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이 위급한 상황을 만났다 생각되면 조급해 집니다. 그러나 정리가 되면 단순해집니다. 단순해지면 강력하게 됩니다. 그런데 조급해 지면 기적을 바라게 됩니다. 그러나 기적이 앞서면 신앙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말씀으로 시작해야 방해 없이 성장하게 됩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사마리아는 저주 받은 땅입니다. 그런데 말씀만 있었던 사마리아는 부흥을 맛보게 됩니다. 그러나 기적으로 시작한 갈릴리는 기적에 대한 헛된 기대감 때문에 비틀거립니다. 가나는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든 기적의 장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시 이곳에 오셔서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십니다. 왕의 신하는 동원할 힘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풀리지 않는 것입니다. 힘을 가졌지만 답답함으로 막힘을 경험하게 됩니다. 기적이 필요하여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러나 조급하면 축소된 예수님을 찾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들이 죽기 전에 빨리 오라고 재촉을 합니다, 다급하면 모든 것이 좁아져 자기 눈앞의 것에만 매달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상황으로 만나지 말고, 말씀으로 만나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야 커지고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말씀과 믿음과 기적이란 순서로 정리해 주십니다. 그래서 모든 상황은 말씀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말씀이 생명이고 씨앗이기에 믿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말씀은 환경과 조건과 상관없이 무조건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에서 시작한 부흥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믿음으로 시작하면 믿음이 일하게 됩니다. 믿음 없는 일은 허망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병자를 고칠 때 항상 묻습니다. "네가 믿느냐?"고, 믿음에서 역사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귀신 들린 아들을 데리고 나온 아버지가 있습니다, "할 수 있거든 불쌍히 여겨 달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냥 넘어가지 않고 "할 수 있거든 이 무엇이냐 믿는 자는 능치 못함이 없다."하십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소리를 지릅니다. "내가 믿나이다. 믿음 없음을 도와주소서." 말을 바꾸고. 문법을 바꾸게 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기적은 결과물이지 시작이 아닌 것입니다. 기적으로 시작하면 열매 없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기적으로 시작하면, 평생을 눈에 보이는 것 찾아다니다 탕진하게 됩니다. 기대감의 위험성을 명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처음이요 나중이라고 하셨습니다. 시작을 말씀으로 하면. 마지막은 예수님이 하신다는 겁니다. 맡기고 안식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말씀에서 시작하면. 예수님께 맡김으로 끝내라는 겁니다. 시작은 말씀이고, 마무리는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할 수 있는 것은 순종하고 할 수 없는 것은 신뢰하면 풍성한 열매를 맺는 폭발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정도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