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을 둘러싼 허영심의 정체는 무엇인가
실제 품질보다 한없이 부풀린 값어치 인정
물질적 풍요로 인간의 영혼 살릴 수 없으며
곤궁과 비참 은폐해 구원 갈망 멀어지게 해
◈허영의 아이러니: 구찌 가문의 흥망과 비극
금주 개봉하는 <하우스 오브 구찌>는 이탈리아의 유명 패션기업 구찌의 창업 가문에서 벌어진 비극적 가족사를 다룬 실화 기반 영화다. 구체적으로는 1995년 발생한 마우리치오 구찌 살인사건을 주된 서사로 다루고 있다.
해외에서는 작년 11월 개봉된 <하우스 오브 구찌>는 영화적 각색을 최소화하고, 실제 구찌 가문의 가족사와 살인사건을 충실히 재현했다는 평을 받는다.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레이디 가가, 아담 드라이버, 알 파치노, 제레미 아이언스, 자레드 레토, 셀마 헤이엑 등 화려한 캐스팅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구찌 가문은 명품에 관심이 없는 이들이라도 누구나 알고 있는 유명 브랜드 구찌를 설립한 이탈리아의 패션 디자이너 가문이다. 1921년 창업주 구찌오 구찌(Guccio Gucci, 1881-1953)에 의해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설립되었다.
창업주 구찌오는 16세의 나이에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 사보이 호텔에서 벨보이로 일하면서, 상류층 고객들의 고급 가방과 의복을 보며 패션 감각을 익혔다.
5년 간의 영국 생활을 마치고 피렌체로 돌아온 그는 가죽 공방에서 가방과 피혁 악세서리 등을 만들며 기술을 연마한 뒤, 1921년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매장을 열었다.
이후 구찌오의 장남 알도 구찌(Aldo Gucci, 1905-1990)가 대단한 경영 수완을 발휘한 덕에 구찌는 미국, 일본, 홍콩 등 세계 패션 시장에서 명품 브랜드로 인정받게 된다.
그러나 알도가 이끌던 2세 경영 시대까지 건재했던 구찌의 브랜드 가치는 1983년 3세 경영 시대로 넘어가면서 급락하기 시작한다.
당시 구찌오의 차남 로돌프 구찌의 아들 마우리치오 구찌가 경영권을 물려받으면서 가문 내 지분 및 경영권 다툼이 본격화되었고, 이로 인해 기업의 이미지와 재정난이 심화되었다.
결국 마우리치오는 1993년 투자회사 인베스트코프에 1억 7천만 달러(약 2000억원)를 받고 자신의 지분 전체를 넘겼다. 이후 구찌 브랜드는 유능한 패션 디자이너 톰 포드가 주도하여 다시금 세계적인 명품 지위를 회복한다.
그러나 구찌 가문의 고난은 경영권 상실로만 끝나지 않았다. 마우리치오가 1995년 밀라노의 자택 앞에서 전처인 파트리치아 레지아니의 사주를 받은 남자에 의해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살인을 청부한 이유는 이혼 시 위자료(14억 원)에 대한 불만과 마우리치오에 의해 버려졌다는 박탈감 때문으로 밝혀졌다.
가난한 세탁소 주인의 딸로 태어난 파트리치아는 마우리치오와의 결혼 후 재벌가 회장 부인으로 변모해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삶을 누렸으나, 그녀의 심한 허영심과 의부증에 지친 마우리치오가 1991년 결국 이혼을 선택했다. 이후 마우리치오가 1995년 재혼을 하려는 모습을 보이자, 파트리치아가 증오심에 살해를 사주했던 것이다.
이 사건은 아이러니한 비극이었는데, 사람들의 허영심을 자극해 부와 명성을 획득한 가문이 바로 그 허영심으로 인해 무너져내렸기 때문이다.
구찌 가문의 제품은 고객들의 재력과 사회적 지위, 그리고 유행에 민감한 패션 감각을 보여주는 지표로 각광을 받았다. 그런데 파트리치아는 이런 과시욕에 사로잡힌 인물이었고, 그녀로 인해 구찌 가문은 커다란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가문의 부와 명성을 지탱해주던 무기가 역으로 가문에 불행을 가져다준 것이다.
