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Photo : 기독일보) 신성욱 교수

[1] 오늘날 기독교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개독교’ 소리를 듣고 있다. 초대 성도들이나 제자들은 가는 곳마다 좋은 의미의 ‘세상을 뒤집어 놓는 사람들’이라는 평가를 받곤 했는데, 그 후배들인 우리는 그리스도를 욕보이고 있다. 오죽했으면 ‘기독교인들, 십자가 목걸이 좀 하고 다니세요. 우리 피해다니게요!’나 ‘하나님을 떠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교회를 떠나기로 했어요!’라고까지 말할까? 근본적인 이유가 뭘까?

[2] 그건 ‘복음’이 뭔지를 제대로 몰라서 그렇다. 복음이 뭔지를 어느 누구로부터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가 알고 있는 ‘복음’이란 건 뭘까? ‘반쪽짜리 복음’(Half gospel)이다. 구원받음에는 문제가 없으나 성경이 말하는 ‘완전한 복음’(Complete gospel)이나 ‘온전한 복음’(Perfect gospel)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날 설교자들의 설교를 보면 85%가 율법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3] 대부분의 설교 내용은 ‘하라!’(Do) 또는 ‘하지 말라’(Do not)는 얘기다. 기독교가 마치 ‘그리스도를 위한’(For Jesus Christ) 종교인 것처럼 가르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충성’, ‘헌신’, ‘봉사’, ‘섬김’ 등과 같은 내용들이 설교 속에 많이 등장하는 것이다.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그게 기독교의 본질은 아니다. 기독교는 ‘그리스도를 위한 섬김의 종교'가 아니란 말이다.

[4]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에 의해 우리가 섬김을 받는’(Served by Christ) 종교이다. 우리에게서는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 우리 혼자 힘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가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그것이 가능하다. 설교 중에 ‘변화된 삶을 살라!’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라’는 얘기도 많이 듣는다. 설교자들은 성도들에게 ‘변화’(Change)를 많이 강조한다.

[5] 하지만 중생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한계 상황의 육체를 입고 있는 이상 인간은 누구든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능함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가르쳐야 할 진정한 복음은 ‘변화’(Change)가 아니라 ‘대체’(Exchange)이다. 내가 잘 살아서 그리스도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로 대체되는 것이다. '예수님께 맡기는 삶' 말이다. 그렇다. 그 방법이 아니고선 절대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살 수가 없다. 그게 바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습이다.

[6]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고 해서 신적인 신분이 없어진 건 아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신분과 거기에 걸맞는 신적인 권한과 능력과 특권둘을 다 내려놓으셨다(Kenoo). 자신이 지닌 인성만 의지한 채 오직 아버지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며 살기로 하신 것이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자신을 비우고 낮추셨단 말이다. 그런 내용의 구절들이 꽤 많다(요 5:30, 7:16, 8:28, 42, 12:49)

[7] 두 구절만 참조해보자.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요 5:30).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요 8:28). 어린 시절, 나는 이 구절들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예수님이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게 무슨 뜻인지 너무도 잘 안다. 예수님은 육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하면 완전한 삶을 살 수 있는지 그 비결을 보여주신 것이다.

[8] 그렇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찬양하고 영광 돌리기 전에 전적으로 그분을 의지하고 그분으로부터 받는 은혜로 채워져야 한다. '변화'가 아니라 예수님으로의 '대체'를 추구해야 한다. 사람이 변화해봤자 거기서 거기다. 생각하고 행하는 모든 일이 죄악이다. 사람마다 경중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때문에 우리는 마르다처럼 '예수님을 섬기는 일'이 아니라, 마리아처럼 '예수님으로부터 말씀으로 섬김 받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9] ‘그리스도를 위한 삶’이 핵심이 아니라 ‘그리스도로부터 섬김받는 삶’이 핵심인 인생을 살아야 한다. 그 우선권이 제대로 갖춰지면 ‘그리스도를 위한 삶’은 자동적으로 이뤄지는 것이고,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온전한 일이 될 수 있다.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For Jesus Christ) 삶'이 우리 기독교인이 해야 할 헥심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10] 하지만 성경은 ‘예수님을 위하여’(For Jesus)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In Jesus) 거하는 것을 주안점으로 삼고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전적으로 예수님 안에 거하고, 그분에 의해서 지배되고 통제되는 삶을 살기만 한다면 그에게서 나오는 섬김과 충성과 봉사는 더없이 온전하고 거룩한 양질의 열매가 될 것이다. 오늘 대부분의 설교자들이 성경이 말씀하는 복음이 뭔지를 모르다 보니 율법적 내용의 설교만 주로 전하고 있는 불행한 현실이 되고 말았다.

[11] 삶에 변화를 가져올 수 없는 설교를 더는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헌신과 봉사와 섬김이라는 열매가 없게 하는 설교는 이제 지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성경이 말씀하는 복음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복음이 어떤 건지를 제대로 피악하기 위해선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사실 때 어떻게 사셨는지를 주목해보먄 된다. 거기에 답이 있고 비결이 있다.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만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그분의 지시만을 따르는 삶을 사셨다.

[12] 스스로의 노력이나 행함을 꾀한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으셨고, 오직 아버지 하나님만 쳐다보면서 그분의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대체되는 삶을 사시다 가셨다. 우리로 하여금 흠없고 완전하고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비결이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주시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도 ‘Do!’나 ‘Do not!’이 아닌, 아버지 하나님만 철저하게 의존함으로써 십자가 사명까지 ‘완성하신’(Done!) 그 복음을 굳게 신뢰하고 의존하며 살도록 가르치는 종들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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