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복음원당교회가 주최한 다니엘 기도성회 16일차인 지난 10일 이용규 선교사가 '고난 속의 소망'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전했다.
다니엘 기도성회는 수능 22일전부터 수능 전날까지 치유와 위로, 회복, 성령충만과 문제 해결 및 수험생을 위한 기도회로 드려져 왔다. 이날 기도회에서 이 선교사는 수능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인도네시아 선교 가운데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하고 어떠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목자 되신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 선교사는 시편 88편과 23편 본문을 들면서 "성경의 두가지 본문에 하나님에 대한 고백은 양 극단에 놓여있다. 우리 삶의 여정이 그러하다"면서 "하나님에 대한 필요를 느끼는 것도 귀하다. 그렇다면 하나님 만으로 충분하냐고 질문하고 싶다. 하나님이 필요한 것과 하나님만으로 충분한 신앙 가운데 어떤 벽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선교사는 모 교회에서 알고 지내던 여자 후배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을 갖고 있던 자매의 삶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아버지가 가정을 버려두고 집을 나갔고 어머니 혼자 세 아이를 키우며 어렵게 사셨다. 그러다 과로 때문에 뇌출혈로 쓰러지셨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장애가 왔다. 자매는 대학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벌고 동생들의 생계까지 책임졌다. 그리고 결혼을 했지만 여전히 친정에 대한 마음의 부담이 있었다"면서 "자매는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기도로 돌파했다. 누군가에게 문제가 생기면 기도 중에 알게 하시고 중보기도를 하게 하시는 특별한 은사를 주셨다. 그런데 지난 봄 자매에게 우울증이 왔는데 그 이유는 여동생의 자살이었다"고 말했다.
그 충격에 그 자매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여동생을 돌보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몰려왔다. 이 선교사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있는데 그것을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면서 마음에 병이 온 것 같다. 하나님에 대한 서운한 순간이 있었을지 모른다. '이 상황에서 하나님만으로 충분할 수 있는가'라고 질문했고 그 자매는 하나님만으로 충분하다는 고백을 못하겠다고 답했다. 이 부분을 놓고 하나님 앞에 진지하게 기도해보라는 내용의 메일을 전했다"고 말했다.
이 선교사는 "누군가 나와 결혼하는데 내가 결혼하고 나서 해줄 것에 대한 기대가 나라고 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랑보다 더 크다면 어떠하겠는가. 크리스천과 하나님의 관계는 결혼의 관계와 비슷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교제와 관계와 깊은 사랑의 연합으로 초대하신다. 그런데 우리는 때로 내 신랑감이 갖고 있는 재산과 능력과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조건 그것만을 바라볼 때가 있는 것 같다"면서 "그 자매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나누고 하나님에 대한 서운함과 두려움이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라고 조언했다"고 말했다.
이 선교사는 자매의 이야기와 더불어 선교 중에 겪었던 자신의 간증을 전했다. 그는 "인도네시아로 가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그 곳에 갔다. 순종하는 마음으로 소망 중에 몽골을 떠나 새로운 사역지로 갔지만 사방이 막혀있는 것과 같았다. 세계 최대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는 외국인에 대한 규제와 압박이 굉장히 강했으며 공무원들은 뇌물을 주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았다. 그 곳에 아무 도움 없이 뚝 떨어져서 대학을 세우라는 소망과 비전을 주셨다. 선교를 위해 무슬림권 나라에 대학을 세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보였다"면서 "몽골에서 죽을 뻔한 경험을 하면서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는데 하나님만 믿고 인도네시아로 떠났는데 아무 일도 이루어지지 않고 비자에 문제가 생겨 한국으로 되돌아왔을 때 무척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인도네시아에서 학교를 잘 다니고 있던 아이들도 갑작스런 진로 변경에 혼란스러워했고 연로하신 부모님도 걱정을 많이 하셨다. 이 선교사는 인천의 한 개척교회를 섬기러 가 그 곳 예배 처소에서 기도하면서 몽골에서 처음 사역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는 "'초심을 잃지 않았니. 첫 마음을 잃지 않았니'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느껴졌다. 제가 몽골 선교사로 처음 갔을 때 그저 매일 하나님만 바라보며 나아가기 원한다는 마음으로 살았다. 그런데 제 2사역지로 가면서 이미 경험한 것들이 있다 보니 뭔가를 이루어내야 한다는 성취감에 대한 압박감에 묶여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이 부분을 하나님께 내어드려야겠다 생각했지만 저도 할 말은 있었다. 하나님 저에게 수많은 영혼들의 교육과 미래를 맡아달라고 사명을 주셨는데 저는 정작 제 아이 교육문제조차 책임져줄 수 없는 사람이 아닙니까 상황은 열어주시지 않고 어떻게 하시라는 겁니까"라고 물었다.
