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이 만나게 되면 먼저 보는 것이 상대방의 얼굴입니다. 나와 상대하고 있는 사람의 얼굴 여하에 따라서 그 사람과 오래 상대를 할 것인가를 결정하게 됩니다. 비행기승무원들은 항상 웃는 얼굴입니다. 이들은 항상 기쁠까? 을 생각해 봅니다. 아마도 이들에게도 앞으로 웃는 얼굴보다 뒷면에 있는 고민과 아픔이 있음에도 직업상 웃어야 하는 가식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앞에서나 뒤에서나 같은 정직한 얼굴입니다. 서로 간에 진정한 교제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있는 모습 그대로 정직하게 서야하기 때문 입니다.
예수님도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영적인 병자를 치유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있는 그대로의 정직한 모습의 사람을 만나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저를 보면 설교를 할 때 굳은 얼굴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이미 정답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는 어떤 말을 해야 하고, 설교 중에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말씀대로 살지 못했을 때는, 더 큰 위장의 가면을 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마치 신령한 신앙인의 모습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바리새인은 항상 바른 얼굴이었지만 가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정직했습니다. 다윗은 원수를 향해 저주에 가까운 기도를 합니다. "원수가 빨리 죽게 해주시고, 그의 자녀들은 고아나 거지가 되게 하시고, 아내는 과부가 되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다윗은 가면의 삶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정직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섰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치유가 가능했고, 나중에는 원수도 사랑하는 모습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는 가면 벗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야하기에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어떤 성도가 목사님께 "목사님! 담배 피우면 지옥가나요?" 목사님이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그러나 천국에는 좀 일찍 갈 수 있습니다." 오랜 습관이 자기 힘으로는 안 되는 겁니다, 찬양의 능력을 의지해야 하고. 더 많은 기도가 필요 할 수도 있습니다. 구원은 예수를 믿는 믿음에 달려 있지 어찌 흡연에 달려 있겠습니까? 만 중요한 것은 가면 벗는 것이 성장의 지름길입니다. 가면 벗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교회는 용납해 주고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사람은 정직한 모습과 용납의 토양을 만나게 되면 그 생명은 변화되고 성장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