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쓰임받고 싶어 '10년 공부(독서)' 시작
독서, 만화, 에세이, 자기계발서 등 쉬운 책부터
목사들 글쓰기, 주장만 있지 뒷받침할 논증 없어
스피치 실력만으로 30분 설교? 결국 '중언부언'
"21세기는 콘텐츠가 중심인 시대다. 문학, 영화, 드라마도 콘텐츠 싸움을 치열하게 하고 있다. 이는 설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설교 콘텐츠가 설교의 핵심이다."
아트설교연구원에서 목회자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는 김도인 목사(주담교회)는 지난해 <설교는 글쓰기다>에 이어 <설교를 통해 배운다(이상 CLC)>, <설교는 인문학이다(두란노)>를 잇따라 펴냈다.
저자는 설교를 바른 성경 해석을 바탕으로 한 '청중과의 소통'으로 정의한다. 이를 위해 설교는 청중들의 귀에 들려야 하고, 본문에서 메시지를 추출해 설교 전체를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 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설교자가 왜 글을 써야 하는지, 그리고 왜 인문학을 비롯한 각종 분야의 책을 읽어야 하는지를 열정적으로 설득했다. 본지는 김도인 목사의 이야기를 두 차례에 나눠 연재한다.
-아트설교연구원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올해로 9년째 매주 두 차례 서울에서, 한 차례 대구에서 글쓰기 모임을 하면서 함께 실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책을 10년 읽는 것보다, 글을 1년 쓰는 것이 더 빠른 설교의 발전을 가져온다고 봅니다.
요즘 성장하는 교회가 많지 않지만, 연구원 회원 교회들은 작지만 성장하고 있습니다. 글을 쓰다 보면 청중과 소통할 수 있게 되고, 강단에 설 때고 자신감이 생깁니다. 대구에서 20-30명 정도 목회하시던 분이 5년간 배우면서 설교만으로 성도가 100여명으로 늘었습니다.
아트설교연구원에서는 직접 글을 쓰게 하고, 제가 첨삭을 해 주고 있습니다. 저도 글을 썼던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매일 책을 읽고, 1,200권 정도 읽다 보니 3년쯤 지났을 때 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연구원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서점에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밤에는 글을 씁니다. 연구원 회원들도 처음에는 글을 못 썼지만, 2-3년이 지나면 한 권 정도를 쓸 수 있습니다. 저도 3년 전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지금까지 책 7권을 냈고, 올해 12권을 쓰는 것이 목표입니다. 지금은 습관과 기도에 대해 쓰고 있고, 기쁨에 대해서도 써 보고 싶습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게 되신 동기가 있다면.
"목회하는데 성도들 학력이 높은 편이었습니다. 어느 날 한 교인이 제게 말했습니다. '설교 때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신 거냐'고요. '하나님 말씀이요'라고 답했더니, '요지가 뭐냐'고 되물었습니다. '진리를 선포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서론, 본론, 결론이 뭐냐'고 하더군요.
그런 말을 그때 처음 들어봤습니다. 설교는 그저 성경을 푸는 것이라고만 배웠습니다. 부목사 때까지는 그것이 문제가 안 됐지만, 담임목사가 되니 문제가 됐습니다. 결국 그 성도님은 그 후 1년이 못 돼 교회를 떠나셨습니다.
또 한 교인이 '설교가 들리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설교가 들려야 하나' 하고 생각하던 찰나, 옥한흠 목사님의 생전 제자훈련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설교는 들려야 한다'고 하셔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답을 찾진 못했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 고민하다, 처음에는 '묵상'의 문제인 것 같아 관련 세미나를 찾아다녔습니다. 하지만 제가 원하고 찾는 묵상이 아니었습니다. 두 번째 성도님도 결국 교회를 나갔습니다.
