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가장 많은 일반 교수들이 선정한 '2022 올해의 사자성어'는 '과이불개(過而不改)'이다. 과이불개는 <논어> '위령공편(衛靈公篇)'에 처음 등장하는데,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을 잘못이라 한다(과이불개 시위과의, 過而不改 是謂過矣)"는 뜻이다.
교수신문에 '과이불개'를 추천한 박현모 교수(여주대·세종리더십연구소 소장)는 "여야 할 것 없이 잘못이 드러나면 '이전 정부는 더 잘못했다' 혹은 '야당 탄압'이라며 도무지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며 "잘못을 고치거나 처벌받기는커녕 인정하지도 않는 지금 우리는 어떻게 진노해야 하는가"라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그런가 하면 영국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올해의 단어로 '고블린 모드(Goblin mode)'를 꼽았다. 처음으로 대중 투표를 통해 선정된 '올해의 단어'는 어떠한 신념이나 무언가를 지지한다는 의미의 '아이스탠드위드(#IStandWith)'와 '메타버스'(metaverse)'를 제쳤다.
고블린 모드란 '대개 사회적 규범이나 기대를 거부하는 방식으로 고의적인 방종, 게으름, 뻔뻔, 탐욕을 일삼는 행동 유형'을 가리키는 속어로, 코로나19 이후 일상 복귀를 거부하는 사례가 증가하면서 많은 이들의 입에서 오르내린 단어다. 올해 초 트위터에서 "배우 줄리아 폭스가 '전 남자친구 래퍼 예(카니예 웨스트)는 그녀의 고블린 모드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헤어졌다'고 말했다"는 가짜뉴스가 퍼지면서 유명해진 단어다.
이 '올해의 사자성어'나 영국 옥스포드 사전이 선정하는 '올해의 단어'처럼, 대한민국 신학계를 대표하는 학자들도 2022년을 마무리하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올해의 성경구절'과 그 이유를 고르고 담았다.
신학자 17인은 2022년 연말을 맞아 본지 요청으로 지난 1년 간 한국 교계와 사회를 상징하는 성구를 선정했다. 교수신문처럼 사자성어 보기를 주고 설문하는 방식이 아니기에, 16인 모두 다른 성구를 선택했다.
시편을 3인, 갈라디아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을 각 2인씩 골랐으며, 구약을 5인, 신약을 12인이 언급했다. 전체적으로 끝나지 않는 코로나19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서로의 죄를 들추기보다는 용서하고 배려하며,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를 구하면서 복음을 전하자는 권면을 담았다.
17인 외에 김명혁 목사(한국복음주의협의회 명예회장)는 매일 암송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성구로 시편 23편 1절, 요한복음 14장 1절, 데살로니가전서 5장 22-23절을 꼽았다. 다음은 신학자 16인이 돌아보는 2022년 기대하는 2023년, 그리고 성경구절.
▲김영한 박사. |
1. 김영한 박사
기독교학술원 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명예교수
전도서 3장 1절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저물어가는 한 해, 전도서 구절이 다가온다.
올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10개월째 우크라이나에 수백만 명의 난민이 생기고, 국민들이 여전한 고통 속에 있다. 72년 전 우리나라도 북한 공산군 침공으로 많은 피난민들이 생기고 수백 만 인명이 희생되었다. 새해에는 전쟁이 종식되길 바란다.
독재자 푸틴의 망상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정의 가 실현되어,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평화가 오기를 바란다. 인간 푸틴의 망상은 좌절되고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은 인간 역사를 향한 그의 선하신 목적을 이루실 것이다.
▲정장복 박사. |
2. 정장복 박사
한일장신대 명예총장
시편 31편 24절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
코로나는 펜데믹에서 엔데믹으로 우리 곁에 자리잡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은 3차대전 징조까지 보이면서 세계인의 가슴을 조이게 한다. 경제는 침체되어 새해에는 더욱 더 어려운 경지에 이르리라한다. 국내 정치는 출발한지 겨우 6개월을 지나고 있는데 서울 중심가에는 주말마다 퇴진을 외치는 무리들이 가득하다.
모이기에 힘써 세계 교회의 모범된 예배의 열심을 보이던 한국교회는 전자기기를 성전 삼아 추락하는 모습을 보인다. 모든 분야가 위축되고 절망의 늪으로 빠져드는 현상이다.
