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크리스천들이 착각하고 있는 게 뭐냐면, 구세주의 사랑을 경험하고 찬양하고 이게 신앙생활의 전부인 줄 아는 겁니다. ...(중략)... 그건 시작인 겁니다. 그렇다면 크리스천으로서 제대로 신앙한다면 뭐가 가능해야 할까요? '사회적·정치적·경제적인 삶의 모든 영역을 다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최고 주권'을 내 삶으로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불교도로서 반기독교 활동 전략을 수립하다 극적으로 회심, 지금은 성경적 가치를 삶으로 실천하기 위한 성경적 세계관을 교육하는 PLI(Practical Leadership Institute) 성경적 스터디클럽을 운영하고 있는 이정훈 교수(울산대)가 <이정훈 교수의 성경적 세계관>을 펴냈다.
책에서는 교회 울타리 안에서만의 신앙생활이 아닌, 경제, 역사, 법·정치, 문화, 철학 등 삶의 각 영역에서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구체적인 기준과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예약 판매 기간 이미 1쇄가 매진되는 등 불황이 계속되는 기독 출판계에서 이례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정훈 교수는 "회복된 크리스천이라면, 성경적 세계관과 반성경적 세계관이 치열하게 다툼을 벌이는 이 땅에서 성경적 세계관을 문화적으로 확산시키는 '문화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며 "'이미' 시작됐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 나라'를 향한 갈망과 믿음은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크리스천이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어떤 정권이나 세속 국가가 아니라, 부르신 각 영역에서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 임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라고 책에서 강조하고 있다. 본지는 책 출간을 맞아 이정훈 교수와의 인터뷰를 시리즈로 연재한다.
과거 반기독교 전략 수립 위해 기독교 열심히 공부
한국 사회와 정치 혼란 해결 방안도 기독교에 있어
성경 자체가 진리, 성경대로만 살면 놀라운 은혜가
안 믿는 사람까지 복되게 하시는 하나님 은총 설명
-극적인 스토리의 주인공으로서 간증만 하고 다니셔도 충분히 여러 교회에서 환영받으실텐데, 이번 책도 그렇고 남들이 잘 가지 않는 어려운 길로 가시는 이유가 있나요.
"이유는 다른 게 없고, 저를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그 부르심에 저항할 수 없는 은혜를 체험하고 그 은혜가 저를 이끌어 가고 있기에, 제 의지로 선택한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하셨습니다. 책에서도 설명했지만 불교에서 출가까지 해서 군 법사로 복무했고, 젊은 나이에 조계종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전역하고 나서는 시민운동에 뛰어들어 반기독교 싱크탱크에 설립 시부터 참여했고, 법과 정치 영역에서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전도의 길을 막고 교회를 위축시킬까 전략을 짜던 사람이었습니다.
학문적으로도 유교 정치와 조선 정치사, 법의 역사를 많이 연구했습니다. 대학원 시절 조선 시대 주류였던 주자 성리학(신(新))을 깊이 공부했고, 시민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을 하면서 소위 신좌파 철학을 공부하다 보니 정통하게 됐습니다. 이런 걸 다 섭렵한 상태에서 회심한 것입니다.
기독교를 비판하고 반기독교 전략을 수립하려면, 먼저 기독교를 알아야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종교개혁의 역사나 칼빈에 대한 신학적 이해, 한국교회사 등을 굉장히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러다 회심을 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이미 이런 사역에 있어 '준비된 사람'이 된 것입니다.
민주주의 이론의 대가인 최장집 교수님도 최근 인류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저작 두 권으로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과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꼽으셨다고 합니다. 지금 한국 사회와 정치의 혼란을 해결하고 선진화시킬 방안이 이 두 권의 책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문화에서 나왔고 종교개혁의 산물입니다. 법철학자로서 칼빈과 칼빈의 제자들이 어떻게 법을 만들고 정치를 추구하고 경제활동을 하는지도 공부했는데, 교회의 일원이 되고 나서 충격받은 것은 오히려 기독교계에서 이런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막스 베버 유행을 주도하고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서구는 왜 이렇게 강한지, 개혁신앙과 칼빈의 영향을 받은 청교도들이 만든 정치와 법, 문화와 사회 등이 왜 강한지, 지방자치가 프랑스에선 잘 안 되고 미국에선 잘 돌아가는 이유 등을 영미권을 적으로 생각했기에 강력히 연구했는데, 회심하면서 오히려 폭발적인 은혜가 됐습니다.
