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정책, 북한 당국자 아닌 동포들 마음 얻어야
통일 하나님께 맡기고, 한 그루의 묘목을 심어야
북한 인권 개선, 北 국제사회 끌어내는 작업부터
'윤석열 정부 시대 북한주민 인권 정책'이라는 주제로 기독교학술원(원장 김영한 박사) 제97회 월례포럼이 2일 오후 서울 양재동 온누리교회(담임 이재훈 목사) 화평홀에서 개최됐다.
이날 경건회와 김영한 원장의 개회사 후 주도홍 박사(전 백석대 부총장)의 발표, 김병로 박사(서울대)의 논평, 토론과 김영한 박사의 종합 등이 진행됐다. 앞선 경건회에서는 오성종 박사(전 칼빈대 신대원장) 인도로 김중석 목사(사랑교회 원로)가 설교했다.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 주민 인권 향상이 주목적이어야 한다'는 제목으로 개회사를 전한 김영한 원장은 "문재인 정권의 대북정책은 총체적 실책이었다. 그 결과물은 개성 남북협력사무소 폭파로 상징된다"며 "윤 대통령의 '8.15 담대한 구상'에 대한 북한의 냉담한 반응 이후, 현재 남북 간 소통은 거의 단절됐다.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 등을 빌미로 ICBM 추가 발사나 7차 핵실험 등 고강도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김영한 원장은 "통일 정책은 북한 당국자에 맞추지 말고, 북한 동포들의 마음을 얻는데 두어야 한다. 서독은 통일이라는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으나, 동방정책으로 동독 주민들의 인권 향상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 동독인들의 마음을 얻었다. 서독은 1989년 역사의 기회를 포착해 동독 주민들이 원하는대로 흡수통일에 이른 것"이라고 소개했다.
김 원장은 "대한민국은 지난 10월 유엔 인권위원회 이사국 선거에서 낙선했다. 2006년 이사국 출범 후 한 번도 탈락한 적이 없었지만, 방글라데시·몰디브·베트남·키르기스스탄 등 인권 취약국들이 대신 선출됐다"며 "이는 지난 3년 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서 빠졌고, 북한인권법을 제정하고도 시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중국 신장 위구르 인권 침해 규탄 명단에 빠진 것은 외교실책"이라고 밝혔다.
그는 "북한에 핵폐기 의사가 있다는 2018년 정의용 전 특사의 허구적 메시지에 의해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이 진행됐다. 정의용과 서훈, 문재인 전 대통령은 김정은의 비핵화 사기극에 '보증인' 역할을 충실하게 했다"며 "그들을 믿고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두 차례나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했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최근 화성 17형 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로 북한에 핵폐기 의사가 없는 것이 밝혀졌고, 7차 핵실험을 앞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국무부 동아태 담당 부차관보 정 박(Jung Pak)의 지난 11월 15일 북한인권 간담회 발언도 인용했다. 그는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인도주의 위기가 대북 제재 때문이라는 비난이 있는데, 인권 유린 책임이 김정은 정권에 있다는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려는 것"이라며 "북한의 인도주의 위기는 김정은 정권이 자원을 전용해 불법 대량살상무기를 만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영한 원장은 "북한 김정은은 북한 주민의 1년치 식량을 미사일 실험으로 낭비한 폭군이다. 북한 정권은 200만 인민을 굶겨 죽이면서, 마침내 양탄일성(兩彈⼀星·원자폭탄과 수소폭탄, 대륙간 탄도미사일)이라는 군사 강국을 목표로 나아가고 있다"며 "김정은이 10세 어린 딸의 손을 잡고 나타난 것은 아이들의 왕좌(王座)를 지키기 위해 핵과 미사일은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이러한 북한에 대해 지난 5년간 문재인과 정권 인사들은 아무런 항의를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김 원장은 "지금 한국은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안보 교훈을 얻어야 한다. 