그러나 이 점을 명심하자. 대한민국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우하심'을 믿고 노래하는 국민이다. 우리는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시고 상한 갈대를 꺽지 않으시고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여호와를 바라보고 행진하는 소리가 멈추지 않아야 한다. 아무리 암담한 환경이 밀려오더라도, 강하고 담대하라는 여호와의 호령을 귀담아 듣고 일어서야 한다.
▲이상규 박사. |
3. 이상규 박사
백석대 석좌교수, 고신대 명예교수
누가복음 6장 45절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살아가면서 내가 살아온 지난날들을 뒤돌아보게 된다. 70이 넘고 보니 주님 앞에서 삶을 결산할 때도 멀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이해인의 '말을 위한 기도'가 나의 기도가 된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수없이 뿌려놓은 말의 씨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 조용히 헤아려 볼 때가 있습니다/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두렵습니다 / 사랑을 거스른 비방과 오해의 말들을 /경솔한 속단과 편견과 위선의 말들을/ 주여 용서하소서/ 나날이 새로운 마음, 깨어있는 마음 / 그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 내 언어의 집을 짓게 하시어 / 해처럼 환히 빛나는 삶을 / 당신의 은총 속에 이어가게 하소서."
신문을 보니 어떤 당의 대변인이라는 이가 다른 이를 비방할 목적으로 확인 안 된 전언을 사실인 양 공표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 밝혀져 남의 명예를 훼손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직하게 사과하지 않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이런 근거 없는 공격, 거짓말, 악담, 비난, 비방, 험담들의 활개치고 있다.
말은 사람됨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한 마디 말(言辭)은 그 사람의 인격과 신앙을 드러내는데, 한 사람의 내면 세계를 보여준다. 그래서 성경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한다(마 12:34, 15:18, 눅 6:45)'고 기록하고 있다.
사람은 마음에 품은 것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誠中形外). 하늘에 구름이 없는데 비가 올 수 있겠는가(天上無雲不下雨)? 남을 비방하려는 악의를 품고도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위장할 수 있으나, 결국에는 불순한 의도가 드러나게 되어 있다.
말은 자신의 내면 세계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말을 통해 그 사람의 신앙 인격, 품성을 알 수 있기에, 성경은 '열매로 나무를 안다'고 했을 것이다(마 12:33).
▲박명수 박사. |
4. 박명수 박사
서울신대 명예교수,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 소장
마태복음 1장 19절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우리는 보통 의로운 사람이라고 하면, 옳고 그름을 따지는 정의의 사도를 생각한다. 하지만 성경은 요셉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하며, 요셉이 마리아의 문제를 드러내려 하기보다 그녀를 수치스럽지 않게 하기 위해 조용히 덮어주려 했다고 말씀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사람은 많지만, 상대방을 이해하고 그의 수치를 덜어주려 배려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만일 요셉이 오늘날 말하는 의로운 사람이어서 마리아를 욕되게 했다면, 어떻게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실 수 있었을까? 요셉의 '드러내지 않으려는' 따뜻한 마음을 통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게 되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을 들추어내려고 하기보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 죄를 감추어 주시려 했다. 2023년에는 상대방을 배려하고 이해함으로서 좀더 따뜻한 세상을 만들었으면 한다.
▲최덕성 박사. |
5.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기독교사상연구원 원장
고린도전서 1장 21절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코로나19가 세상을 위축시키자, 교회 예배자 수가 줄어들었다.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이 줄었다. 목사후보생과 신학과 지망생도 줄었다.
하나님은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한다. 전도는 '교회 가자'는 권유가 아니다. 예수가 그리스도(구원자)라고 선포하는 행위, 곧 '케리그마' 활동이다.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전도, 설교, 가르침, 증언이다.
2023년에도 종교다원주의는 성행할 것이다. 모든 종교는 동일동가(同一同價)이며 다 하나님의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고 말하는 신학자가 많아질 것이다. '이슬람 기독교인, 불자 기독교인'이라는 종교인들이 증가할 것이다. 기독교의 본질이 윤리실천에 있다고 하는 자들이 성행할 것이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다. 하나님의 약하심은 사람보다 강하다. 예수 십자가의 도는 멸망한 자에게는 미련한 것이다. 그러나 구원을 받는 자들에게 유일한 하나님의 능력이다. 하나님은 지혜자들의 지혜를 폐하고, 총명자들의 총명을 폐한다.