2007년 회심하고 교회를 다니면서 가장 충격을 많이 받았던 것은, 우리 크리스천들이 전혀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성과 속을 분리하는 종교개혁 전의 잘못된 신앙에 빠져 있었습니다.
영미권 한국 연구 전문 서적 중 <한국의 유교 법 민주주의>가 있는데, 저 빼고는 기라성 같은 학자들이 참여했습니다. 한국의 법과 정치에 남아 있는 유교적 요소를 가려낸 연구였는데, 교회에 와서 보니 유교 문화가 많이 남아 있어 또 충격을 받았습니다. 생사관부터 장례 문화 등이 기독교적이어야 하는데, 장례 치를 때 유교 문화가 나타납니다.
장례뿐 아니라 교회 내에서 어떤 조직을 만들 때 성경적이 아니라 유교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性) 역할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성에 있어 차별적이지 않은데 유교적 관점으로 바라보거나, 사농공상의 유교적 직업관을 가진 크리스천들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기독교가 들어온 지 100년이 넘었는데 청교도적인 직업 윤리도 없다 보니, 의문이 생겼습니다. 책에서도 유독교(유교+기독교)와 불독교(불교+기독교), 막수교(마르크스+예수교)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이런 걸 개혁하지 못하면, 이름만 기독교일 뿐 유교나 불교와 다를 바 없어지겠지요.
마르크스가 예수님보다 위에 있는 사람들도 심각합니다. 기업을 성경적으로 경영하는 것, 직장생활의 기독교적 윤리, 또 크리스천의 정치 참여도 문제입니다.
얼마 전 끝난 대선에서도 혼란이 많았지요. 어떤 목사님은 '기독교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대통령이 선출되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길래, 제가 '그 대통령이 기독교적 가치를 실현하면, 목사님은 뭐 하시려고요' 질문드린 적도 있을 정도입니다. 어떤 정치인을 선택해야 하고, 어떤 정치가 성경적 역사 인식에 있어 통전적으로 필요한가 등에 대한 인식이 전무합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이 구약 시대인지 21세기인지 구별이 안 됩니다.
이런 사역을 하느라 비판과 공격도 많이 당하지만, 바른 길을 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를 다음 세대에 가르치지 않으면, 정말 한국교회가 반기독교 세력의 공격 때문이 아니라 자멸할지 모른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됐습니다."
-책 제목이 '성경적 세계관'인데, 보통 사용하는 '기독교 세계관'과 다른 건가요.
"기독교적인 것이 성경적이지요. 성경적이지 않으면 기독교적이지 않은데, 굳이 성경적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기독교인이 아닌 분들에게도 설명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성경 자체가 진리이고, 성경대로 살면 그 자체로 놀라운 은혜(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지금 일반 경제 언론들이 이번 책에 관심을 갖고 다 보도해 주고 계셔서, 왜 그럴까 생각해 봤습니다. 근대 자본주의 정신을 구성했던 프로테스탄트의 진짜 개혁 신앙이 '성경대로, 말씀대로 살자'는 것입니다. '자본주의를 만들어 보자'고 기획한 것이 아니라, 성경대로 살았더니 엄청난 변화가 생겼습니다. 세상을 복되게 만드는 '빛과 소금'이 된 것입니다. 막스 베버가 이를 분석해 정리해 놓은 것이 <프로테스탄트와 자본주의 정신>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안 믿는 사람까지 복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설명해 주고 싶었습니다. 비기독교인들이 적대감을 갖지 않고 책을 통해 성경을 읽게 되고, 그러다 보면 방송 설교도 듣게 되고, 그러다 보면 친구나 누구 따라 교회에 가게 되는 것을 의도한 측면이 있습니다. 한국교회사 초기에도 언더우드 선교사님에게 처음 세례 받았던 노춘경 할아버지가 마태·누가복음을 읽고 변화받은 것처럼 말입니다."
