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한경면 주 올레길 13코스를 걷다 보면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교회'라는 별명을 가진 '순례자의교회'를 볼 수 있다. 교회에 들어가기 위해선 '좁은문'이란 이름의 문을 고개 숙여 들어가야 한다. 교회는 대여섯 사람이 겨우 들어갈 만한 2.4평.
이 교회를 건축하게 된 김태헌 목사는 저서 <세상에 없던 교회(와웸퍼블)>에서 '순례자의교회'를 통해 받은 하나님의 은혜와 임재를 풀어간다. 최근 서면 인터뷰로 만난 그의 '교회다운 교회', '하나님 나라'를 향한 열정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었다.
"당신은 내 안에 계셨으나 나는 밖에 있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밖에서 찾으려 했으며, 당신이 만드신 사랑스런 피조물들로 나의 마음을 채우려고 했습니다."- 어거스틴의 고백록
"세계 8대 불가사의가 있다면 제가 목사가 됐다는 거예요. 아직도 아이러니지만, 한편으론 하나님의 절대 은혜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어요. 어릴 때 신앙생활을 하거나 기독교적 환경 속에 산 것도 아닌데, 하나님을 믿게 됐고 목사가 됐잖아요. 이게 기적이고 은혜가 아니면 뭐겠어요? 하나님께선 제게 불가항력적으로 찾아오셨어요. 저를 만나 주신 그 순간 제 안에 하나님께서 계셨죠. 이유요? 없죠. 그냥, 계신 겁니다. 그 고백은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김태헌 목사는 자신 안에 있는 하나님을 만난 것을 이렇게 고백했다. '순례자의교회'의 건축 취지의 연장선에서 현재 산방산이보이는교회를 목회하고 있는 그는 '순례자의교회' 건축 동기에 대해 "교회다움의 표현"이었다고 밝혔다.
"다들 자신의 가치 기준에서 대답할 수밖에 없으니, 그걸 교회다움의 정답이라고 할 순 없겠죠. 저 또한 그래요. 그저 제 안에 그려진 예수님의 삶과 가치를 실현하며 살아가는 신앙이 교회다움을 이루는 것, 그것을 순례자의 교회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러다 보니 건물의 규모와 모임의 숫자 등등 외적인 요소가 제겐 별 의미가 없게 됐죠. 하나님을 믿고 예배하고, 또 삶으로 사는 사람들, 이 땅에 이루어져야 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꿈을 꾸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그런 순수한 신앙인들을 만나고 싶었어요.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이해관계 없이 순수함 그대로 만나 자신들의 이야기를 허물없이 나누고 위로받고 위로하는 그런 곳이 있었으면 했어요."
사실 김태헌 목사는 처음부터 제주도에 '순례자의교회'를 의도하고 세우려 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오히려 제주도를 찾고 싶지 않았을 정도라고. 그는 그때의 사연을 털어놨다.
"의도한 것은 아닙니다. 목회 첫 사역지가 제주도였는데, 7년을 목회하다 육지로 갔지요. 제주도라는 곳이 목회하기에 녹록하지가 않아서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육지에서 목회사역을 마칠 즈음 하나님께 기도하다 큰 전환점이 찾아왔습니다."
늦깎이 목회자지만 나름 목회자로서 자부심이 있었던 그는 "수백 명 되는 교회를 맡겨주시면 잘해 보겠다"고 기도했다고 한다. 그는 "하나님은 이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셨지만 대신 나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하셨다"며 그때를 회상했다.
"하나님께서 엄청난 고급 백화점에 절 데려가셨어요. 그리고 고급스럽게 포장된 상품을 보여주시면서 '이게 네 모습'이라고 하셨어요. 순간, 나쁜 짓 하다 걸린 사람처럼 부끄러웠습니다. 깜깜한 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지만, 너무 두렵고 창피하고 죄스러워 어찔할 바를 몰랐고, 옆에 자는 아내를 깨우며 이렇게 얘기했어요.
'여보 나 큰일 났어. 나는 실패한 것 같아. 하나님께서 그렇게 평가하셨어!'