전도 곧 케리그마 선포 활동 중심의 복음운동과 성령의 바람을 기대한다. 하나님이 역사하면 기독교는 순식간에 부흥할 수 있다. 각자의 처지와 방법에 따라 '전도'에 힘쓰자.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
▲김재성 박사. |
6. 김재성 박사
국제신대(현 수도국제대) 전 부총장, 한국복음주의신학회·한국개혁신학회 전 회장
유다서 1장 20-21절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이 말씀에는 초대교회의 알찬 신앙이 담겨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모두 고난의 시대를 이겨내고, 힘차게 성숙하는 성도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정일웅 박사. |
7. 정일웅 박사
한국코메니우스연구소 대표, 총신대 전 총장
빌립보서 3장 14절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우리 인생은 마라톤 코스를 달리는 선수와 같다. 각자 선정한 인생 목표를 향해 지난 한 해 동안도 열심히 달리기만 한 것 같다. 생각하면 달려야 할 그 방향과 목표 때문에 오늘도 인간은 움직이고, 꿈을 꾸며, 환상을 그리고, 부푼 기대와 함께 현실을 견디며, 인내의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인생의 삶에서 달려야 할 목표를 가지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렇지만 우리 기독인들이 끝까지 달려야 할 방향과 푯대는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간다고 한 그 상(賞)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도 바울이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었던 비밀한 것으로, 하나님이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낸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니 곧 영광의 소망이라"고 증언한 그대로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골 1:26-27). 그리고 우리가 달려야 할 궤도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이지, 그분 밖에서는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각자가 설정한 인생의 목표를 뛰어넘어 하나님이 설정해 두신 그리스도를 영광의 소망(푯대)으로 삼게 한 그 푯대를 향하여, 그분 안에서 힘차게 달리는 참으로 복된 2023년 새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정상운 박사. |
8. 정상운 박사
한국기독교한림원 원장, 성결대 전 총장
마태복음 6장 33절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언제 끝날 줄 모르는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과 에너지 부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그리고 핵전쟁 위협으로 인해 올 한해 세계는 평안한 날을 많이 갖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북한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쏘아대는 미사일 발사와 포사격의 호전적 도발성에 한반도 정세는 어느 때보다 불안한 안보 상황을 보이고 있다. 거기다 미국 연준의 계속된 금리 인상과 고물가 등 국내 여파들, 집값 하락과 수출 부진 그리고 여의도 의회정치 실종과 끝없는 정쟁으로 국내 상황은 암울(暗鬱)하기 그지없다. 한국교회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한국 사회와 마찬가지로 희망의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한 해를 돌아보면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불안과 염려 속에 한 해를 보낸 것 같다.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하루하루의 일상이 전과 같지 않고 불안하게 다가올 때, 염려를 떨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그림자처럼 늘 인간의 마음을 따라다니는 염려로 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람 잘 날 없는 광야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님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공중의 새를 보고, 들의 백합화를 보면서도 왜 염려하느냐" 질책하시며, 근심과 염려를 내려놓고 주님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신다. 매사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고 그를 의지하며, 그의 도우심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살아가라고 말씀하신다. 바라기는 다가오는 2023년 새해도 이 말씀을 붙잡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이상원 박사. |
9. 이상원 박사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대표, 총신대 신대원 전 부총장
갈라디아서 6장 9절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2022년에도 우리나라의 건강한 성질서를 붕괴시키고 신사회주의적인 친동성애 및 친젠더 국가로 바꾸기 위한 악한 시도들이 계속되었고, 이를 막기 위하여 사력을 다 했던 한 해였다. 한국 사회 주류가 무관심하고 한국교회 다수도 별 관심이 없는 상황에서, 거대한 이념세력과 대항한 이 싸움은 골리앗과 다윗의 대결 같았다. 또 긴 시간과 인내를 요구하는 싸움이었고, 앞으로도 이런 싸움이 될 것이다.
이때 위로와 힘이 되는 말씀이 본문 말씀이었다. 감사하게도 낙심이 찾아오는 시간들을 견디면서 포기하지 않고 싸워온 결과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금까지 막아왔고, 교육 과정에도 가시적인 열매가 보이고 있다. 이 열매들에 감사하면서, 2023년에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한다.
