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편 6:1-6
1 [다윗의 시, 영장으로 현악 스미닛에 맞춘 노래] 여호와여 주의 분으로 나를 견책하지 마옵시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2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긍휼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3 나의 영혼도 심히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4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나을 구원하소서 5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함이 없사오니 음부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6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이 시편 6편은 참 중요한 말씀의 교훈이 있습니다.
시편에 보면 일곱편 정도가 하나님께 용서를 비는 애절한 기도문의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중의 첫 번째가 6편입니다. 마귀는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미혹을 하기도하고 위협하기도 해서 범죄케 만듭니다. 그렇게 범죄하게 되면 하나님께 버림받고 이 세상을 사는 날 동안도 죄값의 말할 수 없는 고통과 불행에 시달리다가 죽으면 그 죄 값으로 음부에 가고 천년 왕국이 끝난 다음에는 사망과 음부도 죽은 자를 내어주매 저희가 다 심판의 부활로 되살아나서 흰 보좌에 앉으신 어린양의 심판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자기 행위록에 의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는데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을 사는 날 동안에도 영적으로 죽어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죄 값으로 회개하지도 못하고 영적으로 예수님을 알아보지도 못합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온전한 회개가 없으면 마귀가 계획한대로 둘째 사망에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메시야의 예표이던 다윗의 범죄
성경에서 다윗은 오실 메시야의 상징적 예표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런 다윗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다윗은 이새의 여덟 번째 아들로 아버지의 양떼를 돌보는 목동으로 훈련 받으며 자랐습니다.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양떼를 지키기 위한 목동의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하나님은 마음에 들어 하셨고 큰 기대감으로 다윗을 도와 주셨을 것입니다. 이런 다윗이 이스라엘을 40년 동안 다스리도록 최고의 자리에 올리시고 그와 함께 해 주셨으나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그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후 그 죄를 깨닫게 되었을 때 그는 철저한 회개를 합니다.
시편 32:1-6에 보면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셀라)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셀라) 이로 인하여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했습니다.
우리의 죄는 행위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죄로 인하여 괴로워하고 하나님의 형벌이 두려워서 잠도 제대로 못잘 것입니다. 하나님이 생사화복(生死禍福)을 주장하시는 분임을 안다면 더더욱 그럴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주의 손이 나를 주야로 누르시니 자기가 말라죽을 지경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깨달음이 있어서 죄를 숨기지 않고 하나님 앞에 다 토설하고 고백하며 애통하고 자복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 죄를 덮어 씌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행위록에 적혀있던 죄를 예수님의 피로 싹 지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용서받고 평생을 감사하면서 은혜보답에 힘써야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같은 죄를 되풀이해서 짓게 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 사람에 대한 용서를 보류하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다”는 다윗의 고백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단 선지자를 통한 고발과 진지한 회개의 자세
다윗이 범죄한 후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 날카롭게 그 죄를 지적하셨습니다. 그때 다윗은 인간적인 조치를 취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었고 가장 두려워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회개하고 통곡을 하며 침상을 적셨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회개의 간절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용서하시고 계속해서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의 죄는 용서 받았지만 다윗은 이 죄로 말미암아 엄청난 시련을 겪게 됩니다.
본문은 다윗이 하나님 앞에 애타게 용서를 구하는 내용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긍휼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나의 영혼도 심히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시6:2-3)”와 같은 표현한 것은 그의 영혼이 지금 지옥으로 던져질까봐 불안하고 두려워서 벌벌 떠는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지옥에 떨어질까 진심으로 뼈가 떨리도록 영혼이 벌벌 떨며 회개하는 진지한 회개의 자세가 오늘날 우리들에게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짐승을 제사장에게 갖다주고 짐승의 피를 흘려 죄를 고백하고 용서해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용서는 영원한 용서가 아니고 예수님이 오셔서 대속의 용서를 하실 때까지 그 사람의 죄를 심판 보류하는 효과 밖에는 없습니다.
사도행전 4:12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아담이후 재림하실 때까지 모든 사람의 죄를 해결해 주시는 유일한 그리스도이시고 그 보혈만이 아담 이후 이 세상에 태어나서 죽는 모든 사람들에게 죄를 용서받게 하실 구주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용서 받지 못하고 죽으면 스올이라고 하는 곳으로 가는데 그곳은 지옥에 들어갈 흰 보좌 심판을 받을 대기소입니다. 그는 그곳에서 절대로 주를 기억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7절의 ‘내 모든 대적’은 사단 마귀를 뜻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음란 마귀의 꾀임에 빠져 하나님을 망각하고 인간적 교만함에 밧세바를 취하였을 뿐 아니라 그의 남편인 우리아까지 적진에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 했으며 거만함은 넘어짐의 앞잡이라 했습니다. 다윗이 죄를 짓지 않았을 때는 하나님이 자신을 눈동자와 같이 지켜주셔서 자신을 해하려는 대적도 막아 주실 것이라는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죄를 지음으로 어두움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철저한 회개 후 담대해진 다윗
흔히들보면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죄를 짓고도 그 죄를 합리화하고 변명하려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이고 미련한 사람입니다. 다윗과 같이 죄를 지었지만 철저히 회개하는 그의 지혜를 본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회복의 역사가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8절은 죄를 한탄하고 자신을 채찍질하고 저주하며 미워하면서 그 죄가 온전히 용서받아지도록 단식하고 부르짖으며 회개했기 때문에 다윗에게 온 영감적인 응답이 “아! 이제 하나님이 내 죄를 용서하셨구나”하고 생각될 때에 다시금 마음이 담대해지면서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모든 원수가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떪이여 홀연히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시6:9-10)”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악령에 미혹되어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었으나 온전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고나니 이제는 하나님의 심판이 그를 괴롭혔던 마귀와 그 앞잡이들에게 향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긍휼의 은혜를 받고 다시금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원만히 회복되고나니까 다윗은 담대해질 수 있고 평안해 질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의 각자의 신앙이 온전한 신앙인 듯 보여도 하나님이 보실 때 철저한 회개가 없었다고 여기시면 헛것이 되어 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철저히 자신을 살피고 무엇보다 죄를 경계하며 죄를 짓지 말 것이며 죄를 짓게 된다면 다윗과 같이 철저한 회개를 통해 용서받기를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고 회복되는 복을 받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