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한반도 안보의 불안 요소가 증대할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미국과 북한과의 관계 개선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른 시일 내에 미·북 정상회담이나 양국 관계 개선 논의가 진전될 가능성이 적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 개선을 시도할 것이란 건 트럼프 대통령 취임 전부터 나왔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 미국 백악관이 "북한의 비핵화 목표를 견지하겠다"는 뜻을 확인하면서 다소 가라앉는 분위기다.  

VOA(미국의 소리)는 미국 외교가에서 나온 정보에 근거해 이미 트럼프 행정부가 미·북 정상회담을 위한 물밑 작업을 시작했을 것으로 관측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 소식에 밝은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이런 예측에 선을 긋고 있다. 

한반도 전문가인 테렌스 로리그 교수(위스콘신대 동아시아학)는 최근 VOA와의 통화에서 현재로선 미국과 북한이 비핵화 협상을 재개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로리그 교수의 이런 분석은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과 정상회담 재개를 시도할 가능성이 적다기 보다는 북한 김정은이 이에 응할 명분이 없다는 점에 무게를 둔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때 미·북 정상회담을 자신의 외교적 성과로 꼽고 있다. 2기 취임 첫날인 20일에도 북한을 '핵 보유국(nuclear power)'이라 지칭하며서 미·북 정상회담 재개를 기정사실화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과의 과거 친분을 과시하며 북한과 접촉할 뜻을 밝히면서 벌써부터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삼았던 전임 바이든 행정부와는 다른 해법을 시도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북한과의 '핵 군축' 협상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란 해석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백악관은 지난달 28일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때와 마찬가지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할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북한을 '핵 보유국'이라 지칭한 것에 대해서도 보이는 현상을 말한 것일 뿐 핵을 인정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북한으로선 이런 트럼프 행정부의 발표가 달가울 리 없을 것이다. 1기 트럼프 행정부와 두 차례나 정상회담을 가졌던 경험을 바탕으로 트럼프의 재등장을 내심 바랐던 김정은으로선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최근 백악관의 발표의 진의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백악관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목표임을 밝힌 직후인 지난달 29일 북한 김정은이 느닷없이 비공개 장소의 핵물질 생산기지와 핵무기 연구소를 현지지도에 나섰다.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이 "핵 방패의 부단한 강화가 필수불가결하다"면서 "핵 대응 태세를 한계를 모르게 진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김정은의 행보가 앞으로 있을 미·북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차원으로 보고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북한 비핵화는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을 수 없다는 걸 확실히 못 박으려는 계산된 의도라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가 아니면 북한과 마주앉을 이유도 명분도 없다. 전문가들은 미국 행정부와 여론 또한 비핵화가 목표인데 이걸 빼고 다른 걸 의제로 삼아봐야 미국 입장에서 얻을 게 없다며 회담 성사 자체를 부정적으로 전망하는 실정이다. 

만에 하나 협상 테이블이 차려진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상응하는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이를테면 대북 제재 해제와 경제 지원, 주한미군 철수, 북미 수교 등이다. 이는 미국뿐 아니라 국제사회와 자유 민주주의의 가치를 함께 지켜온 한미동맹의 한 축인 우리나라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무엇보다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과 견제가 심화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명분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이 통 크게 양보하는 그림은 도무지 상상이 안 된다. 

미국의 역대 정부 모두 북한의 핵무장이 미국 안보에 절대적인 위해 요소임을 인정하고 있다. 트럼프 역시 한반도 정세 불안보다는 북한이 장거리 탄도미사일에 핵을 실어 미국 본토를 타격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그렇다고 미국이 자국 안보에 위협이 되는 북한을 향해 핵만 포기하면 모든 걸 다 들어주겠다고 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설령 미국이 그런 자세로 나온다 하더라도 북한이 진짜 핵을 포기하겠다고 나올 가능성 또한 극히 낮다. 

미국은 북한의 핵이 미국과 한국 등 북한을 적대시하는 국가들로부터 북한사회 전체를 지키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건 대단한 착각이다. 북한 김정은 체제는 북한 주민이 살든 죽든 관심이 없다. 오직 김일성 3부자 세습 정권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핵무기가 필수불가결할 뿐이다. 

그런 집단이 대북 제재를 풀고 경제 지원을 하겠다는 약속에 혹해서 핵을 폐기할 것으로 보는건 북한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미국 등이 북한 재제를 풀고 경제 지원을 하게 되면 평양을 중심으로 한 당 간부들의 사정은 나아질 것이다. 하지만 국제사회가 진정 바라는 북한 주민 전체 삶의 질 향상에는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다. 

북한은 북한 주민의 외부세계와 소통을 법을 엄격히 금하고 있다. 그런데 외부의 경제 지원으로 주민의 삶의 질이 나아지고 의식이 향상될 경우 김정은 체제에 위협이 될 걸 무엇보다 두려워하고 있다. 김 씨 일가를 유일신으로 신봉하는 절대 권력 체제가 한순간에 무너지고 자신도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위험한 도박에 김정은이 응할리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