그래서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렇게 목회해서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10년간 공부하겠다고 마음먹고, 아내와 아들을 불러 '각자 먹고 살자'고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작년까지 공부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쓰임받고 싶어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목회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공부하니, 아들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김도인 목사의 저서들. 그는 책에서 "이찬수 목사는 삶과 설교가 같고, 많은 반전과 대비를 통해 설교를 맛깔스럽게 해서 6성 호텔 주방장 같은 맛을 낸다"며 "유기성 목사는 예수님을 멋지게 드러내고, 청중을 예수님과 종일 동행하도록 이끈다. 설교에서 엇박자가 많다. 전혀 안 맞는 설교 같은데, 결국엔 딱 들어맞도록 이끄는 힘이 강하다"고 했다. ⓒ이대웅 기자 |
-책을 어떻게 읽으셨는지요.
"1주일에 15권까지 읽어봤습니다. 10년간 5천권 이상은 읽은 것 같습니다. 주로 인문학 도서를 봤습니다. 오금동에서 목회하다, 잠실역에 교보문고가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석촌호수 바로 옆으로 교회를 옮겼습니다. 서점에 쪼그려 앉아 공부하면서 노트에 기록하는 일을 10년간 했습니다. 예전에는 서점에 하루 네 번까지 갔습니다.
1,200권쯤 읽고 나니, 옥한흠 목사님 설교가 좋은 것이 보였습니다. 그때쯤 책을 보면서도 좋은 글이 보였습니다. 책은 가리지 않고 읽었고, 토요일만큼은 신앙서적을 읽었습니다. 어려운 신학 서적보다, 주중에는 에세이와 소설, 경제경영과 인문철학 고전들을 주로 읽었습니다. 몸이 안 좋으면 자기계발서처럼 좀 쉬운 책들을 읽었습니다.
제게는 철칙이 있습니다. 쓰기 전에 읽는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기름칠을 하는 것'입니다. 다른 일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먹고 자고 TV 좀 보고, 책 읽고 글을 씁니다. 이제까지는 많이 읽었다면, 요즘에는 많이 씁니다.
처음에는 3일에 한 권 읽기도 버거웠지만, 요즘은 하루 한 권은 읽을 수 있습니다. 목사들 모임이 매달 있었는데, 실력이 좋아졌다며 '우리를 지도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아트설교연구원이 시작됐습니다."
-비슷한 질문인데, 무슨 책부터 읽는 것이 좋을까요.
"쉬운 책입니다. 만화책이나 자기계발서, 에세이부터 읽어야 합니다. 어려운 책은 처음에 1주일씩 걸렸는데, 재미가 없었습니다. 한 권 떼는 맛으로 읽지 않습니까(웃음).
그래서 처음에 재미없는 책은 1주일에 한 권 정도만 읽고, 나머지는 쉬운 책을 읽었습니다. 1주일에 4권으로 시작했고, 점점 1주일에 7권, 10권, 15권까지 갔습니다. 22권 이상 읽은 적도 있습니다. 지금도 자기계발서를 한 권쯤은 읽습니다. 동기가 유발되기 때문입니다.
양서만 고집할 필요도 없습니다. 저는 체력이 좋으면 어려운 책을, 안 좋으면 쉬운 책을 읽었습니다. 어려우면 읽다 포기하기 쉽습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무슨 책이든 정리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책을 쓰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목적이 있는 독서를 해야 합니다. 목회자라면 글을 쓰기 위한 독서입니다.설교와 전혀 관계 없는 책도 읽어야 합니다. 거기서도 자료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쓰기 위한 독서를 해야 합니다. 저도 처음 5-6년 동안은 읽기만 했습니다. 그러다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이상 쓰는 걸 멈출 수 없어서, 쓰게 됐습니다.
10년간 공부하고 글을 쓰려 했는데, 제작년 말 한 잡지에서 글쓰기에 대한 글을 써 달라는 청탁이 왔습니다. 그때 책을 낼 때가 왔음을 알게 됐습니다."
-설교가 글쓰기라는 말씀인데, 예수님은 글을 쓰지 않으셨습니다.