▲안명준 박사. |
10. 안명준 박사
평택대 명예교수, 한국장로교신학회 전 회장
야고보서 1장 15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2022년은 러시아의 탐욕이 전쟁을 일으켜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잔인한 살인의 현장을 만들고 전 세계 많은 국가와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보여주는 한 해였다. 3년 동안의 끔찍한 코로나19 전염병 속에서도 인간의 탐욕은 지속적으로 파괴적 행동을 그치지 않고 있다.
탐욕이란 다른 사람들의 소유를 탐내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고질적인 병이다. 왜 전쟁을 하는가? 인간의 탐욕 때문이다. 전쟁은 국가의 전체적 폭력을 동반한다. 전쟁을 하는 목적은 타국의 땅과 재물을 빼앗고 종처럼 만들기 위함이다.
21세기에 인간들은 여전히 전쟁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두발가인의 후손임을 증거하고 있다. 형인 가인이 친 동생 아벨을 죽여 최초의 살인을 시작한(창 4:1-6) 인류는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하였다.
야고보서는 우리 인간의 탐욕이 죄에서 온다고 말한다. 전쟁은 바로 인간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우리는 전쟁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여 그들이 회개하고 변화되어(막 1:14-15), 인간을 존중하고 평화로운 인류 공동체를 유지하도록 우리는 힘써 기도해야 할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평화의 나라이다. 남의 것을 빼앗고 죽이고 살상하는 것이 아니라 의와 평강과 희락이 있으며(롬 14:17), 생명과 사랑의 교제가 넘치는 평화의 세계이다. 2023년은 평화의 왕이신 주님의 통치가 온 세상과 우리의 삶의 주변에 널리 펼쳐지길 기도하며 소망한다.
▲왕대일 박사. |
11. 왕대일 박사
하늘빛교회 담임, 감신대 전 구약학 교수, 한국기독교학회 전 회장
신명기 1장 31절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신명기 1장은 경계선에 서 있는 이스라엘에게 모세가 들려주는 설교다. 신명기 1장 31절은 그 설교의 맺음말이다. 이스라엘이 이 설교를 듣는 자리는 경계선이다. 요단 맞은편 모압 평원이다. 뒤를 돌아보면 40년 광야생활이 떠오르고, 앞을 내다보면 새롭게 시작할 가나안 생활이 펼쳐지는 곳이다.
그 경계선에서 모세가 회상한다. 이스라엘은 지난 세월을 누구와 함께 왔는가? 이스라엘은 지난 시절을 어떻게 헤쳐 왔는가?
이 모세의 설교가 뼈저린 것은 열 하룻길이면 충분했던 여정을 이스라엘이 사십 년 걸려 돌아왔다는 사실이다. 빨리 가기를 원했지만, 돌아와야 했다. 지름길로 가기를 바랐지만,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에 들어서야 했다. 편한 길 가기를 소망했지만, 고비마다 쉽지 않은 길을 걸어야만 했다.
그런데도 이 모세의 설교가 우리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안고서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은 믿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광야 유랑 내내 안고서 여기 경계선까지 도달하게 하셨다는 사실이다.
신명기 1장 31절을 한국교회 목회자들에게 주는 위로의 성구로 꼽았다. 한국교회는 지금 모진 겨울을 나고 있다.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 전염병, 진영 논리로 나뉘어 심하게 다투는 사회, 전쟁의 여파로 닥친 무역 역조, 물가 인상, 대출금리 인상 등은 한국교회의 겨울나기를, 특히 작은교회의 겨울나기를 더욱 힘들게, 더욱 외롭게, 더욱 낯설게 만들었다.
교회의 영적 생태계가 달라지고 있다. 모세의 설교는 이런 한국교회를 향해 주시는 위로의 말씀이다. 기억하자. 하나님이 우리를 안고 여기까지 오셨다. 먼 길을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둘이 함께 가는 길이다.
2023년 한국교회는 누구와 함께 새 시대, 새 사역을 헤쳐갈 것인가? 우리보다 앞서 가시는 하나님을 새롭게 맞아들이자.
▲최대해 박사. |
12. 최대해 박사
대신대 총장. 한국신학대학총장협의회 회장, 대교협 이사
욥기 22장 21절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지난 몇 년 동안 코로나 팬데믹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이 메말라 갔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볼 때입니다.