우크라이나가 핵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러시아의 침공을 당했겠는가? 그러나 젤렌스키 대통령의 리더십과 군대의 결사항전 의지, 미국 등 나토 국가들의 무기 지원으로 전쟁 9개월째 우크라이나는 남부 거점 헤르손까지 탈환하는 등 승기를 잡고 있다"며 "유약한 나라에 평화란 없다. 우크라이나 장병들의 목숨 건 저항에, 싸울 의지 없는 러시아군은 퇴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2003년 이후 유엔은 매년 북한 인권결의안을 채택했고, 미국은 2004년 북한인권법을 채택해 북한 주민들의 인권신장을 위한 재정 지원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도 2016년 북한인권법을 제정했으나, 2017년 문재인 정부에 의해 북한인권재단은 문을 닫았고 북한인권 정책은 실종됐다"며 "북한 정권은 북한 주민의 인권 향상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의 인권 침해 상태를 유엔 등 국제사회에 고발해 북한 정권이 수치를 느끼고 인권 상태를 향상 시키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와 함께 "서독 교회 프라이카우프(Freikauf) 인권 정책은 1964년부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까지 26년간 진행됐다. 서독 교회는 3만 3,755명의 정치범과 25만여 명의 가족 이주를 위해 동독에 34억 6,400만 마르크를 지출했다. 현재 가치로 한 사람을 서독으로 데려오는데 1억여 원을 쓴 것"이라며 "서독 교회의 이러한 섬김은 복음에 근거할 때 자연스러웠고, 동족을 돕는 결과를 가져왔다. 동시에 박해 가운데 죽어가는 동독 교회를 살리고 활성화했다"고 말했다.
또 "한국은 서독의 프라이카우프가 독일 통일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것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프라이카우프로 합의된 물자 지원 실무는 슈투트가르트 독일교회연합(EKD) 산하 사회구호복지기구 디아코니아 재단이 담당했다"며 "서독 교회가 디아코니아 재단을 통해 동독을 사랑으로 지원하면서 서로 간 깊은 신뢰가 형성됐다. 동독 정부도 서독 교회와 동독 자치단체를 오가는 돈과 물품을 묵인했다"고 소개했다.
김영한 원장은 "태영호는 정부가 정주영 500마리 소 떼처럼 북한 코로나를 지원해야 한다고 아쉬워했다. 그렇지 않고선 북한 정권을 움직일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며 "대북 인도주의 지원사업 허가를 받은 국제 인도주의 단체들과 연계해 민간에서 필요로 하는 식량과 코로나19 백신, 의료용품 등을 북한에 보내야 한다"고 제언했다.
끝으로 "북한 주민들의 인권 회복도 서독의 동방정책에 상응하는 피와 땀과 눈물이 필요하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 지난 5년 동안 정부는 북한 정권과 연방제 통일을 이루고자 저자세 종북적 통일정책을 폈지만, 그 결과는 남한 정부에 대한 경멸이었다"며 "북한 정권에 보조를 맞추지 말고, 눈높이를 낮춰 북한 주민들의 생활과 인권 개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통일의 시기는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오늘 한 그루의 묘목을 심어야 한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정부는 정치공학적으로 통일을 이루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진정한 통일은 남북한 주민들의 심리적 결합으로 이뤄진다. 평화통일을 위해서는 둘러가야 한다. 한국 사회 체제를 북한보다 정치·경제·문화적으로 안정적이고 더 살기 좋게 만들어야 한다"며 "너무 서두르지 말고, 북한 동포들에게 인도주의적 지원을 지속해야 한다. 북한 정권 눈치를 볼 필요는 없다. 서독처럼, 대한민국은 북한 동포들의 마음부터 얻어야 한다. 그러면 때가 됐을 때 하나님이 자유민주 통일의 날을 허락하실 것"이라고 역설했다.