"설교 세미나에 가면 말만 가르칩니다. 그러면 목회자가 성장하지 못합니다. 옥한흠 목사님에게 누가 '왜 설교 준비할 때 다 글로 쓰시냐'고 물었더니, '그래야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예수님만 글을 안 쓰신 게 아니라, 공자와 석가모니 등 성인들은 모두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대신 제자들이 썼지요. 저는 그만한 인물이 아니니 써야 합니다(웃음).
글은 이 시대에 기본입니다. 세상은 글쓰기에 열심인데, 기독교인들은 관심이 없습니다. 문제는 가장 글을 많이 써야 하는 목사들이 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강단의 위기'를 말하지만, 결국 글의 위기입니다. 교수들 글을 읽기가 힘듭니다. 특히 신학적인 글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읽기 힘든 글은 사람들이 읽지 않습니다.
글에는 주장이 있고 이를 뒷받침할 논증이 있어야 하는데, 목사님들의 글에는 주장만 있고 논증이 없습니다. 세상에는 그런 글이 없습니다. 좋은 주제가 있는데도, 글을 못 쓰니 읽혀지지 않습니다. 저도 머리 아파서 못 읽는 글이 많습니다.
아직도 설교에 있어 성경의 바른 해석을 강조합니다. 예전에는 그것만 있어도 좋아했지만, 요즘에는 환하게 잘 들려야 합니다. 아트설교연구원도 처음에는 다 반대했고 별 반응이 없었지만, 점점 달라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세상과의 격차가 너무 크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글쓰기에 열광하는데, 교회나 신학교는 관심이 없습니다. 총신이나 장신에서 글쓰기를 안 가르칩니다. 중세는 종교의 시대, 근현대가 철학의 시대였다면, 지금은 문학의 시대입니다.
글이 중요하니 말이 중요해지는 것인데, 우리는 말만 강조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다 글로 가는데, 우리는 말에 묶여 있습니다. 콘텐츠 없는 설교가 어떻게 들리겠습니까.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시대에 콘텐츠 없는 설교를 듣겠습니까.
목회자들 글에 있어 가장 취약점이 논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논리가 필요한 구조도 아니었습니다. 요즘 많이 회자되는 '원포인트 설교'도 세상의 요구에 따라 시작됐습니다.
그런 고민에서 아트설교연구원이 출발했습니다. '세상을 제대로 읽자, 지식인과 젊은이들에게 어필하자!' 회원들 말씀을 들어보면, 다행히 젊고 배운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합니다."
-유튜브가 대세인 요즘은 '말의 시대' 아닌가요.
"유튜브는 그냥 뱉는 말이고, 설교는 영양가 있는 말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낯설게 하는 접근'이 필요합니다. 명령형·당위성 적용은 요즘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을 뛰어넘는 설교, 깊이 있는 설교가 필요합니다.
가나안 성도들에게 이유를 물으면 '지역에서 들을 설교가 없다'고 합니다. 저는 연구원에서 늘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사는 동네에서 가장 설교를 잘 하셔야 희망이 있다. 그만큼 공부하라'고요. 1주일에 책 4권 읽기를 권장하고 있는데, 많이 따라오진 못하십니다.
보통 목회자들이 한 달에 1-2권 읽으시는데, 설교를 감당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 표절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글을 쓰다 보면 자기 한계를 느낍니다. 그러면 공부하게 되고, 설교가 발전하면 반응이 있으니 행복감을 느끼고 더 열심히 준비하는 '상승 효과'가 발생합니다.
말의 시대일수록 글이 중요합니다. 특히 설교는 30여분간 이어지기에, 말로는 안 됩니다. 자연스럽게 반복하고, 중언부언하게 됩니다. 저도 예전에는 '설교가 왜 똑같아?' 하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분명 본문도, 내용도 달랐는데 말입니다. 어휘가 비슷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말을 잘 하려면, 글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백지연 앵커가 썼던 책 중에 자신을 '콘텐츠 지상주의자'라고 했던 내용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만큼 점점 글이 중요해집니다. 목회자들은 설교를 해야 하기에, 더더욱 글이 중요합니다. 지금은 이단과의 경쟁도 중요하지만, 세상 문화와, 그들의 글과 경쟁해야 합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