지금까지의 제 사역 전부가 의미 없는 일이 되는 순간이었어요. 망연자실했어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실패하면 모든 것이 끝난 거잖아요. 그 순간 제주도로 가길 결심했어요."
사실은 앞서 제주도에서 '무교회지역 교회개척 선교사'로 김태한 목사를 계속 부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날까지 육지 개척을 생각하고, 아내도 육지에 혼자 남을지라도 제주도로는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는 마음이었다고. 결국, 김태헌 목사는 다시 제주도로 가기로 결심했고, 거처를 마련하던 중, 집주인이 쓰던 집을 내 주면서 아내도 꼼짝없이 제주도로 오게 됐다.
"제주도로 다시 올 때 '무교회지역 교회개척 선교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들어왔지만, 단지 제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는 것이 목표였고, '내가 진짜 신앙인인지 아니면 신앙을 생존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지' 그것을 분명히 알고 싶었어요."
그리고 제주도로 이사하는 날, 육지에서 목회하던 시절 만난 정필란 권사로부터 잠시 만나고 가라는 연락이 왔다. 평소 교회다움과 작은 교회, 외형이 아니라 내용의 중요함 등 교회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함께 이야기했던 분이었다. 단순한 인사인 줄로 생각했지만, 김태헌 목사를 만난 정 권사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했다.
"평소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며 기도했어요. 목사님이 계획한 교회다운 교회를 위해 필요한 손길을 보내달라고요. 그런데, 오늘 새벽기도 중에 하나님이 저보고 그 사람이 되라는 거예요. 그리고는 제가 젊은 시절 서원했던 성전봉헌을 기억나게 하셨어요."
당시 김태헌 목사는 '계획했던 교회다운 교회'를 지으려면 얼마의 돈이 필요한지 묻는 권사의 물음에 약 5~7백만 원 정도만 있으면 일주일 만에 건축 가능하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정 권사는 그 비용을 헌금하겠다고 약속했고, 김 목사는 너무 기뻐 길에 선채 할 수 있는 모든 축복의 내용으로 기도를 하고 제주도로 내려왔다고 한다.
오래 전 그래도 7년이나 사역했던 곳이라, 반겨줄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는데, 아내와 하늘만 쳐다보며 섬 속의 섬에 갇혀 사는 것 같았다고 한다. 대신 하나님과의 교제는 깊어졌다. 그리고, 그 사이 정 권사는 생활이 넉넉하지 않음에도 약 4개월에 걸쳐 8백만 원이라는 거금을 건축비로 헌금했다.
부족한 중에게 흔쾌히 내놓은 헌금으로 김태헌 목사는 예배당 건축을 위해 백방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건축은커녕 부지도 구하지 못했다. 김태헌 목사는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몰랐던 저로서는 권사님의 헌금으로는 예배당 건축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당시엔 헌금을 돌려드리고 건축을 포기하려는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때마침 정 권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목사님, 몸이 피곤해서 병원을 찾았는데 제가 암 말기라네요. 더 이상 손을 쓸 수조차 없는 상황이라 삶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제가 그 예배당 보고 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순간, 김태헌 목사는 '건축비를 맡은 사람'이 아니라 '권사님의 서원과 꿈을 맡은 사람'이 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놀랐지만, 마음을 추스르고 두 가지의 기도를 하자고 했다. 더불어 병원에서 비록 그런 진단을 내렸다 하더라도 치료를 위해 모든 것을 다해보라고 권면했다.
"권사님, 사람의 생명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으시지요? '하나님께서 이 상황에서 권사님을 데려가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예배당 건축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또 '사실, 제가 현실적 이유로 건축을 포기하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제 생각을 돌려놓으시려고 주시는 시련이라면 건축이 완공되고 권사님 병이 낫도록' 기도합시다."
그날부터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정 권사의 회복과 예배당 건축을 위해 간절한 기도가 시작됐다. 그러던 중에 현재 고인이 된 좌환인 장로로부터 부지가 기증됐고, 여러 사람의 수고와 헌신으로 약 7개월에 걸쳐 2.4평짜리 예배당이 건축됐다.