그 때 이 선교사에게 하나님께서 "너희 자녀의 미래를 네가 책임질 수 있니. 네가 걱정함으로 자녀의 미래를 열어갈 수 있니"라고 물으시는 것 같았다. 이 선교사는 "여기 계신 많은 어머니들 자녀의 미래 문제로 인해서 힘드시죠? 여러분의 믿음은 자녀교육문제를 온전히 하나님께 맡겼는지에 따라 수준이 결정된다. 자녀교육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면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대답을 구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선교사는 자녀 교육에 대해 하나님께 맡기고 그 때서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진짜 사명을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선교사는 많은 목회자와 선교사들이 자녀교육으로 인해 사역에 발목이 잡히고 이로 인해 마음에 부담이 크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면서 인도네시아에서 교회가 학교를 운영할 수 있도록 작은 학교 모델을 만들어줘야겠다는 소망을 발견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 결정을 하고 나서 보니 인도네시아 정부가 특별법안을 만들어 기독교 학교도 정부가 인정하는 학교로 허가를 받게 되는 하나님의 놀라운 예비하심을 경험하게 됐다. 이 선교사는 "저를 힘들게 했던 어려움이 그것을 대하는 저의 태도가 바뀌면 더 이상 어려운 문제로 남지 않고 좋은 동반자가 된다는 믿음의 열쇠를 얻게 됐다"고 고백했다.
이 선교사는 지난해 학교를 세우며 여러가지 고비를 겪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큰 고비는 건축이었다. 건축에 필요한 예산이 50억원 정도였다. 이 선교사는 적극적으로 펀드레이징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나 20퍼센트 정도 남은 재정으로 학교 건축을 믿음으로 시작했다. 매일 밤마다 책상 위에 보고되는 재정은 어마어마했고 이것은 큰 짐으로 다가왔다. 이 선교사는 "기왕 지는 짐 웃으면서 기쁘게 지고 가지 않겠니 라고 하나님께서 의외의 도전을 주셨다. 거기서 영향력이 나온다. 그것이 믿음이라고 말씀하셨다. 재정이 있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어떠하든 하나님을 바라보니까 웃고 갈 수 있다는 말씀을 듣고 감사하게 순종의 고백을 했더니 그렇게 살아지더라"고 고백했다.
또한 이 선교사는 재정이 없는 상황에서 아프리카로 자비량 선교를 가라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했더니 부족한 재정을 신기하게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했다고 간증하기도 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점점 재정의 규모가 커지지만 그것과 씨름하게 하시고 훈련하게 하셨다. 우리의 삶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에 갔을 때 예수님과 같은 통치권 부여받으며 살아야 하므로 그 훈련을 시키신다. 백만불 천만불의 문제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시기 원하신다"면서 "저는 앞으로 계속 이러한 필요와 싸울 것 같다. 건물 10개가 필요한데 지금 1개가 완성됐다. 하늘나라에 갈 때 무엇을 들고 갈 것인가. 잘 지어진 건물과 제가 쓴 책이 아니다.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다니는 가운데 만난 나의 하나님, 그 분의 특별한 역사하심, 그걸 통해 알게 된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성품에 대한 깨달음 그 과정에서 변화된 나의 모습 그것을 들고 하늘나라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선교사는 앞에서 언급했던 한 자매의 이야기를 하며 설교를 마무리했다. 그는 "지난 여름 한국일정 중 자매를 만나 '지금 이 아픔을 다 겪고 가면 하나님께서 갖고 계신 계획 가운데 동일한 아픔을 경험한 사람들을 위로할 때 권위를 갖게 된다'고 조언했다. 그런데 그 자매가 교회 안에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과 또 자살 가족으로 인해 아파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일을 이미 시작했다고 말해 놀라웠다"면서 "내게 부족함이 없기 때문에 여호와가 좋은 목자가 아니다. 오해하면 안된다. 그 분이 나의 목자이시기 때문에 내게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더라도 여전히 그 분은 나의 좋은 목자이시다. 그 분으로 인해 충분하다는 믿음의 고백을 하시길 축복한다"고 전하며 설교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