▲이정훈 교수는 "교회가 제구실을 못하니까, 주사파가 복음주의 운동이라는 '양의 탈'을 쓰고 늑대 짓을 하는 것"이라며 "교회에서는 사회·정치·경제 방면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르쳐 주지 않는데, 저런 곳에서는 인권을 강조하면서 자유주의 신앙을 아주 세련되고 교묘하게 주입한다"고 말했다. ⓒ도상태 기자 |
-실제로 그런 경우가 있나요.
"제가 전국을 다니면서 이런 강의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루는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어떤 분이 제 손을 잡고 갑자기 우시는 거예요. 자신이 가톨릭 안과 의사이셨는데, 장로교회로 옮겼다고 하시는 겁니다.
왜 그러는지 여쭤봤더니, 하나님을 정말 사랑해서 '어떻게 하면 제대로 믿을까' 고민했지만 성경을 잘 안 읽으셨대요. 성경을 잘 안 읽어도 신앙생활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셨는데, 제 유튜브를 계속 보다 말씀을 읽게 됐고, 그러다 보니 말씀을 제대로 가르쳐주는 교회에 가고 싶어졌다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공부 많이 시키는 교회를 출석하면서 너무 행복하다고 하시고, 친구 의사들도 전도하고 있다고 하셨어요. 그 말씀을 듣고 엄청 뿌듯했습니다.
그리고 가끔 유튜브 댓글을 보면 '저는 교회를 안 다니지만 교수님 강의에 푹 빠졌어요' 하는 분들이 있으신데, 그렇게 전도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저를 비판하려고 강연장에 왔다가 회심하신 분도 있습니다.
사역 초창기 대구 한 교회 강의에서는 대한민국 건국 역사를 설명하면서 우리 역사 속에 하나님이 얼마나 큰 은혜를 주셨는지 설명한 적이 있는데, 그때 이제 처음 교회에 와봤다는 학생이 나중에 '제가 그날 은혜를 받고 전율이 일어 다음날 강연을 들었던 교회에 등록해 청년부에서 신앙생활 잘 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이런 일들이 도처에서 일어났어요.
특히 해외 한인교회 순회 강연에서는 사회주의에 물들었던 유학생들이 회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저를 사용하시는구나 해서 저도 많은 은혜를 받습니다."
특정 정치인과 정파 지지 위해 신학과 신앙 왜곡해
무속 인정, 다원주의 구원론 주장하다 무속 프레임
기독교는 인류의 빛과 소금, 성경대로 살면 은혜가
정치권 기독교 많이 의식, 성경적 세계관 가르쳐야
-기독교인들의 보통 세계관 중에 '이건 진짜 아닌데' 하고 가장 심각하게 느끼시는 것 한 가지가 있다면.
"한국교회에서 가장 심각하다고 느끼는 부분은, 자기가 선호하는 이데올로기로 말씀을 왜곡하는 현상입니다. 인간적으로 선호하는 그 정치 이데올로기를 지지하기 위해 성경을 왜곡해서 인용하는 것입니다.
이데올로기뿐 아니라 특정 정치인과 정파를 지지하기 위해 신학과 신앙을 왜곡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성경을 왜곡해야 하지요. 결국 LGBTQ나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들의 원인도 신앙과 신학이 완전히 정치 이데올로기로 지배당하고 자기가 선호하는 사상적 조류로 성경과 예수님을 재편집하는 것을 가장 위험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평신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이를 주도하는 신학자와 목회자가 평신도의 이런 잘못된 신앙을 강화·왜곡시킵니다. 그리고 백지 상태의 청년들의 신앙을 왜곡시키는데 기여하기 때문에 굉장히 위험합니다.