"예배당 규모에 비해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곳에, 천신만고 끝에, 예배당 건축을 끝낼 수 있게 됐어요. 정 권사님은 수술과 항암 치료를 받으며 병마와 사투를 벌였죠. 그 결과 '순례자의교회' 완공을 거의 열흘 정도 앞 둔 시점에 완치되는 기적과 은혜를 맛보게 됐어요. 결과적으로 말씀드리는 건데, 어쩌면 '순례자의교회'는 권사님의 병이 아니었으면 지금 세상에 없었을지 모릅니다. '순례자의교회'는 하나님의 계획하심 가운데 고난을 유익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면서 건축과정에 '하나님의 뜻', '인내'와 '겸손'을 철저히 배우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이것이 그의 목회철학이 된 것 같다고 한다. 그런 김태헌 목사는 '순례자의교회'를 삼다삼무(三多三無)라는 별칭으로 소개한다,
"제가 명명한 것이지만요, 목사, 정기적인 예배나 프로그램, 등록된 성도가 없지만,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임재가 항존하는 곳이에요. 그러니 인간적인 의식은 별 의미가 없는 거예요. '목회'의 개념에서 보면 엄청난 어려움이 있지요. 성도가 없으니 재정적 어려움이 있고,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한 인적 재원도 부족한 게 어쩌면 당연하죠. 그러나 기존 교회의 운영형태와 다르다 보니 그런 요소들이 불필요해요.
그래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어려움이라기보다 진짜 목회가 이런 게 아닐까 생각해요. 헤아릴 수도 없이 다양하고 많은 사람을 종교와 관계없이 만나고, 또 그 안에서 치유와 회복의 기적이 일어나고, 삶에 대한 희망이 생기고 더 나아가 삶의 의미와 이 땅에 이루어져야 할 하나님 나라 이야기를 아무런 부담 없이 나눌 수 있거든요. 이런 현상은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라 생각해요.
비기독교인이 혼자 와서 펑펑 울고 회심하고 갈 수 있는 교회가 세상에 또 어디 있겠어요? 이것이 현재 제주도 순례자의교회에서 비일비재 일어나는 일이라 경험적으로 확실히 예단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그 기적을 기대하고 있어요. 전국 15곳에 순례자의교회를 건축해서 힘들고 지친 영혼들이 맘껏 와서 쉬어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교회다운 교회'를 만드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는 그는 그 사명에 충성을 다하는 것 외에 다른 계획은 없다고 한다.
"비록 '교회다운 교회'를 이 땅에서 완성할 수 없을 수도 있지만, 흉내라도 내보고 싶은 게 제 목회적 욕심이에요. 어쩌면 저의 노력이 교회다움의 언저리에도 못 미칠지 모르나 제 목숨이 있는 한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그 '교회다움'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그리고 실제로 두 번째 '순례자의교회'를 짓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교회를 향한 소망과 기도 제목을 전했다.
"앞으로 지어질 '순례자의교회'가 힘들고 어렵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무런 부담 없이 맘껏 와서 쉬어갈 수 있는 교회가 되길, 더욱더 바라기는 구원과 더불어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교회가 되길 소망해요. 그 일환으로 제주도에 두 번째 순례자의교회를 건축 중에 있는 데, 생각보다 예산이 많이 들어가 재정적으로 지원해 줄 수 있는 후원자가 절실히 필요해요. 전국 15곳에 순례자의 교회가 세워져 지치고 상한 영혼들을 위로하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또 건축 과정에 소요될 재정이 부족함 없이 채워질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 지금의 기도 제목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순례자의교회'에 방문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보탰다.
"이 교회는 그냥 눈으로 보고만 가는 관광지가 아니에요. 관광차 방문해 기념촬영만 하고 가시기에는 그 안에 담겨 있는 이야기의 의미가 너무 커요. 오셔서 조용히 앉아 자신의 내면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고, 기회가 된다면 저를 통해 순례자의 교회 건축과정에서 보여주셨던 기적 같은 하나님의 이야기도 듣고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돼서 돌아가셨으면 좋겠어요. 그 안에 회복과 치유, 평안의 이야기가 수도 없이 많이 담겨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