▲주도홍 박사(맨 왼쪽)가 발표하고 있다. ⓒ기독교학술원 |
◈윤석열 정부와 북한 인권정책
주도홍 박사는 "북한과 같이 닫힌 나라의 인권 문제를 밖으로부터 해결한다는 건 간단하지 않다.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와 우호적 관계이기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중국과 러시아 인권 문제 역시 그리 간단하지 않다"며 "그들을 비판하며 창피를 주는 방법으론, 잃을 것 없는 닫힌 사회 북한에 주는 영향력이 미미할 것이다. 한국의 인권이 개선되기 시작한 것도 국제규범을 따르지 않으면 잃을 것이 많은 나라가 됐을 때부터다. 북한 인권 개선을 원한다면, 북한을 국제사회로 끌어내 혜택과 의무를 갖도록 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주 박사는 "프라이카우프(Freikauf)는 예수님의 대속(代贖)과 비슷하다. 문재인 정부는 프라이카우프를 정치적·공개적으로 시도했는데, 당연히 어려웠다. 투옥된 동독 사상범·정치범을 몸값을 지불하고 서독으로 데려오는 일은 정치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며 "예수의 대속하신 사랑을 믿고 삶의 원리로 받아들이는 교회의 일이었기에 가능했다. 시작도 과정도 단지 독일교회의 일로 가능했다. 나중에 알려졌지만, 당시 서독 교회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재정은 서독 정부가 지원한 것이었다. 서독 정부의 재정 후원으로 동독 주민들의 인권이 향상되고 고통을 덜어준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김준곤 목사(CCC)는 반공주의자였지만, 식량난에 허덕이는 북한 주민들을 위한 '한국교회 식량 은행(Food Bank)'을 제안했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매달 1백억 원씩 모금해 1천억 원이 되면, 북한 당국과 대화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이렇게 북한 주민들과 함께 밥을 먹는 식구(食口)가 되면, 이는 국토 통일보다 중요한 '사랑의 통일'이기에 마땅히 한국교회의 일이라 믿었다. 그는 북한 동포의 '굶주리지 않을 권리'를 순수한 인도주의에 근거하여 외치면서 북한에 젖염소 농장을 완공해 1,760마리를 보냈다"고 평가했다.
주 박사는 "북한 인권은 구호로는 불가능하다. 정주영의 1,001마리 소떼 방문, 서독 교회의 프라이카우프, 김준곤의 젖염소 농장 섬김 등은 바위같은 북한 정권을 부드럽게 녹인 역사였고, 무엇보다 모두 비정치적이었다"며 "오늘 우리는 새로운 관점에서 남북 문제, 북한 인권을 획기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는 한국교회가 복음 위에 더욱 확고히 서는 것"이라고 제안했다.
또 "한국교회가 북한을 향해 은밀하고 지혜롭게 묵언의 프라이카우프를 이뤄냈으면 한다. 한국교회가 가진 돈을 어리석은 부자처럼 창고에 쌓아놓지 말고, 순전히 예수 사랑에 서서 북한 감옥에 있는 1,001명을 육로로 남한에 데려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며 "상상만 해도 가슴이 뛴다. 한국도 세계도 놀라는, 전무후무한 세계교회사가 될 것이다. 정주영 회장의 소떼 방북과 서독 교회의 프라이카우프, 김준곤의 디아코니아를 통해 선한 일을 도모한다면,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병로 박사는 "한반도 분단 극복이라는 난관을 슬기롭게 풀 방법으로 '북한 국제화' 전략이 필요하다. 북한 변화와 혁신을 추동할 중기적 정책 방향 내지 목표로, 개방에 초점을 맞춘 북한 국제화 정책을 전면 추진하는 것"이라며 "북한이 국제사회의 규범에 맞게 행동하도록 경험과 기회를 제공하고, 인적 자원 역량을 강화하는 정책이다. 비핵화와 평화체제 실현을 위해 북한이 현재보다 유연하고 개방적이어야 하므로, 국제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국제협력 공간을 활용해 개혁과 발전을 주도할 수 있는 지식 협력 사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박사는 "비핵화 올인으로는 북한 인권 문제를 풀기 어렵다. 북한 핵무기는 미국의 확장억제력 도움을 받거나, 첨단무기로 선제공격을 하는 등 북한 미사일 봉쇄 방안으로 1차적 안전을 담보해야 한다"며 "이와 함께 외교적 협상과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관계 개선에 기초한 평화를 조성하고, 그것을 실질적으로 담보할 평화구축을 추진해야 한다. 단선적 해법을 넘어 복합적 사유와 전략이 필요하다. 헬싱키 프로세스처럼 안보-경제-인권 바스켓을 교환하는 대전략 구상과 실행이 필요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