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병제, 군 내부 권력 견제와 감찰 실질적 불가능 초래
피해자들 가혹행위, 구타, 왕따, 동성 성추행 등 시달려
2년간 군생활, 사회 진출 그만큼 늦어져... 저출산 요인
군 위해서, 교회 위해서도 모병제 전환 논의 필요한 때
◈군대의 권력: 징집제에 의해 노력 없이 유지되는 군 수뇌부의 권력과 이권
군의 규율은 상명하복 원칙을 지켜내는데 달려 있다. 때문에 자신이 관여되어 있는 명령계통은 어떠한 경우에라도 파악되고 있어야 한다.
이에 입영대상자는 훈련소 정식 입소 후 가장 먼저 직속상관 관등성명 목록부터 외운다. 이 관등성명 목록의 1순위는 대한민국 헌법이 지정한 군 통수권자, 바로 대통령이다.
공식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실제 장병들이 체감하는 군생활에서 대통령은 사실상 있으나 마나한 인물, 정훈교육 자료 속에나 가끔 비치는 인물에 불과하다.
대통령이 군 내부에 만연해 있는 통념과 고유한 문화를 일거에 개혁하고 개선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어차피 5년이면 바뀔 인물이므로, 군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군의 진정한 실세는 장성들과 고참급 간부들이다. 물론 대통령은 그들에 대한 인사권을 갖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군 고유의 일반적 인사 원칙을 전면적으로 무시한 채 파격 인사를 단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즉 대통령에 의해 개별적인 인사이동이 단행되더라도 하나의 집합체로서 장성, 고위 영관, 그리고 고참급 간부들이 지닌 권력은 군의 체계가 유지되는 한 이어진다.
대한민국 군 수뇌부가 장악한 이 권력은 징병제를 통해 유지된다. 십시일반을 하듯, 대한민국 남성들 다수가 2년 조금 못미치는 시간 동안 노동력과 시간, 재능을 바쳐 군 수뇌부의 권력을 유지시킨다. 물론 명분은 있다. 군의 고유한 규율과 권력이 유지되어야 국방이라는 최종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찰과 견제가 없는 권력은 인간 본연의 죄성 때문에 거의 당연하게 질적으로 저하되거나 부패한다. 대한민국 군 수뇌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집권 이후 오랜 기간 이어진 군사정권과 그 마지막 자락을 붙든 노태우 정권 시기까지 대한민국 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해 왔다.
이렇게 군 내부 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찰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시간이 길어지면서 군 내 권력의 사유화는 하나의 고질적인 병폐로 자리잡아 버렸고, 그 여파가 징집된 사병들의 병영생활까지 지배하게 되었다.
군 수뇌부는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그 기반이 되는 징병제의 온갖 부조리와 병폐들을 은폐하기 급급하고, 그 가운데 간간이 나오는 병영생활의 피해자들은 가혹행위, 구타, 집단 따돌림, 동성 성추행 등에 시달려 커다란 정신적 충격을 받게 된다.
▲악독한 선임의 지속적인 구타와 가혹행위로 심성이 망가진 조석봉 일병(조현철 분). |
넷플릭스의 〈D.P.〉는 여러 곳에서 현실과 괴리된 장면들을 내보냄으로써 연출상 허점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런 허점 대부분은 박범구 중사(김성균 분)가 이끄는 DP조의 수사방식 및 한호열 상병(구교환 분)과 안준호 이병(정해인 분)의 과장된 능력치 및 활약상에 집중되어 있다.
〈D.P.〉가 묘사하는 병영 내 구타 및 가혹행위, 집단 따돌림, 그 외 여러 악습과 이것들로 인해 조성되는 은근한 긴장감에 대한 묘사는 지극히 사실적이다.
물론 드라마 소재 자체가 그런 악습과 병폐에 짓눌린 병사들의 이야기를 집약해 다루는 D.P.조의 이야기인 만큼, 징집된 장병들이 겪는 고통이 실제 병영생활에서 체감되는 것보다 더 크게 부각된 면도 있다.
하지만 드라마에 묘사된 악습들은 어느 정도까지는 대부분의 사병들이 일반적으로 겪는 것들이고, 일부 부대에서는 그보다 더한 일도 실제로 벌어진다.
당장 이 논평을 작성하는 9월 7일 당일에도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휴가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해군 장병에 대한 기사가 나오고 있다.