▲<하우스 오브 구찌>의 파트리치아(레이디 가가 분). |
◈허영의 심리학: 소속감과 존경 욕구 이면의 어두운 실상
명품에 대한 소비 욕망은 기본적으로 허영심에서 기인한다. 단 이 말에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허영심'이라는 것이 단순히 남들보다 비싼 것을 가졌다는 우월감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만일 명품 소비의 동기가 순전히 이런 말초적 허영심일 뿐이라면, 명품 소비가 그토록 활성화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남들보다 비싼 것을 갖지 않고도 나름 만족스러운 생활을 영위하는 부자나 능력자들도 세상에는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명품 소비를 부추기는 데는 좀 더 심층적인 허영의 논리가 존재한다. 허영심이란, 기본적으로 실재가 아닌 가상을 활용하려는 마음이다.
남들이 나를 본래의 나보다 더 낫게 보아주었으면 하는 마음, 자신의 존재적 실재를 가리면서까지 자신을 온전하고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포장하려는 마음이 허영심의 보다 심층적인 특성이다.
지금은 심리학 분야에서 화석화된 고전 이론 취급을 받지만, 그래도 대중에게는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또 여타 사회과학 분과에서도 자주 활용되는 매슬로우의 욕구계층 이론(5단계)을 따르자면, 명품 소비를 부추기는 욕구는 3단계 '소속감과 애정의 욕구'와 4단계 '존경의 욕구' 두 단계에 모두 걸쳐 있다고 볼 수 있다.
명품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내세움으로써 자신이 일정한 사회적 성취를 이룬 집단에 소속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또한 이를 통해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받으려 하는 욕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재력을 과시하는 것은 이 두 가지 욕구를 충족시키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그래서 제품의 실제적 가치보다 몇 배는 비싼 가격에 패션이나 자동차 명품을 구매하는 것이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 표. 명품 소유는 3, 4단계 욕구와 연관이 있다. ⓒ인생공부방 |
이렇게 재력의 과시를 방편삼아 소속감을 얻고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자기를 통속적인 규격에 맞춰 대상화할 수 있도록 남들에게 내어놓아야만 한다. 이는 자기 삶의 실재 전반을 가리운 채 오로지 일부분만 조작된 이미지로 만들어 제시하는 일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미숙하고 고독하며 저열한 실상은 감추고, 오로지 재능이 넘치고 사교적이며 고상한 면만 드러내어 자기를 포장하는 것이다.
명품은 바로 이런 이미지를 조성하는 데 가장 널리 활용되는 방편이다. 그래서 실제 제품 품질보다 한없이 부풀려진 값어치를 인정받는다.
그러고 보면 명품 가격이 그렇게 비싸다고 보기도 어렵다. 실제 제품을 사용함으로써 얻는 효용보다, 소속감과 인정 욕구가 충족됨으로써 얻는 효용의 크기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은 초지일관 명품을 통해 얻는 효용과 이미지 조성 효과를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잠언, 복음서, 디모데전서, 베드로전서 등 신구약 성경 전체를 통해 과하게 사치스러운 옷과 장식물로 치장하는 일을 금한다.
▲명품으로 치장하려는 허영심은 삶의 어둡고 초라하고 퇴락한 측면을 감추려는 본성이 발현된 것이다. |
이것은 물질적인 풍요로움으로는 인간의 영혼을 살릴 수 없다는 가르침(눅 12:15-21)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사치스러운 치장이 인간 자신의 영혼의 처지 및 실상에 전혀 맞지 않을 뿐더러 그 곤궁함과 비참함을 은폐함으로써 인간의 마음을 구원에 대한 갈망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데 일조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선악과 계명을 어긴 뒤 몸이 벗은 것을 알게 된 아담과 여자가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자신들의 죄상을 감추고자 했던 것처럼(창 3:7-11), 인간은 자기 삶의 어둡고 초라하고 퇴락한 측면을 화려하고 비싼 옷으로 감추려 한다. 명품 브랜드들은 바로 인간의 이런 정신적 약점을 공략해 커다란 이익을 챙긴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