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저녁, 교회를 향하여 오는 길에 라디오에서 류현진 선수의 선발등판 경기 중계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1회를 마치는 상황에서 좀 더 듣고 사무실에 들어갈까 생각을 하였습니다. “다음 주일 설교할 것도 미리 연구하여야 하고, 내일 새벽기도도 준비하여야 하는데…” “이 저녁에 여기까지 와서 야구 중계방송을 들어 말어?” 망설이다가 결심을 했습니다. “에이 일어나자!” 사무실로 힘차게 들어섰습니다. 귀중한 저녁시간을 요긴하게 사용하였습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중에 날마다 수많은 결정을 합니다. 우리의 의지적인 결단을 통해서, 혹은 습관을 통해서 결정을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결정의 열매를 먹게 됩니다. 우리가 마음의 결정을 내리는데, 우리 마음은 전쟁터라고 성경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육신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우리의 마음 가운데서 세력을 확장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야 마음에 원하는 대로 하면 되지만, 우리 믿는 사람들은 성령의 소욕과 회복된 양심의 소리를 통하여 선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육체의 일, 육체의 행위는 현저하고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것은 다양한 관계를 파괴하는 특성을 가집니다. 첫째는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갈5:19)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인 부부관계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과 우리 자신의 관계를 파괴하는 “우상 숭배와 주술”과 같은 것입니다. 셋째로는 이웃과의 관계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갈 5:20)와 같은 것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넷째로는 자신과 자신의 관계를 망가뜨리는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바울은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갈5:21)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행위를 반복하는 것은 율법의 정죄 아래 있는 것이요,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라 경고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들은 색다른 열매,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것은 육체의 행위가 타락한 옛사람의 습성으로 말미암아 더럽고 누추한 모습을 보이는 것과 완전히 대조되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들어오신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에 예수님의 성품이 자리잡도록 만듭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와 양선, 충성과 온유와 절제라고 합니다(갈5:22-23). 이 모두는 성도의 마음 속에서 변함없이 지속적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맺어지는 새로운 인격의 향기로운 모습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죄를 씻음 받고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됨이요,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점차 변화되는 사이에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마음 속에서 받아 누리게 됨을 약속합니다. 육체의 일이 현저한 것처럼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도 분명합니다. 이는 인간관계를 아름답게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성령의 열매들을 맺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