◈군대의 유지: 모병제 전환을 통한 국방력 유지와 병영생활 개선
징병제가 이 모든 부조리와 악습의 유일한 원인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병영 내 다양한 악습과 인권유린 상황을 유발하는 핵심 원인 가운데 하나임은 부정할 수 없다.
징병제는 군 수뇌부의 권력을 '자동적으로' 유지하게 해주는 원동력이 된다. 특별한 신체적, 정신적 결함이 있는 경우가 아닌 이상,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징집 연령대 남성이 군에서 봉사한다.
따라서 군 수뇌부는 사병들을 굳이 아낄 필요가 없다. 개인의 인사고과에 영향을 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 군 실세들은 사병들을 자신들의 권력 유지 수단이자 도구로만 다루게 된다.
이는 특정 군 지휘관들에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이다. 누가 지휘관이 되더라도 사병들의 실질적인 처우개선을 위한 노력을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 군 내부에 고착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더해 일부 몰지각하고 이기적인 지휘관들은 군 본연의 국방 업무와 상관없는 사익(私益)을 위한 일에 사병들의 노동력과 재능을 일상적으로 투입하기도 한다.
▲〈D.P.〉에서 자기 안위만을 추구하는 군 간부로 등장하는 천용덕 헌병대장(현봉식 분). |
반면 모병제 국가에서는 군이 병력 자원을 모으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군인에 대한 처우가 형편없고 내부 부조리가 만연해 있으면, 청년들이 아예 군에 자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군의 권력과 힘은 무너진다.
이에 국가는 국방을 위한 군사력 유지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군 실세들은 자신들의 지위와 권력 유지를 위해서라도 모집되는 사병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지위를 높여야 한다.
여기에는 분명 상당한 비용이 든다. 그리고 군이 스스로 체질개선을 위해 각골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현재 국군은 그런 비용과 노력을 감수하고서라도 징병제를 모병제로 전환해야 할 상황에 직면해 있다.
우선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심각한 저출산 문제가 모병제 전환을 요청할 마땅한 근거가 된다. 사회생활을 막 준비하고 시작해야 할 시기 2년을 강제로 허비한 남성들이 지불해야 할 사회적 기회비용은 막대하다.
같은 나이대 여성들에 비해 취업활동 개시 시점이나 사회진출 시점이 2년 늦어지면서, 이들의 혼인도 당연히 시기가 늦어진다. 이는 출산기회 축소를 가져오고, 결국 저출산 문제를 심화시키는 하나의 주된 원인이 된다.
또한 저출산으로 인해 절대적인 병력 수가 부족해지는 상황이 10년 내로 도래한다. 이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군에서는 선제적으로 자동화를 서두르고 기술력에 특화된 군 병력 양성을 시행해야 한다.
현재 2년도 채 되지 않는 징집 기간 동안의 교육과 훈련으로는 장래의 국방력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숙련된 병력 양성이 어렵다.
장병들이 보직에 익숙해질만 하면 제대하는 일이 반복되어, 결국 미숙련 병사들의 교육과 훈련에 다시 과도한 힘을 쏟아야 한다. 이는 현재 국군이 보이고 있는 여러 업무상, 작전상 미숙함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이다.
이 문제 때문에 우리 한국보다 더 심한 군사적 위협을 받는 대만은 2018년 징집제를 전면 폐지했다.
모병제 전환은 당연하게도 병영 선진화에 일정한 도움을 줄 것이다. 군 수뇌부가 병영생활의 악습과 폐단 문제를 방치하면 병력 모집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고, 모집된 장병들 또한 직업군인으로서 자신의 경력을 쌓아야 하기에, 동료들에게 질책받고 원한을 쌓을 일을 기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악질적인 갈굼과 가혹행위는 사병들 모두가 강제로 징집되어 인생의 귀중한 시기를 허비하는 상황에서는 온전하게 해결될 수 없다.
악질적으로 후임을 괴롭히든 말든, 업무에 태만하든 말든, 자기 신변에 큰 위협을 줄 만한 기록이 남는 경우만 아니면 다 똑같이 군복무를 성실하게 이행한 것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군 자체의 여러 문제를 보더라도, 모병제 전환은 필수적이다. 그리고 기독교인 입장에서 보더라도 군 내부에서의 전도 사역 및 교회의 청년 사역을 위해 모병제 전환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징집제 폐지는 청년들의 신앙생활과 훈련의 단절을 방지할 수 있고, 또 많은 이들이 군에서 겪는 부조리함과 환멸 때문에 신앙의 열심이 식어지는 일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계속>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