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7일 오전 8시, 봉담 장례문화원에서 故 이장식 목사 천국환송예배가 열렸다. ©김규진 기자故 이장식 박사(혜암신학연구소 초대 소장, 한신대 명예교수) 천국환송예배가 17일 오전 8시 봉담장례문화원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유족과 그의 제자들, 그리고 한신대 및 기장 총회 관계자들이 함께해 자리를 지켰다.
임명규 목사(남부산용호교회 원로, 기장 총회 증경총회장, NCCK 증경회장)는 '소망의 위로'(살전4:13~18)란 제목의 설교에서 "(이장식 목사님을) 천국에서 만날 그날을 소망하고 있다"고 밝히고, "사랑하는 목사님께서 아픔도 고통도 없는 하늘나라에서 안식하시게 되었다"면서 "참으로 그분이 남기신 아름다운 신앙의 발자취와 향기를 본받아, 우리도 믿음으로 더욱 깨어서 그분 가신 길을 가야 할 것"이라 했다.
이어 임 목사는 "100세를 넘겨 장수하신 우리 목사님, 마지막 가시는 길도 어쩌면 그렇게 아름답게 우리에게 좋은 믿음의 본을 보여주셨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존경스럽다"면서 "사랑하는 유족들에게 위로 가운데 소망을 더욱 굳게 하시고, 오늘 함께 천국환송예배에 참석한 모든 이들, 특별히 후진들에게 더욱 귀한 깨달음과 은혜가 있어 목사님의 뒤를 이어가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조사를 전한 김주한 교수(한신대 신학대학원장)는 "선생님의 일생은 참으로 임마누엘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요 사랑과 진리의 사도로서 예수님의 제자직의 사명을 최선 다해 감당해 온 역사였다"고 말하고, "한국 신학계의 거목이었으며 교회사학계의 선구자, 기독교사상과 신학의 역사를 종합하고 체계화시키는 데 열정을 쏟으셨던 분"이라며 "신학은 에큐메니칼 진영의 신학적 자유성과 복음주의 진영의 교리적 신학체계를 통전적으로 결합시켜 역사신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했다.
이어 "선생님은 '학문과 경건'의 두 수레바퀴를 신학교육 현장에서 구현하시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셨고, 강의실 밖에서는 한없이 자상하시고 인자하신 교육자였다"고 기억한 김 교수는 "선생님은 참으로 '그리스도의 편지'요 '그리스도의 증인'이셨다. 선생님께서 남기신 위대한 믿음의 유업은 선생님의 사랑한 자녀들과 손주들을 통해 계속 이어질 것이며, 생님의 학문적인 유산은 수많은 제자를 통해 더욱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한신대 강성영 총장은 인사말을 통해 "(이장식) 목사님의 사랑과 희생, 헌신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먼저 말하고, "목사님의 자서전 '창파에 배띄우고'(2001, 한들출판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한없는 감동을 받았던 바 있다"며 "격량이 이는 인생, 고해라는 이 바다를 (이장식) 목사님이 헤쳐가셨고 이제 안전한 포구에 도착하셨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강 총장은 "우리 모두, 그리고 한신대도 그 길을 가고 있다"고 말하고, "크고 높은 격랑이 일 때, 우리의 스승님 (이장식) 목사님께서 헤쳐가신 그 길을 꿋꿋하게 헤쳐 나가자"며 "우리 모두 함께 스승님께서 남기신 이 모든 일을 삶을 통해 이뤄가야 할 것이다. 유족들에게 주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한다"고 했다.
이외에도 예배는 임명규 목사의 집례로 나광덕 장로(광명교회)가 기도했으며, 마지막 유족 인사 후에는 기장 총회장 이건희 목사가 축도하기도 했다.
한편 지난 15일 별세한 혜암(惠岩) 이장식 박사는 1921년 경남 진해에서 태어났으며, 100세 신학자로서 한신대와 캐나다 퀸즈신학대를 졸업하고 뉴욕유니언 신학교에서 신학 석사를, 아퀴나스 신학대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족들은 고인에 대해 "평생을 신학 연구와 후학 양성에 힘을 쏟았다"고 기억하고, "한신대를 비롯해 장신대, 숭실대, 고려대 등에서 가르쳤으며, 은퇴 후에는 70세의 나이로 아프리카 케냐장로교 신학대에서 교수로, 선교사로 15년 동안 봉사했다"고 전했다.
이어 "85세 나이로 귀국한 뒤에도 혜암신학연구소를 통해 한국 신학계를 이끌었으며, 이후 지금까지 경기도 화성 광명의 집에서 소박한 노년을 보냈다"고 했다. 저서로는 '기독교사상사' '현대교회학' '평신도는 누구인가' '젊은 어거스틴' '동서양을 아우른 세계교회사 이야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