꿨다는 것이다. 

청년 이승만은 일제 강점기에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을 역임하고,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을 청원하는 등 독립운동에 매진했다. 그가 8.15 해방 후 허물어진 전통 문명 조선을 새로운 원리로 대체한 위대한 업적이 바로 1948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바탕을 둔 근대 민주국가 대한민국의 새로운 출발이었던 거다. 

사실 대한민국의 출발점인 '건국일'에 대한 논란은 우리 사회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다. 진보 진영에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 3월 1일이 '건국일'이란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미국의 독립기념일이나 프랑스의 혁명 기념일의 사례에서처럼, 3·1 운동의 독립 선언을 통해 민주공화국 체제가 선포되고 임시정부의 헌법과 강령이 제헌헌법에 반영돼 오늘날 대한민국의 근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임시정부는 정부의 요건인 영토 확보, 주권적 지배권, 법률 제정 및 집행이 가능한 물리적 강제력을 갖추지 못했다. 또 주권을 행사할 정치적 결사체로서의 요건, 즉 제한된 영역의 실효적 통치, 국제사회의 승인을 갖추지 못해 정식 '건국일'로 삼기에 무리가 있다. 그래서 보수진영에선 1948년 5.10 총선거로 구성된 제헌 국회가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 출범한 날을 '건국일'로 기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거다. 

이 시점에서 주의 깊게 살필 점은 대한민국의 '건국일'을 둘러싼 논쟁의 중심에 이승만 대통령이 있다는 사실이다. 진보 진영에서 정식 체제를 갖추지 못한 임시정부의 출발을 건국일로 고집하는 근저에 이 대통령에 대한 뿌리 깊은 거부감이 작용하고 있다. 3.8 이남에서만 총선거를 시행해 결과적으로 남북 분단을 고착화한 원흉이라며 이 대통령을 폄훼하는 것과도 연결된다. 

하지만 1919년의 정부는 말 그대로 '임시정부'일 뿐이다. 만약 1919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면, 당시의 정부를 '임시정부'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당시 임시정부 인사들 스스로 '임시정부'라고 부른 역사적 사실이 애써 지운다고 달라지겠는가. 일제 강점기가 우리에게 아무리 치욕스러운 역사라 하더라도 역사적 사실을 사실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런 고난의 시기를 견디고 극복해 탄생한 대한민국도 존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세간의 평가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을 세운 건국의 아버지로서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와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농지개혁, 의무교육 실시 등 민생안정과 사회발전에 기여한 업적을 어찌 부인할 수 있나. 더욱이 오늘 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영을 이룩한 그 밑바탕에 독실한 기독교 신앙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교회는 그분의 숭고한 신앙을 본받아 후세에 전하는 게 마땅하다고 본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공과(功過)에 대해 우리 사회가 여전히 뜨겁다. 다만 그런 분위기 속에서 지난해 상영된 영화 '건국전쟁' 이후 그분에 대한 평가작업이 진지하게 이뤄지고 있는 점은 퍽 고무적이다. 탄생 150주년 기념행사도 그 일환일 것이다. 

지나간 역사와 인물에 대한 평가가 저마다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자. 다만 특정 인물을 지나치게 미화하거나 폄훼하는 건 역사적 사실의 판단 기준까지 흐리게 할 수 있어 조심해야 할 것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안타까운 건 최근의 이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 작업을 향한 일각의 몰이해와 과도한 비난이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인물 조명을 극우의 준동으로 모는 것이야말로 역사 인식에 대한 부정이다. 

우리 사회가 모두 같은 마음일 순 없다. 다만 한국교회는 최소한 그분이 평생 하나님께 기도하며 이루고자 했던 꿈을 함께 꾸며 실천하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흘린 눈물과 땀이 헛되지 않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