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교회사’ 저자 강석진목사
(Photo : 기독일보) ’북한교회사’ 저자 강석진목사

죤 로스 선교사와 의주의 서상륜 등 5명이 최초의 조선어 성경인 누가복음서를 1882년에 출간하였다. 이 한글 성경의 출간이 조선이 아닌 중국 만주라는 이방 땅에서 만들어져서 조선으로 유입되어 배포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예수님께서 복음 전파 사역에 북쪽 지방인 갈릴리의 어부, 세리, 목수 등의 천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택하여 제자를 삼으신 것 같이 죤 로스는 국경 지대의 장마당(계절시장)과 만주를 넘나들면서 장사를 하는 이북의 봇짐 장사꾼들을 택하여 제자를 삼고 그들과 함께 조선어 성경 번역을 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천시하는 유교의 전통이 있었으나, 이들은 봇짐 장사의 경험을 바탕으로 오히려 복음을 전하는 매서인(권서인)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조선의 속사도가 되었다.

당시 조선 내지에서는 복음 전파가 불가능하였고 성경이 금서였으므로 조선어 성경의 번역과 출간이 국경 넘어의 타지에서 준비되어야 했는데, 죤 로스에 의해 만주 심양 동관교회의 '문광서원'(文光書院)에서 마침내 신약전서가 1887년에 출간되었다. 이 성경의 본문은 사실상 한글 성경의 최초 원본(Original text)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조선 청년 5명과 죤 로스와 멕킨타이어와 함께 각고 끝에 조선어 성경을 번역 출판되었으나 이제 남은 과제는 이 성경을 어떻게 조선 땅에 전해야 하는 것이었다.

1882년 죤 로스는 이 조선어 성경을 조선에 은밀하게 보내기 위해 그의 최초의 제자인 이응찬에게 그 막중한 그 임무를 주었다. 이응찬도 원래 봇짐 장사꾼이었기에 그 무거운 성경 짐을 지고 약 300여 킬로에 이르는 길을 걸어서 지금의 단동의 압록강가의 주막집에 짐을 풀어놓고 그 성경을 안전하게 운반할 것을 알아보기 위해 나룻터와 그 주변을 살펴보고 돌아왔는데, 그 성경 봇짐이 사라진 것이었다. 이를 확인해 본 결과 그 주막집 주인이 수상한 짐을 풀어보고는 그 책이 금서인 것을 알고 관가에 알려질 것을 두려워해 일부는 강에 던져버리고 일부는 불에 태워버린 것이었다.

그 당시 조선의 국경에서는 중국으로부터 반입되는 물자를 감시하고 조사를 엄격히 하였었다. 이에 대해 '열하일기'(熱河日記)를 쓴 연암 박지원은 그의 저서에게 이같이 기록하였다. "옷을 풀어 헤치기도 하고, 바짓가랑이를 훓어 내려 보기도 하며, 이불 봇짐과 옷꾸러미가 강 언덕에 너울거리고 가죽 상자와 종이곽이 풀밭에 어지럽다. 삼단계로 수색이 진행되는데, 일 단계에서 색출되면 곤장을 치고, 이 단계에서 색출이 되면 귀양을 보내며, 삼 단계에서 색출되면 목을 베어서 장대에 내 걸음으로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보게 했다."

이응찬은 낙심을 하고 다시 심양 문광서원으로 돌아와 성경 운반의 실패를 죤 로스 선교사에게 보고하자, 그는 다음과 같이 예언을 하였다.

"성경이 던져진 압록강 물은 조선인들에게 생명수가 될 것이요. 성경이 타다남은 재는 조선 교회가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될 것이다."

죤 로스 선교사는 두 번째로 동일한 임무를 의주 출신 백홍준에게 주었다. 그도 성경을 짊어지고 압록강가에 와서 안전하게 성경을 운반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한 끝에 한지로 만들어진 그 성경을 다 풀어서 허잡한 종이인 것 처럼풀어서 짐속에 구겨놓고, 나머지는 그 성경 한지를 꼬아서 지게 끈처럼 만들어 의주 국경 검사를 무사히 통과하여 마침내 의주 자신의 고향에 당도하였다. 그는 과감하게도 의주 사람들에게 성경을 나누어 주었고 전도하며 예배를 드렸다. 사실상 의주가 최초의 조선어 성경의 도래지였고 최초의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이 형성된 지역이었다.

이를 소문으로 들은 한성에서 사역하고 있었던 언더우드와 마펫, 게일 등은 오히려 변방인 의주에서 다수의 기독교인들이 자생적으로 형성되고 있는 것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었고 이곳까지 와서 그 현장을 보고 집회를 인도하기도 하였다.

1889년 4월 27일에는 한성에서 사역하고 있었던 언더우드 선교사가 이곳 소식을 듣고 자신의 신혼여행지를 의주에 와서 자생적으로 형성된 기독교인들을 만나보았다. 이들은 한성에서 미국 목사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들에게 세례를 베풀어 달라는 요청을 하였다. 언더우드는 이러한 요청을 거부할 수 없어서 세례문답에 선발된 기독교인 33명을 배에 태워서 압록강 중국 측 강가에서 세례를 주었다. 이 집단 세례에 대해 한국 교회사에서는 일명 "한국의 요단강 세례"였다고 기록하였다.

의주 지역은 평양에 교회가 세워지기 전에 이미 사경회가 가장 활발하게 활성화 되었고 초기에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았던 곳이다. 죤 로스 선교사의 5인의 제자 중에 4명이 의주 출신이었고 초대 조선 교회의 성장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백홍준과 한석진과 서경조, 서상륜도 이곳 출신이었다. 이 의주는 평양에 교회가 세워지고 대부흥이 있기 이전에 복음이 최초로 발원된 곳이었고 평양은 발흥된 곳이었다. 이처럼 의주에서 시작된 복음이 바로 황해도 소래로 확산된다. 그리고 한성에까지 그 영향을 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