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언제 이 땅에 오셨을까?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를 떠올리겠지만 실은 그로부터 9개월 전, 아기 예수는 작은 태아의 모습으로 깜깜한 마리아 자궁 속에 오셨다. 왜 어른으로 오지 않으시고 기나긴 9개월의 세월을 마리아 태중에서 보내셨을까? 그것은 작지만 태아의 생명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아기 예수께서 친히 드러내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마리아와 동침하지 않은 정혼한 요셉 입장에서는 자신의 아기가 아니라는 이유로, 또는 원치 않는 임신이라는 이유로, 당시 상황에서는 얼마든지 낙태될 수 있었지만 마리아와 요셉은 임신을 지속하여 우리의 구세주가 탄생하게 되었다. 예수님도 낙태될 뻔 했다는 아찔한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자, 가장 작은 자가 누구일까? 아마도 스스로 자기의 생명을 지켜내지 못하는 자가 아닐까 한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연약한 자는 태아일지 모른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에 비추어보면 모든 태아는 바로 예수님처럼 소중할 수 있으며, 태아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바로 예수님께 그렇게 행하는 것이리라.
나는 인턴시절, 장기려박사님이 계시는 부산복음병원에서 응급실 당직을 하며 평생 잊지 못하는 환자를 보게 되었다. 23세 여성이 과다출혈로 쇼크 상태로 실려 왔는데 혈압과 맥박도 잡히지 않았다. 어느 조산원에서 낙태수술을 받았는데 6개월 된 아기가 왜 이리 크냐고 하면서 조산사는 계속 큐렛으로 긁어내었는데, 자궁벽을 뚫고 창자의 일부까지 쑤셔대어 복강에 엄청난 피가 고이게 되었다. 응급수술로 자궁을 들어내고 창자도 상당부분 제거하면서 복부에 인공항문을 만들어 평생 임신도 못하고 엄청난 고통 속에 살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당시 병원 내 숙소에 사셨던 장기려 박사님께 찾아가 응급실 환자얘기를 하니 박사님은 제게 병원에서 태어나는 아기가 많은지, 죽임을 당하는 아기가 많은지 물으셨다. 박사님은 태어나는 아기보다 오히려 낙태로 죽임을 당하는 아기가 훨씬 많다고 하시면서 굳이 의사가 안 되더라도 낙태만 막을 수만 있다면 의사로 생명을 살리는 수보다 훨씬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산부인과 병원에서 이직 온 간호조무사는 퇴근 무렵에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 지하실 적출물창고에 가보니 한 시간 전 제왕절개 낙태술로 적출된 아기가 양동이 안에서 울고 있어 그 병원을 뛰쳐나왔노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제왕절개로 아기가 태어나면 분만술이지만, 태어난 아이를 방치하면 낙태술이 되는 것이다. 얼마 전 34주된 태아를 분만한 후 울고 있는 아기를 방치하여 죽게 만든 의사가 1심에서 3년형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 이제는 영아살해도 낙태의 의도였으면 무죄가 되는 정신분열적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지금부터 년 말까지 낙태법개정에 관한 국회논의가 불붙을 것이며, 벌써부터 법무부는 여성단체의 로비를 받은 양성평등위원회의 권고를 받아 낙태죄전면허용이라는 해괴망측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헌법재판소 판결의 의미는 낙태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태아의 생명을 최대한 지키면서 여성의 건강권과 행복추구권도 함께 보호하는 합리적 기준을 마련하라는 것이기에 낙태를 허용하는 임신 주수를 최소한으로 정하는 것 외에도 낙태 전 상담과 숙려기간에 대한 조항도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자기결정권은 충분한 설명을 듣고 이해한 후라야 비로소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으므로 초음파영상을 통해 낙태의 실상과 후유증을 설명하며, 그리고 임신을 지속하는 경우 주어지는 정부 및 사회적 지원에 대해서도 충분히 상담해야 한다.
아울러 임신과 출산을 비밀로 해야 할 예외적 상황에서도 생명만큼은 지켜내기 위해서 비밀출산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며, 임신, 출산 및 양육에 대한 남성의 책임을 강화하여 생부를 유전자검사를 통해서라도 끝까지 추적하여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에게도 반드시 자기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우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낙태가 상업주의의 수단이 되지 않도록 건강보험급여의 대상이 되며, 태아적출물이 화장품과 약품원료로 유통되지 않도록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고 낙태시술을 양심에 따라 거부할 수 있는 의료인의 권리도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태아와 여성의 생명과 건강이 모두 지켜지는 합리적인 법안이 만들어지길 소망해 본다.
박상은(샘병원 미션원장, 행동하는 프로라이프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