이는 좌우의 차이도 없습니다. 지난 대선 때 자유주의 신학을 표방하면서 무속에 관대한 수준이 아니라 무속과 같이 가야 한다던 분들, 예수님이 유일하신 구세주가 아니며, 성경과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던 신학자들이 갑자기 무속 프레임을 들고 나와서 선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추종하는 목회자들도 같이 해서 기겁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평소 자기 신학보다 특정 후보 지지가 더 중요하고, 그를 당선시키려면 양심이건 학문과 사상, 양심의 기준도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무렇게나 왜곡해서 지지하고 당선시키면 그만인 사람들이구나 하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 그들과 맞서던 분들도 진짜 성경적인 복음주의 크리스천의 길을 갔을까요?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복음주의와 전혀 관계없는 잘못된 신앙의 구호들이 난무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제가 책을 통해 기독교가 나쁜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의 빛과 소금이었고, 성경대로 살면 엄청난 은혜가 된다는 것을 안 믿는 사람에게도 전달하려 한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강조하는 건 소통입니다. 불편하지 않게 하면서도 은근하고 강력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광장에 모여 기독교에 대한 혐오감을 심어주는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면, 장기적으로 한국교회에 피해가 올 수 있습니다.
두 극단에서 서로 싸우지만, 양쪽 다 잘못된 신앙을 기반으로 한국교회에 부담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적이고 바른 신앙이 전제가 돼야, 다른 문제들이 해결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한쪽에서는 무속과 신천지 이야기로 공격하고, 다른 쪽에서는 가짜 집사, 주님을 모신다고 공격했습니다. 대선에서 유난히 기독교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총평해 주신다면.
"그만큼 기독교 표를 의식한다는 뜻입니다. 정치인들이 표를 얻기 위해 기독교인을 가장하는 일이 지금도 많지만 앞으로 더 많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만큼 교회 내에서 선동을 위한 분탕질도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한쪽에서는 기독교인들이 싫어하는 무속과 신천지로 프레임을 씌우고 다른 쪽에서는 그걸 방어하는데, 좀 추태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깜짝 놀란 것은 뉴스앤조이도 그런 프레임에 대해 '민주당 기독교 지부냐'고 비판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 사람들이 정신을 차린건가 생각을 잠깐 해봤지만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고요(웃음). 아마 제가 광화문 현상 등을 비판하니까, 자기들도 나쁜 걸 계속 옹호하면 안 되겠구나 이런 생각을 전략적으로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성경적 세계관에 기초한 바른 정치의식을 더욱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개혁돼 있고 세상보다 도덕적·지적 수준이 높아야, 성경적 관점에서 정당이나 정치인들을 지도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계의 영향력을 통해 정당들이 성경적 관점에서 바른 길로 돌아오는 건강한 선순한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정당이 짜놓은 프레임의 실행자나 도구가 되는 추태와 저급한 타락이 아니라, 반대로 무엇이 옳고 바른 길인지 보여줘서 정당이 따라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성경적 세계관 교육이 필요합니다."
▲이정훈 교수의 성경적 세계관이정훈 | PLI | 672쪽 | 25,000원 |
-기독교계는 새 정부와 어떤 관계를 설정해야 할까요.
"정교분리의 왜곡에 대해 제대로 된 이론을 소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에서 정치 이야기를 안 하는 것이 정교분리가 아니지요. 그렇다고 목회자나 신학자들이 캠프에 줄을 서는 비참한 추태가 벌어져서도 안 됩니다. 정치권에 줄 대려는 추태나, 특정 목회자를 통해 정치인이 자기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것은 기독교를 이용하는 행위입니다.
교회와 정부, 국가와의 관계에 대한 관점은 사실 아우구스티누스 때부터 칼빈을 지나 그의 제자 그룹인 베자 등을 넘어 법사상과 철학을 구성해 왔던 신학적 흐름들이 있습니다.