코로나 상황이 때로는 하나님보다 더 커보일 때가 있습니다. 목회자도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기본을 강조해야 합니다. 우리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주님과 멀어진 상태에서 해야 할 일은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화목은 '복종하다'와 '친밀한 관계에 들어가다'로 이해됩니다.
하나님께 회개하고 화목하게 된 자는 마음의 평강과 주님이 주시는 복을 받고, 새로운 역사를 이루게 됨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든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로 살아가야 함을 깨닫는 것이 축복입니다.
▲최더함 박사. |
13. 최더함 박사
바로善개혁교회 담임, 개혁신학포럼 전 책임전문위원
시편 104편 16절
"여호와의 나무에는 물이 흡족함이여 곧 그가 심으신 레바논 백향목들이로다".
우리나라는 지금 거대담론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작은 진실 하나면 더 이상 소란스러울 일이 없을 터인데, 그 진실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거대한 거짓의 울타리를 치고 있다. 작은 밥상 하나를 덮는답시고 호텔의 거대한 창문 커튼을 뜯어낸다. 소박한 진실은 이런 현란함으로 감출 수 없다. 대개 큰 몸짓일수록 치르는 대가가 큰 법이다.
이런 때일수록 교회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귀한 은혜의 선물을 제공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세상에는 여전히 주의 은혜에 대한 극심한 목마름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이들을 모두 구한답시고 평생 잊지 못할 은혜를 주려고 애쓰지 말자. 크고 화려한 몸짓을 삼가자. 목마른 자에게 필요한 것은 우물물 전부가 아니라 한 컵의 물이면 족하다. 햇살 한 숟가락이면 추위를 물리치고, 어둠의 길을 비추는 것은 작은 등불 하나면 족하다.
한국교회가 이 하나님 은혜의 비결을 가지고 다시 일어서서, 세상 앞에 빛과 소금이 되자. 교회의 거룩성과 영원불멸성을 하나씩 증명해 나가자. 작은 일부터 시작하여 한 걸음씩 세상에게 다가가자. 모든 이로 하여금 교회가 은혜를 나누어 주는 선한 이웃임을 상기시키자. 어제나 오늘이나 여호와의 나무에는 물이 흡족하다.
▲서창원 박사. |
14. 서창원 박사
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 원장, 총신대 교수 역임
시편 138편 8절
"여호와께서 내게 관계된 것을 완전케 하실지라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오니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버리지 마옵소서".
세상이 돌아가는 현상들은 우리를 암울하게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새 정부가 들어섰어도 정쟁은 끊이지 않고, 변화를 기대하지만 기득권 세력만 더 강화되는 아픔이 계속된다. 전혀 생각지 못한 이태원 참사는 모두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안겨주었다. 그런 와중에 연말연시를 맞이하는 세월의 흐름 앞에 겸허히 엎드린다.
내게 관계된 것들, 가까이는 가족들과 사역들 그리고 나라와 열방의 일들에서 착한 마음을 두고 일하시는 주권자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온전케 하시는 역사가 넘치기를 기도한다.
인간은 악해도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시기에, 주의 손으로 지은 것을 버리지 말아달라는 시편 기자의 고백을 되뇌인다. 특히 주님의 보배로운 피로 값주고 사신 주님의 신부, 교회를 버리지 마옵시고 온전케 하옵소서 간절히 기도한다. 주님의 주권적 통치 앞에 모든 열방이 다 무릎을 꿇게 되는 그날을 소망한다. Happy New Year!
▲정성욱 박사. |
15. 정성욱 박사
미국 덴버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
갈라디아서 5장 13절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는 여전히 구원에 대한 심각한 오해들이 횡행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구원파적인 방종주의 구원관과 바리새적인 율법주의 구원관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파괴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갈라디아서 5장 13절은 분명하게 말씀한다.
1) 우리가 우리의 죄와 죄된 삶을 철저히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과 구주로 믿고 영접할 때, 참된 의미에서 자유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죄로부터의 자유, 율법의 정죄와 저주로부터의 자유, 사망의 권세로부터의 자유, 마귀의 권세로부터의 자유, 지옥의 권세로부터의 자유, 우리의 옛 자아로부터의 자유, 세상의 가치관과 우상으로부터의 자유이다.
2) 우리의 믿음이 어리고 유치한 상태에 있을 때, 우리도 때로는 주님이 주신 거룩한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는 어리석음에 빠질 수도 있다.
