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人生). 사람이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왜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 통곡으로 시작을 하고 살면서 한숨 쉬고, 여러 가지 질병과, 절망, 고통 속에서 허우적대기도 하다가 때론 자신의 기대와 꿈과 잘 들어맞는 삶을 살게 되면 기뻐 뛰며 살다가도, 늘 좋았던 날수보다 괴로웠던 날이 더 많다고 기억하며 살아가는 것일까요?
여러분은 잘된 것은 내 덕이고 못된 것은 조상 탓이며, 이토록 불행한 것 또한 팔자소관이라 어찌할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멸망을 자처했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라 하신 것은 안하고 하지 말라 하신 것은 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피하여 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이 우주공간에 안 계신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육체를 흙으로 빚어 만드셨습니다. 이 육체 속에 하나님의 생기가 없다면 그것은 흙덩이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육체를 보물로 알고 잘못 사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는 껍데기, 그릇입니다.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느냐가 그 가치를 결정합니다. 그 속에 마귀가 들어있으면 마귀단지가 될 것이며, 그 속에 성령이 계시면 성령단지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모셨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눈동자와 같이 보살피시고 온갖 좋은 조건으로 함께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님을 믿고 구원만 얻으면 하나님의 아들, 딸 대접을 받게 됩니다. 또 하늘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도록 후사로 삼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가로막고 있습니다. 마귀는 우리 육체의 본능적인 욕구와 심리적 기대, 허욕과 탐심을 자꾸 자극하여 우리를 미혹하고 있습니다. 결국 마귀의 미끼에 걸려 완전히 신세 망치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뿐 아니라 죽어서 영원토록 그 죄 값의 형벌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 10~11에 보면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했습니다. 동쪽이 서쪽에서 먼 것같이 우리가 회개만 하면 그 죄를 가장 먼 곳으로 버렸다고 하십니다.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도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13절은 마치 아버지가 잘못한 자식을 너무나도 불쌍히 여기시는 것 같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 불쌍히 여기심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자이시기에 우리의 체질을 아시고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육체로 말미암아 영혼의 소망을 그르쳤다는 것을 불쌍히 여기다 못해 하나 뿐인 아들을 우리의 죄 값으로 죽을 자리에 내어주심으로 우리에게 구원 얻을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에베소서 4:26~27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하셨습니다. 남을 미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처럼 불쌍히 여기십시오.
우리가 지은 죄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살면서 얼마나 겁 없이 죄를 지었습니까. 그런 우리를 바라보시던 하나님의 심정으로 상대를 대하시기 바랍니다.
15~16절에 보면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 그곳이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했습니다.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는 것이 인생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덧없는 인생을 내세소망으로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17절 이하와 같이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섬기는 것, 곧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그 법도를 기억하여 행동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할 때 영원부터 영원까지 영생을 보장받게 될 것입니다. 성령을 모신 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고 하나님은 영원히 계시는 분이시니 그런 하나님을 모시는 한 더불어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유를 통치하시는 분입니다. 자기가 만든 피조물은 목적이 있어서 만드셨고 그 목적에 입각하여 모든 것을 관리, 사용하셔서 원대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도 교회로 부르심을 받고 그곳에서 진리와 성령으로 깨달아 회개하고 거듭나서 죄와 저주, 지옥 형벌을 영원히 벗어나게 되고 성령을 모셔들인 그 시간부터 하나님은 영원히 함께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톨스토이의 <인생이란 무엇인가>
톨스토이는 1828년 9월 9일 러시아에서 굉장히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러시아가 자랑하는 대문호(大文豪), 즉 세상에 널리 알려진 매우 뛰어난 작가입니다. 그의 글 중에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는 그 책에서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톨스토이는 처음엔 하나님을 믿지 않던 사람이었습니다. 러시아가 공산주의 혁명이 시작되어 부자들은 재산을 다 빼앗기고 노동장에 이끌려 다니며 함께 일해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회에 불만이 쌓여 농민운동을 전개하다가 당을 반대한 죄로 감옥에 들어가게 되고 감옥에서 나와서 또다시 농민운동을 하려다 멀리 쫓겨나게 됩니다. 그러다 뒤늦게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성경을 탐독하고 목회자들을 통해 질문하고 대화하며 하나님을 알아가게 됩니다. 그러면서 정치도, 재물도, 지위, 명예, 젊음 그 모든 것이 아무 소용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오로지 우리 인생은 신적 창조물인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본체시며 그분께 붙으면 되살아나서 다시 살 수 있고 그분을 떠나면 죽음밖에 없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피조물이라는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자기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고 내 멋대로 인생을 설계해서 헛수고하고 실패하고 속아 살았던 지난날 불신앙을 용서해 달라고 회개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의 주권자이심을 인정하고 그의 말씀과 뜻에 순종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그분이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하시고 영생의 길로 동행해 주실 것이라고 쓴 것이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삶
갈라디아서 6:8에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영생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얼마나 많은 죄를 짓고 어리석고 비참하게 잘못살고 있는지를 깨닫지도 못합니다.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지옥길이란 것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교회 와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성령이 깨닫게 해 주실 때에 성령에 의지해서 영생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6:12에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했습니다. 교회까지 하나님이 불러들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드나들면서도 영생을 취하려는 노력도 없이 건성으로 왔다갔다 하다가는 결국 구원얻지 못하고 지옥 유황불 구덩이에 들어가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부자되고 출세하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닌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기도하십시오. 허황된 망상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될 수 있도록 성령님을 모셔들이시기 바랍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고전3:16-17)”고 하셨습니다.
또 요한복음 17:3에서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타락한 인간의 이성적 지각으로는 하나님을 알아 볼 수 없지만 성령으로 우리에게 계시하시고 체험, 감동케하심으로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아들 예수님을 알게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증거하듯 우리의 인생은 영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살리심으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이미 영생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의 부활로 다시 살아서 그리스도의 왕국에서 하나님 모시고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