그런 관점을 현대적으로 응용해 법과 정치, 경제를 포함한 여러 영역에서 크리스천들이 선한 영향력을 체계화해야 합니다. 그 기반은 바른 신학적 기준과 판단입니다. 지금 한국 사회와 교회에서 이런 모습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심지어는 교회 내에서도 원로나 지도자 입장에서 바른 길을 사회에 제시할 만한 어른이 없습니다. 김형석 교수님이 최근 그런 활동을 많이 하셨는데, 정치에 좋은 교훈과 조언을 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춰야 합니다.
미국 대선 때 존 파이퍼 목사님과 웨인 그루뎀 박사님이 논쟁을 하셨지요. 파이퍼 목사님이 미국 사회와 정치가 나아갈 관점에서 트럼프를 비판했고, 거기에 그루뎀 박사님이 반론을 폈습니다. 이런 모습이 건강합니다. 미국의 크리스천들이 두 거장의 가르침을 통해 무엇이 성경적이고 크리스천이 세상에 참여하는 바른 태도와 관점인지 한 번 더 묵상해 보는 것이지요.
이걸 해결하려면 리더들이 먼저 스스로 개혁하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바울서신을 보면, 고린도 성도들이 현실에 직면한 문제들을 거론합니다. 결혼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상숭배했던 고기를 먹어도 되는지 등에 대한 답변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상황신학, 실천신학이지요.
지금 한국교회에서는 이러한 정신은 사라지고, 기복주의 아니면 성속 이원론만 남아 있다 보니 신앙이 삶과 관계가 없어집니다. 하지만 삶의 현장에서 청년들이나 많은 크리스천들이 이러한 부분을 궁금해합니다. 진실한 크리스천이라면, 정말 성경대로 살고 싶어합니다. 혼란 가운데 있는 그들에게 무엇이 성경적인지를 답해주는 게 신학입니다.
그런데 신학대 캠퍼스 안에서 우리 삶과 아무 관계없이 자기들끼리 옥신각신하는 고담준론만 신학인 줄 아는 아주 경직되고 고립된 사고방식이 있습니다. 500년 전 종교개혁을 왜 했습니까? 천사의 종류 가지고 논쟁하는 등 쓸데 없는 것들을 신학으로 생각하는 잘못된 풍토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신학적 목회가 없습니다."
-코로나 때도 마찬가지였지요.
"코로나 정국에서 방역을 빌미로 한 교회 위축과 탄압, 종교의 자유 위축 현상 등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정부도 비판해야 하고 위헌성 문제 등에 대해 합리적으로 정부를 비판하고 맞서야 합니다. 하지만 신학적인 측면에서는 우리 스스로 신학적 목회를 건전하게 회복해야 합니다.
성도들에게 무엇이 진정한 예배인지, 주일예배 성수부터 우리가 의식적으로 반드시 지켜야 할 것들뿐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삶의 예배를 어떻게 회복시킬 것이냐 등에 대한 쉬우면서도 깊이 있는 논의들이 나와야 합니다.
이렇게 주장했더니, 목회자들께서 '지금 한가하게 신학 타령 할 때가 아니다' 이러시는 겁니다. 평신도이자 법학 교수인 제가 더 충격을 받았습니다. 지금이 한가하게 신학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 과거 칼빈 같은 분들은 한가해서 종교개혁한 것인가요?
뭔가 잘못돼 있는 의식구조 자체가 일상화돼 버렸습니다. 대신 교회에 나와 열심히 헌신하는 봉사자들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봉사자가 나쁘다는 말이 아닙니다. 신천지에 가서도 봉사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을 거 아닙니까? 왜 정통 교회와 신천지의 봉사가 다른지 설명해 줄 수 없으면, 지금 불교 식으로 '선업 쌓으려 봉사하는 것'이 됩니다.
하지만 목회자 입장에서는 봉사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그러니까 성도가 지금 불교 마인드로 와서 봉사를 하는지 말든지 상관없고, "많이만 와라"입니다. 그들이 언제 어느 날 다 흩어져도 이상할 게 없는 상태가 되지요. 그들이 조계사로 가면 '교회 가나 조계사 가나 가르치는 거 똑같네? 선업 지어서 천국 가야지'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