3) 하지만 우리의 믿음이 점진적으로 자라가면서 우리는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는 성숙한 삶의 주인공이 되어간다.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이 우리 심령에 내주하시게 되며,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은 우리를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시기 때문이다.
2023년, 이렇게 성숙한 구원관이 한국교회 주류를 형성하게 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김구원 박사. |
16. 김구원 박사
단국대 교수, 고대근동학
누가복음 7장 41-42, 47절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쉬운성경: 어떤 채권자에게 빚진 자 둘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졌고, 다른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그런데 그들이 갚을 수가 없었으므로 채권자가 둘 다 탕감해주었다. 그러면 그들 가운데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많은 죄가 사하여 진 이는 그 사랑함이 많음이라.)
죄란 무엇인가? 성경은 이 질문에 두 가지로 답한다. 하나는 죄를 범법으로 이해하는 입장이다. 즉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인간이 넘어서는 안 되는 행동의 선을 주었듯, 이스라엘에게도 침범해서는 안 되는 행동의 영역을 율법의 형태로 주었다. 그 율법이 규정한 선을 넘는 것(trespass)이 죄이다.
이 경우 죄는 법정 개념이 된다. 그리고 법의 전문가들(인용된 본문의 문맥에서는 바리새인들)이 죄가 무엇인지 규정하며, 그들 자신이 가장 의로운 자처럼 행세할 수 있다. 그리고 율법의 세부 내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인용된 본문 문맥에서는 죄인, 창녀인 여인)은 언제나 죄인으로 규정된다.
하지만 이것이 죄에 대한 유일한 성경적 정의(定義)는 아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죄를 채무에 비유하여 설명하는데, 이것은 성경의 언약 개념에 근거한 것이다. 언약 관계는 하나님이 먼저 무조건적 사랑으로 베푸신 사랑과 은혜로 시작된다. 즉 모든 피조물들은 그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빚진 자이다. 그리고 죄는 하나님이 먼저 베푸신 큰 은혜, 구원, 사랑을 하나님과 이웃 사랑의 삶으로 갚지 않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예수님을 홀대하고 죄인들을 사랑하지 않는 바리새인들이 진짜 죄인이고, 가난하고 비참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향유를 부수어 예수님을 한없이 사랑한 여인이 참된 의인이다.
죄를 채무에 비유한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사랑하는 자가 의인이다"고 말씀하신다. 한국 사회에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신뢰도나 호감도가 낮은 이유는, 사랑함이 부족했기 때문은 아닐까?
2023년에는 그리스도인들이 후회 없이 사랑하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내 부모와 자녀들을 후회없이 사랑하고, 내 교우들과 친구들, 그리고 사회의 불우한 이웃들을 원 없이 사랑하기로 다짐하면 좋겠다. 정의로운 사회는 사랑할 때 넘치게 이루어진다.
▲박욱주 박사. |
17. 박욱주 박사
좁은문진리교회, 연세대 연신원 겸임교수
히브리서 10장 25절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2022년 말 현재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는 수습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교회에는 여전히 그 상흔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코로나 사태 중 신자들의 교회 이탈은 가속화되었다. 이제 '가나안 성도'를 넘어 '탈교회인'들이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존재한다. 첫 번째 요인은 교회들이 하나님을 믿는 삶에 관심을 갖는 이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교역자들과 신자들 모두 진정으로 세속에 물들지 않은 온전한 신앙의 모범을 보이지 못했고, 그 증거들이 교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에 대해 교회는 스스로를 진지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두 번째 요인은 우리 사회 전반의 삶의 형태가 극단적인 개인화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다. 청년층과 노년층을 중심으로 1인 가구 증가세가 가파르고, 온라인과 모바일로 연결된 피상적이고 가상적인 인간관계가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 믿음의 정착은 하나님의 계명에 바탕을 둔 신자들의 진정성 있는 교제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작금의 세태를 보면 그 조건적 기반이 되는 기본 인간관계 자체가 해체 일로에 놓여있다.
이처럼 교회 내부와 외부 양면에서 교회의 공동체성을 무너뜨리려는 힘이 거세지고 있다. 이것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뉴노멀이라면, 우리 신앙인들은 계명을 지키고 예배와 성도들의 교제를 활성화하는 데 더욱 힘을 모아야 한다. 모두가 모이기를 폐하더라도 교회는 거룩한 공동체로서의 본모습을 굳건하게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