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으로 고통받는 이들 작은 위안과 희망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 존재, 새삼 깨닫게 해
선악 아는 지식 열매, 벌거벗은 자신과 마주하게 해
코로나 바이러스, 평소 못 보던 예수님 얼굴 드러내
“세상 아무리 위대한 사람도 다 죽었어요. 그들 중에 죽음이 뭔지 알고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죽음이 두렵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면 종교는 없을 것이에요. 하지만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그 종교의 이름이 무엇이라도 마지막 질문은 죽음에 관한 것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을 관찰하는 듯 했다는 故 이어령 교수. 그의 생전 마지막 출간된 책 제목도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의 라틴어였다. 이후 그의 대화록을 정리한 책이 30여 권이나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는 가운데, 암투병 중 정리한 그의 ‘대화록’ 첫 번째 책이기도 하다.
잘 알려져 있듯, 책은 삼성 故 이병철 회장이 죽음과 대면했을 때 한 가톨릭 신부에게 던진 종교와 신, 죽음에 대한 24가지 질문에 대한 ‘이어령의 대답’이다. 암 발병 사실을 안 뒤 수술 대신 ‘병마와의 동행’을 결심한 그는 2019년 7-10월 한 잡지사 기자와 해당 질문들을 주고 받았고, 병세가 깊어진 2021년 12월 한 번 더 같은 질문에 답했다.
같은 물음에 다시 답변한 이유는, 때마침 코로나로 모든 한국인 아니 전 세계 인류가 이병철 회장이 던졌던 스물네 가지의 질문과 똑같은 질문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 연유로 이 책이 뜻하지 않게 코로나 팬데믹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작은 위안의 서, 희망의 메시지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품고 이 책을 미진한 대로 여러분과 공유하는 것을 결단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어령 교수는 코로나로 지친 국민들에게 ‘코로나 패러독스’를 말한다. “코로나(corona)는 왕관이고, 예수님과 천사들 뒤에 원처럼 비치는 원광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좋고 성스럽고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는 그것이, 우리를 괴롭히는 죄악의 팬데믹이 되고 가장 기피 언어가 되었을까요. 이 코로나로 인해 전 인류가 현재 대재앙을 겪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항상 대역병이 지나가고 나면 인구도 불어나고 그 이전보다 번영이 이루어졌습니다.”
코로나의 역설, 패러독스는 계속된다. “지금까지 우리는 죽음을 추상적이고 멀리 있는 존재로 여겼는데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달라졌어요. 죽음은 그저 우리 안에 갇힌 사자, 철창 안에 갇힌 호랑이에 불과했어요. 언젠가 나도 ‘그들처럼’ 죽는다고 생각은 했지만 우리 안에 갇혀 있다고 여긴 것입니다. 일종의 ‘판단 중지’지요. 죽음이 갖는 무서움, 저놈이 날 잡아먹을 수 있다는 공포는 관념으로만 존재할 뿐이었어요.”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안에 갇혀 있다고 여긴 사자와 호랑이, 즉 죽음이 길거리로 뛰쳐나왔다. 특히 우리는 오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죄 없는 어린이들을 포함한 민간인 살상을 비롯한 전쟁의 각종 참상을 SNS로 직접 목격하고 있다. 실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80여 년만의 일.
“죽음의 공포, 굶주린 맹수의 습격을 한두 사람이 아니라 온 마을, 온 도시, 온 인류가 깨닫기 시작한 거야. 으르렁대는 호랑이는 무섭기는 하나 우리 안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그 놈이, 그 끔찍한 공포가 거리로 뛰쳐나온 겁니다. 두려움에 바들바들 떠는 사람이 타인이 아닌 코로나19를 겪는 우리 자신입니다. 그런데 이 호랑이, 저 사자가 안 보여. 어디서 어떻게 나타나 덮칠지 몰라요.”
인류는 모털(mortal),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 존재임을 새삼 깨닫고 있다. 이모털(immortal)한 존재는 하나님뿐, 하나님 이외의 존재는 다 죽는다는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다시 불러낸, ‘메멘토 모리’.
이 교수는 이를 ‘원죄’라고 불렀다. “신은 인간에게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을 어겼고 그 선악과로 말미암아 인간은 스스로를 알게 된 거지. 바보는 자기가 바보인지 몰라. 지혜가 있는 사람만이 자기가 바보라는 사실을 깨닫게 돼요. … 결국 ‘자기 언급’, 즉 ‘나는 바보야’라고 생각하는 게 선악과가 의미하는 지식의 열매인 거지.”
