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모(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분자유전학-약리학교실 교수)
류현모(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분자유전학-약리학교실 교수)

성경은 창조 질서가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모든 생명체를 창조하실 때 다양한 종류를 창조하셨다. 또 같은 종류에서도 다양한 특성을 가진 생명체가 나오도록 창조의 규칙을 세워 두셨다. 수십억의 인구가 지구상에 살고 있지만 누구도 똑같이 태어나지 않게 설계하신 방법이 유전의 원리이다. 생물의 세포분열에는 체세포분열과 생식세포분열이 있다. 생식세포분열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유전정보가 감수분열 중 교차(cross-over)의 과정을 통해 두 분의 유전정보가 섞여서 아버지의 정자가 생성된다. 또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유전정보 역시 교차를 통해 섞여서 어머니의 난자가 생성된다. 유전자의 뒤섞임으로 인해 아무리 많은 난자가 생성되어도 똑같은 유전정보를 가진 것이 생길 수 없고, 정자도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각 부모의 독특한 정보가 조합된 정자와 난자가 만나 더 독특한 수정란이 생성되고 이들이 성장하여 새 생명이 탄생한다. 따라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생명은 "종"이라는 통일성 속에서 각 개체가 어마어마한 다양성을 나타낼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하나의 수정란은 체세포분열을 통해 숫자를 증식시킨다. 생식세포 분열과는 달리 체세포분열로 생성된 인체의 모든 세포는 수정란과 똑같은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신체 각 부분을 구성하는 세포들, 즉 뇌세포, 간세포, 피부세포, 등은 그 형태도 기능도 다르다. 한 개체의 모든 세포는 유전적으로는 통일성을 보이지만 서로 발현하는 유전자군이 다른 후성 유전적 조절을 통해 하나의 통일된 유기체 안에서 다양한 역할을 하는 세포들이 생성될 수 있게 만든다. 이것은 각 지체가 모여서 하나의 교회를 이루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고전 12장). 

다시 말해 통일성 없는 다양성은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발이 말하기를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않았다고 해도 몸에 붙지 않은 것이 아니라."라고 말한 것처럼 통일성이 없으면 분쟁과 혼돈과 파열이 발생한다. 반면 다양성 없는 통일성 역시 문제가 있다. "온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가 될 것인가?"라는 말씀처럼 하나의 지체들만으로 구성된 이상한 생명체가 될 것이다. 성경은 다양성과 통일성의 균형을 요구하며 이는 한 생명체 혹은 한 사회의 번영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사회정의를 주장하는 진영의 사람들은 DEI, 즉 다양성(Diversity), 평등(Equality), 포용(Inclusion)을 마치 주문처럼 외치고 있다. 그러나 사회정의 이념에서는 다양성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획일성을 강요한다. 이들이 존중하는 다양성의 가치는 자신들이 말하는 몇 개의 집단으로만 엄격하게 제한된다. 그 범위 밖 집단의 가치는 강력하게 억제된다. 결국 사회정의 이념에는 다양성과 통일성의 균형이 존재할 자리가 없다. 더구나 이들이 주장하는 다양성은 그들이 지정한 집단의 다양성을 의미하는 것이지 개인의 다양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사회정의 이념에는 인간 개인의 자율성이 있을 자리가 없다. 집단 속의 개인은 그 집단의 일부일 뿐이며, 집단에 부여된 역할에 맞춰 생각하도록 강요당한다. 이 이념은 흑인은 흑인답게, 여성은 여성답게, 성 소수자는 성 소수자답게 생각하고 행동할 것을 강요한다. 

흑인 여성으로 미시간주 하원의원인 아야나 프레슬리는 "우리는 흑인의 목소리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 흑인 얼굴들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 모슬렘도 그렇고, 여성도 그렇고, 성 소수자도 마찬가지다."라고 주장한다. 그녀의 주장은 각 소속 집단에 규정된 입장대로만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지 않는 흑인, 모슬렘, 여성, 성 소수자는 더 이상 필요 없으니 그 집단에 지정된 요구에 순응하든지 떠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집단의 입장과 목소리는 어떻게 정해지는가? 결국 '약자의 권익 보호가 최고의 가치'라고 규정하는 사회정의 이념에 의해 결정된다. 특히 차별금지법이 통과된 나라에서는 이 이념의 핵심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배신자로 낙인찍혀, 그 집단으로부터 비난받고, 법에 따라 처벌까지 받게 된다. 이것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획일화된 이념에 대한 억압적 순응을 강요하는 것이다. 맥길대학 원로 교수인 칼 살즈만은 말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능력이 아니라 소수집단 소속 여부로 로스쿨이나 의과대학에 합격하고, 교수나 회사의 관리직, 국회의원, 장관으로 선출된다." 이 소수집단의 반대편에 있는 백인, 남성, 이성애자, 개신교도는 어디에도 환영받지 못하고 소외당한다. 

이런 사회정의 이념을 강요하는 집단들이 차별금지법을 앞세워 조성한 차별하는 사회 분위기로 인해 빌 게이츠 같은 백만장자나 구글과 같은 기업집단들조차 앞다투어 사회정의 이념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그 앞에 무릎 꿇고 찬양하는 기이한 현상이 유럽이나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런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그리스도인들이 깨어 기도하며 힘을 합쳐야 한다. 적절한 시기에 명확하고 강력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어 차별금지법의 입법을 막아야 한다. "공의를 굳게 지키는 자는 생명에 이르고 악을 따르는 자는 필경 사망에 이를 것"이라는 말씀을(잠 11:19) 우리는 깊이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