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5일은 성탄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다. 

크리스마스는 영어로 그리스도(Christ)의 미사(mass)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노엘(Noël), 이탈리아에선 나탈레(Natale), 독일에선 바이나흐텐(Weihnachten)이라고 한다. 전야는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한다.

다음은 지난 12월 9일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신학위원장 김윤태 교수가 발표한 '성탄절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서 발췌한 성탄절의 유래와 성경적 의미.

크리스마스(성탄절)는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한 생명의 빛으로 오셔서 그를 믿는 자들에게 구주가 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또는 절기)이다.

크리스마스(성탄절)는 종교적인 절기인 동시에 세속적인 절기이다. 크리스마스는 종교적으로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날이지만, 동시에 세속적으로도 기독교 신앙을 갖지 않은 이들까지, 어느 특정한 기독교 국가에만 한정되지 않고 모든 지구촌 사람들이 다 함께 즐기는 몇 안되는 지구촌 절기이다.

크리스마스 하면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단어들은 선물, 성탄 장식, 캐롤송, 성탄축하 예배 및 행사, 휴일 등과 같은 것이다.

교회 밖에서도 중요한 관공서나 건물 혹은 광장이나 사거리를 위시하여 상점들마다 성탄 장식이 설치되어 밤거리의 풍경을 바꾸어 놓기도 하고, 상점들마다 성탄 캐롤송이 온 거리마다 울려 퍼지고 백화점이나 쇼핑센터 등에서는 일찍부터 연인과 가족들을 위한 성탄 선물들을 온갖 장식들과 더불어 풍성하게 진열해 놓고 시끌벅적한 세일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신자든 비신자이든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구입하여 가족 친척 지인들에게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성탄절 유래와 역사

성탄절이 오늘날 우리처럼 지키는 것은 역사 속에서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성탄절이 세속적 의미에서 세계인들의 휴일이자 축제의 날이 되게 된 계기는 1870년 미국 의회가 12월 25일 성탄절을 국가적인 휴일로 지정한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오늘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의 성탄절 축하 모습은 사실 오랜 역사 속에서 기독교적인 전통과 이교적인 전통이 혼합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성탄절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한 것으로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기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출생 연도와 날자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성경이 이에 대해 명확히 말해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더불어 교회가 종교적 의식으로서 예수님의 탄생을 어떻게 축하해야 하는지도 이렇게 해야 한다고 성경적으로 규정해서 말할 수 없다.

성탄절과 더불어 기독교인들에게 중요한 종교적 행사인 부활절과 관련해서는 성경이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에 관하여 그 시기와 내용을 시간대별로 자세히 기록하고 있으며 신약성경에 부활절에 관한 암시적인 언급(고전 5:7-8)이 있기도 하다. 부활절은 이미 2세기 중엽부터 기독교의 중요한 절기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이에 비해 성탄과 관련해서는 성경적인 정보가 제한적이다. 비록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한 기사를 소개해 주고 있지만, 요한복음과 바울서신서들에는 이와 관련한 기사가 없다. 뿐만 아니라 복음서에서 소개되고 있는 예수님의 탄생관련 기사들에서도 예수님의 탄생일과 관련한 정보는 제공되고 있지 않다.

이레네우스(130-200), 터툴리안 (160-225), 알렉산더의 오리겐 (165-264) 등과 같은 이른 시대의 초대교회 교부들의 글에서도 성탄절에 관한 언급은 찾아보기 어렵다. 2세기경에 기록된 도마복음서와 같은 외경들에서 예수님의 탄생과 소년기에 대한 언급들이 나타나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예수님의 탄생일에 관한 내용은 없다.

예수님의 탄생일과 관련한 관심과 언급은 3세기경부터 나타난다. 알렉산더의 클레멘트는 예수님의 탄생 연도와 날자에 관해 당시 기독교 내에 있는 몇 가지 다른 견해들을 소개해 주는데, 혹은 아우구스투스 28년 파촌(이집트의 월력)월 25일 (5월 20일)로 보거나 혹은 4월 20일이나 21일로 보는 견해들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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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기독교 내에 성탄절이 보편적인 절기로 굳어지게 되는 것은 4세기경에 이르러서인데, 서방교회는 12월 25일을, 동방교회는 1월 6일을 예수님의 탄생일로 확정하고 성탄절로 지키게 된다. 그런데 왜 교회가 12월 25일을 성탄일로 정했는지는 명확하게 알려지고 있지는 않다. 다만, 일반적으로 유력하게 알려지고 있는 견해로는 성탄절과 기독교를 로마 제국 내 널리 퍼지게 할 목적으로 당대의 이방 절기를 채용한 것이라는 견해이다. 

당대 로마인들은 12월 중순경에 로마 신화에 나오는 농경신인 사투르누스(saturnus)에게 풍작을 기원하는 사투르날리아 축제를 행하였는데, 그들은 이 때가 태양신 미트라가 탄생한 날로 여겼다. 초대교회 기독교 지도자들은 이방인들에게 세상의 참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기념하는 성탄절을 지키게 함으로 이방 축제를 대신하게 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A.D. 350년 당시 로마 주교 율리오 1세가 그때까지 로마 사람들의 축제일이었던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정한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성탄일을 12월 25일(서방교회) 또는 1월 6일(동방교회)로 정하게 된 것과 관련한 또 다른 설명은 3세기경 저술가인 율리우스 아프리카누스가 제시한 것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날과 탄생하신 날이 동일한 날이라는 믿음과 관련하여 설명하는 것이다.

서방 교회는 카르타고의 터툴리안 이후 일반적으로 예수님이 운명하신 날을 니산월 14일로 보았는데, 이는 태양력으로는 3월 25일이다. 12월 25일은 이로부터 9개월 앞선 날이다.