그 열매는 미추(美醜)의 열매이고 진선미(眞善美)고 의식주(衣食住)라고 한다. 그런데, 지식의 열매가 의식주? “지식이, 지혜가 바로 의식주여.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 먹는 게 식(食)이잖아. 무화과 잎으로 몸을 가린 게 의(衣)지. 덤불 속에 숨은 게 주(住)라고. 생각해 봐요. 먹고, 입고, 숨으면서 인류의 의식주 걱정이 드디어 시작됐다고. 의식주 걱정이 바로 지식의 열매에서 나온 겁니다.”
벌거벗은 자신과 마주하게 된 지식의 열매가 궁극적으로 보여준 것이 ‘죽음’이며, 그것이 페스트이고 코로나19라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걸 이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베일에 가려졌던 그 얼굴이 코로나19 창궐로 흉하고 무서운 얼굴로 도시 전체, 나라 전체, 지구 전체로 일시에 드러났다. 이는 경험에서 오는 죽음 이상의 것이며, 하나님의 영(靈), 영성에 가까워진 것이라고 그는 풀이했다.
이어령 교수는 감각과 경험이 아닌 ‘이성’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죽음을 만나고 알게 되면서, 그 실체를 제대로 이해(understanding)하게 됐다고 말한다. 이 역시 통념과는 다른 패러독스, 역설이다. 개별적 존재의 죽음이 아닌 인류의 죽음, 한때 옆에서 눈물 흘려줄 사람도 없이 그냥 죽어야 했던 코로나19 시대의 죽음은 우리를 더 절박해지고 더 불안해지게 했다.
그 ‘죽음’은 이 교수가 여섯 살 때 문득 깨닫고 눈물 흘린 것이었다. “죽음이라는 게 거창한 것 같지? 아니야. 내가 신나게 글 쓰고 있는데, 신나게 애들이랑 놀고 있는데 불쑥 부르는 소리를 듣는 거야. ‘그만 놀고 들어와 밥 먹어!’ 이쪽으로, 엄마의 세계로 건너오라는 명령이지(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죽음이 허무요 끝이 아니라는 것을 너는 보여주었다. 선혈이 흐르던 상처가 아물고 그 딱지가 떨어진 아픈 살에서 새살이 돋는다(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죽음과 신은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조리 속에서 다가온다는 겁니다(메멘토 모리).”
“저는 지금 (치료를 위해) 아무것도 안 하고 있습니다. 그냥 암과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약도 안 먹어요. 제게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죽음이 어떤 모습으로, 어떤 발자국 소리로 오는가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종교는 죽음에 관한 것 아닙니까? 백 마디 말 해도 소용 없습니다. 한 번밖에 없는 사건이 탄생과 죽음입니다. 종교만이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죽음은 모든 것을 다 사라지게 하지요. 그러니 나의 종교는 이제 시작하는 것입니다. 맞닥뜨리는 것입니다. 우리 딸은 훌륭히 그걸 해냈지요. (본지 2018년 인터뷰 중).”
코로나 패러독스의 마지막에는 기독교가 있다. “오늘날 불신받고 쇠퇴해가는 기독교에 생명의 가치를 일깨우고 인간의 오만과 그로 인한 재앙을 극복했던 그 힘을 되살려내는 희망입니다. 이는 ‘크리스처니티(Christianity)’가 새롭게 해석되고 기독교에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되는 기회라 생각합니다. 흔한 말로 ‘위기는 기회다’. 기독교에 늘 있어온 일 아닙니까.”
교회는 늘 핍박받았고 ‘코로나19 감염의 온상’처럼 인식돼 지금도 핍박을 받고 있지만, 반전의 기회가 있으리라는 희망을 전해주고 있는 듯하다.
“페스트를 겪으며 무신론이 나왔지만 거꾸로 더 기독교적인 게 나왔다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포스트 코로나에서는 교회에 갈 수 없고 교회가 병균의 온상지처럼 비춰 결과적으로 포스트 코로나 이후 기독교가 타격을 받는 것처럼 비치지만,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가 새롭게 보이고 소위 ‘얼굴이 드러났다’, 민낯을 볼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격리된 공간에서 외롭게 죽어갈 때, 아마 예수님 얼굴을 볼 수 있을 거야.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통해 예수님의 얼굴이 드러난 거야. 보통 때 볼 수 없던 교회의 모습이, 인간의 모습이, 하나님의 모습이 드러난 겁니다.”
지성과 영성, 의문과 믿음,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 그 ‘문지방’ 위에서 평생 사유하고 질문해온 이어령 교수는 <메멘토 모리: 너 두고 나 절대로 안 죽어>에서 ‘하나님의 존재’ 증명부터 창조와 진화, 고통과 불행, 죄악과 속죄, 성경과 종교, 영혼, 천국과 지옥, 윤리, 종말까지 특유의 감각적 언어와 비유, 스토리텔링으로 들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