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이사야 53:1-6
성경을 전체적으로 깨닫게 되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의 기대가 얼마나 간절하시고 크셨던가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엿새동안 우주 공간에 있는 만물을 하나님의 권능의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엿새째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그 코에 영을 불어 넣어주셔서 산영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하늘과 땅, 땅 아래 물속의 모든 피조물을 주관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인간들이 불행하게도 마귀의 꿰임에 빠져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고 불신하게 되면서 범죄하여 결국 영적 소속이 하나님으로부터 마귀에게로 바뀌어지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인생고(人生苦)는 이때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을 오랜 세월 수종들던 천사였습니다. 그 천사는 하나님의 자리를 취하여 자신이 그 영광을 받기를 원하는 허황된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이 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그 천사와 패거리들을 하늘나라에서 추방시키셨고 그들이 이 죄악 세상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사단의 꼬임에 빠진 이브와 그 남편 아담의 실족으로 인해 인류의 죄는 이 땅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죄로 인하여 영생할 수 있었던 자격을 박탈당했고 에덴에서 쫓겨나게 되면서부터 사람들은 그들의 죄 값으로 저주받은 땅에서 가시덩쿨과 엉겅퀴를 헤치며 이마에 땀이 흐르도록 노력을 해야 연명(延命)할 수 있으며 결국 죽어서는 지옥에 가게 되는 마귀에게 속한 사람들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창3장).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셔서 그렇게 지옥으로 떨어져 들어가는 영혼들을 생각하실 때 너무나 마음이 아프셔서 자기 아들을 희생 양으로 그들의 죄 값을 대신하여 죽게하시고 이 구속의 복음을 성령으로 깨닫게 하심을 받아 체험과 감동으로 믿어지게 하심을 받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하여 죄를 용서받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죄 값으로 인한 저주와 지옥 형벌을 벗어날 뿐만 아니라 전에는 피조물이었던 인간들을 하나님이 성령을 파송시켜 보혜사라는 이름으로 각 사람에게 임하게 하시고 그들을 하나님 뜻 가운데로 인도하셔서 하늘나라까지 데려가 주시게 되는 것이 성경 전체에서 말씀하고 있는 핵심인 것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범죄한 이후부터 하나님은 메시야라고 하는 구원자를 보내 주시겠다고 계속해서 예언하게 해오셨습니다. 이것이 구약성경입니다. 그리고 구약성경의 내용이 신약에서 그대로 성취되어졌음을 기록하고 있고 이것은 세계 역사가 증거하는 역사적 증명이기도 합니다.
구원의 교리을 듣고도 회개치 않음
본문은 예수님이 오시기 약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기록하신 말씀입니다. 1절에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했습니다. 이것은 전해지는 핵심적 구원의 교리와 진리와 복음을 듣고도 믿지 못하고 회개하지 못하고 마귀에게 사로잡혀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후반에 “하나님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구원 얻은 사람이 누구냐는 뜻입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타락한 인간의 이성적 의지나 결단으로 천만번 다짐을 하고 사람의 방법이나 수단으로 노력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택하시고 진리의 교회로 불러 주셔서 하나님이 보내시고 세워 쓰시는 하나님의 사자, 그 목자를 통하여 선포하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이 그 말씀을 선포하게 하셨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성령이 깨닫게 하심으로 믿어지는 믿음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은 권세와 능력이 있어서 그 말씀을 듣는 사람의 무디고 완악한 마음을 찔러 쪼개면서 회개를 촉구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회개한 사람마다 죄를 용서받고 그 죄 값으로 인한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는 이 복음의 역사는 인생고난의 해결을 위해 예수님이 대신 치루어 주신 고난 덕분입니다.
예수님의 외모와 고난에 대한 묘사
2절은 예수님의 외모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같고 마른 땅에서 나오는 줄기와 같다고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고운 모양도 없고 아름다운 풍채도 없다고 합니다. 이것은 700년 후에 세상에 동정 탄생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입체적 사진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3절을 보면 그분의 생애가 어떤 인생을 살게 될 것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사람들이 외면할 정도로 멸시당하는 대상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주 힘든 고통을 많이 겪으며 고통이 얼마나 인생을 힘들게 하는 지 직접 겪어 아시는 분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소외당하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유대인들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것이라고 합니다.
4절부터 보면 예수님은 진실로 우리의 지옥갈 수밖에 없었던 절망과 슬픔을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 형틀에서 모진 고통 가운데 대신 벌을 받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것도 모르고 유대인들은 그가 자기 죄 값으로 하나님께 벌을 받아서 매를 맞으며 고난을 당하고 죽임 당했다고 오해할 것이라는 것까지 700년 전에 예언으로 미리 기록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각기 그릇 행하여 자기 길로 가기 바빴었는데 하나님은 사랑이셔서 우리가 지은 죄 값으로 지옥갈 수밖에 없었지만 그 아들을 대신 보내 죽임 당하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실 대책을 세워주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기쁨으로 이 복음을 듣고 깨달아 믿음으로 감사와 찬송을 드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붕을 뚫어 중풍병자를 내린 사람들
마가복음 2:1이하에 보면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들어가셨을 때 예수님이 계시던 집에 네 사람이 지붕을 뚫고 중풍병자를 예수님 앞에 달아 내렸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 집에는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문에 이미 발 들여 놓을 틈이 없었기에 그들은 지붕을 뚫고 환자를 내려놓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보고 그 믿음이 참으로 가상하다고 하셨습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예수님 앞에까지 왔다는 그 자체를 믿음의 행위로 인정하신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병을 고쳐 주실 것이라는 믿어지는 믿음이 없었다면 여러 어려움 속에 포기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중풍병자는 예수님으로부터 병고침을 받았는데 마가복음 2:5에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하십니다.
이 중풍병자가 중풍병을 얻게 된 것은 그 죄 값으로 인함인데 예수님이 그 죄를 용서하셨으니 중풍병으로 더 괴로울 일이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서기관들이 듣기에 하나님만이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데 사람으로서 어떻게 죄를 용서한다고 하는지 참으로 참람한 말을 한다고 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그들의 중심을 아시고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의논하느냐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막2:8-10)”하십니다.
그리고는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하시니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저희가 다 놀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했습니다.
성령을 모신 후 소망과 평안 기쁨 깃들어
죄인이 교회에 들어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하신 은혜를 깨닫고 회개하게 되면 타락한 인간인 자기 본성에 대한 환멸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불행의 불씨가 되는 모든 죄를 회개함으로 하나님 앞에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십니다. 아담과 이브가 범죄하기 이전에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희생시키신 이후에 예수님을 믿고 믿음으로 살기를 애쓰는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주시고 자녀를 삼아주셨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으로부터 파생되어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특권을 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을 모셨다는 것은 지옥 형벌의 저주스러운 죄를 용서받았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는 죄책감으로 인한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기대감으로 생기와 소망 넘치는 평안과 기쁨이 우리들 생활전폭에 깃들이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