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이란 말씀을 맡긴 은사라는 뜻을 가집니다. 설교와 말씀과 가르침의 은사입니다. 신약에 나오는 예언은 대부분 설교로 바꾸면 됩니다. 그래서 예언 은사의 3요소는 말씀과 현실과 아픔입니다, 이를 위해 말씀에 정통해야 합니다. 그래야 전하게 됩니다. 또한 현실감각이 있어야 합니다. 크리스천은 사람과 떨어진 산중신앙이 아니라, 사람 속에 들어가는 민중 신앙인 것입니다. 성경과 현실의 두 지평을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칼 바르트는 이것을 한 손에는 성경을, 한 손에는 신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아픔입니다. 하나님 마음입니다. 인간관계에서 아픈 적 있다면 진심이었기 때문입니다. 아프지 않으면 진심이 아닌 것입니다,
예언 전달의 지혜와 대화의 스타일에는 2종류가 있습니다. 스파이크 형과 랠리 형입니다. 스파이크 형은 말 그대로 화끈하게 던지고 사라집니다. 폭탄을 던지고는 뒤끝 없다 합니다. 반면에 랠리 형은 할 말이 있게 만듭니다. 할 말이 있게 만드는 것이 사랑입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가 잡힌 여자가 있었습니다. 어떤 말을 물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다르게 묻습니다. 너를 정죄하는 자가 있느냐? 고, 나도 정죄하지 않을 테니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하십니다, 이게 랠리 형입니다. 성경은 성령을 소멸치 말고. 예언을 멸시치 말고. 이것을 계속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다가 홀연히 하늘로부터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우리가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공생애를 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께만 공생애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인에게도 공생애가 있습니다. 공생애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먼저는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당하신다.입니다. 성령의 능력 받은 사람은 자기 드러냄이라는 시험을 이겨야 한다는 뜻입니다. 다음은 돌로 떡을 만드는 일에 있어서나, 높은 데서 뛰어내리는 일에 있어서나, 자기 영광 받음이라는 자기 드러냄에서 항상 겸손함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기는 것이 시험을 이기는 것입니다. 시험은 고난이 아닙니다. 진짜 시험은 자기 교만을 깨는 것입니다. 자아 깨기가 진짜 시험을 이기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매우 힘든 성도가 있었습니다. 명문대를 나와 매사에 최고를 추구했다고 합니다. 자녀들도 최고로 키우려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신경증이 생김으로 불안해하니 걱정과 근심에 불면증도 왔다고 합니다. 목사님 설교 중에 예수님께 몰아가는 양몰이 개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에서 답을 찾아 자신의 자아가 무너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전에는 힘을 내자였는데 그 이후로 힘을 빼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내 힘을 빼고 기도하다 보니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합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일하심이 보임으로 일어서게 되었다고 합니다. 맡기니 풀린 것입니다. 누구든 시험은 다 있습니다. 맡기면 풀려 이기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