마리아의 수태고지의 날과 예수님께서 운명하신 날을 동일한 날로 보는 믿음은 수태고지로부터 만 9개월 후인 12월 25일을 예수님의 탄생일로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동방교회는 수태고지일을 헬라력을 따라 첫번째 봄의 14일 (4월 6일)로 봄으로 따라서 만 9개월 뒤인 1월 6일을 탄생일로 지키게 되었다는 것이다.

성탄절은 말 그대로 세상에 생명의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고 절기이다. 성탄절에 행해지는 문화나 관습은 어쩌면 이교적인 배경이 기독교 문화화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게 봄으로 한편으로는 성탄절을 폐지하자는 주장까지도 나올 수 있다.

실제로 종교개혁자 칼빈은 로마 카톨릭 교회가 연례적으로 지켜오던 축일과 절기들을 폐지하면서 성탄절도 함께 폐지하였다. 이런 칼빈의 입장은 당시 제네바 의회와 충돌을 빚는 한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이후 네덜란드 개혁교회도 이러한 칼빈의 입장을 따라서 1574년 도르트레흐트 총회에서 비록 성탄절과 부활절 그리고 성령 강림절에 그에 관한 설교를 하는 것은 좋다고 여겼지만, 기독교 연례 행사로 이러한 절기를 지키는 것은 모두 취소하고 주일 하나면 충분하다고 결정했다.

사실 초대교회는 안식후 첫 날 곧 주일을 축제처럼 여기며 그 날에 모여 예배를 드리며 성찬을 행하였고 주일 외에 다른 특별한 절기를 지키지 않았다. 이러한 초대교회의 관습과 종교개혁자 칼빈의 입장을 따른다면 오늘날 부활절도 성탄절과 더불어 주일보다 더 나은 어떤 특별한 날로 지정하여 축제일로 지키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만약 부활절이 기독교인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절기로 지켜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인다면 성탄절도 동일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만약 성탄절을 부활절과 함께 기독교의 절기로 받아 들일 수 있다면 이제 문제는 성탄절을 어떻게 지키는 것이 성탄절의 참된 의미를 따라 바르게 지키는 것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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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성탄절 문화 유래 

기독교가 서유럽으로 전파되면서 성탄절 트리장식 등과 같이 성탄절을 지키는 방식에 여러 변화들이 생겼는데, 이 또한 이방절기들의 방식들이 기독교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기독교가 서유럽으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선교사들은 이방신전을 파괴하는 대신 교회당으로 개조해서 사용하고 이방절기를 기독교 순교자들을 기리는 절기로 바꾸는 등과 같은 방식으로 성탄절을 지키는 방식 또한 그렇게 변화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전나무와 같은 상록수에 인형과 종 선물장식과 그리고 색색의 전구를 다는 성탄 트리는 성탄절 장식으로 대표적인 것이다. 상록수는 고대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관습이 있었는데, 브리테니카 백과사전에 따르면 고대 바벨론 이집트 로마인들에게서 이러한 관습은 흔한 것이었다.

이런 관습은 북유럽을 중심으로 유럽인들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었는데, 유럽인들은 동지가 되면 동지를 기념하는 동시에 악령을 쫓는 의미로 상록수에 등불 등 조명을 달았고 이런 관습은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성탄절을 기념하는 방식으로 흡수되었다.

성탄 트리와 관련한 또 하나의 일화는 마틴 루터와 관련된 것이다.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에 루터가 숲 길을 산책하던 중 전나무 위에 앉은 눈이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을 보며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곧 아무리 초라한 나무라도 빛을 받으면 주변까지 빛을 비추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깨달음으로 그는 전나무에 눈 모양 솜과 촛불 그리고 리본장식을 하여 '이와 같이 빛을 밝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권하는 설교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루터가 전하고자 한 설교의 내용이 아닌 그가 사용한 나무의 장식을 따라 하기 시작한 것이 성탄 트리의 기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성탄절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대표적인 문화는 산타클로스와 선물이다. 산타클로스란 성 니콜라스(Saint Nicholas)라는 뜻이다. 니콜라스는 4세기경 미라(Myra)의 감독으로서 특별히 남몰래 가난한 자들에게 선행을 많이 베푼 사람으로 알려진다.

니콜라스 사후 이러한 니콜라스의 선행은 노르만족을 통해 유럽으로 전파되었고, 12세기 초 프랑스의 수녀들은 니콜라스 축일인 12월 6일 하루 전 12월 5일에 그의 선행을 기념해 가난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었다.

이후 이러한 관습은 유럽에 확산되어 12월 6일이 되면 가족 중 한 명이 니콜라스의 분장을 하고 나타나 아이들에게는 칭찬과 선물을 주었는데, 17세기경 미국 신대륙으로 이주한 네덜란드 사람들이 세인트 니콜라스를 '산테 클라스'라고 부르게 된 것이 영미권에서 산타클로스가 되었다.

그러다 처음 12월 6일에 행해지던 산타클로스 축제가 뉴욕에 거주하던 네덜란드 이주민들에 의해 12월 25일로 합쳐지면서 오늘날처럼 산타클로스와 선물이 성탄절을 상징하는 것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성탄절

우리나라 최초의 성탄절은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소개되었다. 1886년 12월 24일 스크랜튼 여사는 이화학당 소녀들을 위해 성탄 트리를 세웠다.

1887년 12월 성탄절에 아펜젤러는 배재학당 아이들에게 성탄절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양말에 선물을 담아 학생들에게 주었는데 이것이 한국에서의 첫 번째 성탄 트리와 산타클로스 선물이 되었다.

이후 일제가 패망한 후 미군정 시절 12월 25일을 공휴일로 지정하였고 그것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