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 우먼: 슈퍼히어로판 실낙원(Paradise Lost)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감독의 <다크 나이트(Dark Knight)> 트릴로지 이후 이렇다 할 흥행작을 내놓지 못하던 DC 엔터테인먼트(DC Entertainment)에서 오랜만에 이슈를 불러일으킬 만한 흥행작을 선보였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원더 우먼(Wonder Woman)은 최초로 여성 슈퍼히어로가 단독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이다.
평단의 반응을 살펴보면, 다수의 평론가들이 페미니즘(feminism) 관점에서 이 작품을 해석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사실 대중문화적 지평에서 원더 우먼과 페미니즘은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원더 우먼의 영화화 이전부터 이미 다수의 문화현상 연구자들이 코믹스(만화 출판본) 원작과 TV 시리즈에 대해 페미니즘 관점에서 심화된 연구들을 수행한 바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원더 우먼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기독교적 해석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이로 인해 이 영화의 서사적 중추를 이루는 기독교 구원사에 대한 알레고리(allegory)는 페미니즘의 휘광에 가려지는 듯하다.
<원더 우먼>의 서사 전체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성서가 가르치는 구원사적 메시지가 플롯의 기승전결을 견인해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사람의 창조, 마귀의 유혹과 사람의 타락, 마귀에 대한 심판, 구약 교회의 설립, 그리스도의 성육신 등이 확인된다. 다만 이런 기독교적 가르침들이 상업적인 매력의 확보를 위해 그리스 신화의 탈을 쓰고 있을 뿐이다.
◈다이애나(Diana): 흙으로 빚어 생기를 불어넣은 사람
코믹스 원작의 설정에 따르면 다이애나(Diana, 원더 우먼)의 출생 내력은 다음과 같다. 자녀를 갖기 원했던 아마존 종족(Amazons)의 여왕 히폴리타(Hippolyta)는 흙으로 어린 다이애나의 모습을 빚어낸다.
여기에 아름다움과 처녀를 비호하는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가 천신 제우스(Zeus)의 명령대로 생기를 불어넣음으로써 다이애나는 사람의 형상을 가진 특별한 반신적 존재로 태어난다.
이 설정은 영화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단지 영화에서는 스토리를 간추리기 위해 다이애나의 창조주 아프로디테를 직접 제우스로 대체하고 있을 뿐이다. 신이 흙으로 이루어진 사람의 형상에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설정에는 변함이 없다.
▲아마존 여왕 히폴리타와 아프로디테에 의해 창조된 다이애나. 진흙으로 빚어진 뒤에 생기를 부여받은 것으로 소개된다. |
'원더 우먼'이라는 캐릭터가 처음 탄생했던 1941년 당시에는 미국 대중문화가 기독교 유산을 배제할 수 없던 시대였다. 원더 우먼 스토리 작가인 심리학자 마스턴 박사(Dr. William Moulton Marston, 1893-1947)도 이 점을 자각하고 있었다. 그는 기독교의 창조론, 그 가운데서도 아담의 창조에 대한 기사를 깊게 유념하는 가운데 원더 우먼의 출생 내력을 설정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원더 우먼에게 슈퍼히어로로서의 특수성, 다시 말해 세계의 구원자로서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아마존은 헤로도토스(Herodotus, 484-425 BCE)의 <역사(ἱστορίαι, Historiai)>에 처음 등장하는 종족으로, 오직 여성들로만 구성된 용맹한 전사 부족으로 소개된다. 이들은 결혼을 하지 않는다.
마스턴 박사가 원더 우먼의 어머니를 비혼(非婚) 부족인 아마존의 여왕 히폴리타로 정한 이유는 그녀가 처녀의 몸으로 그리스도를 잉태한 마리아를 연상시키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유명 페미니스트 아티스트인 트리나 로빈스(Trina Robbins)는 저서 『The Great Women Superheroes』에서 원더 우먼의 탄생에 결부된 처녀성과 신성의 연합을 지적한다. 다이애나의 어머니 히폴리타는 처녀성을, 여신 아프로디테는 신성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원더 우먼에게는 성육신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미지가 덧입혀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원더 우먼은 첫 사람 아담(피조물)과 둘째 사람 그리스도(구원자)의 정체성을 모두 갖고 태어난 캐릭터로 표현된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본다면 이런 캐릭터 설정에는 장점과 단점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장점은 성서적이고 창조론적인 인간이해의 구도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인류의 기원에 대한 진화론적 가설은 이 영화 속에서 설 자리를 찾지 못한다. 단점은 인류의 구원자를 하나의 특수한 피조물로 여기는 아리우스주의 기독론(Arian christology)과 유사한 사상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타락한 인류의 구원과 회복이라는 특수한 임무를 위해 창조된 반신적 존재인 다이애나. |
아리우스주의란 4세기 초반 알렉산드리아의 성직자 아리우스(Arius, 256-336)가 주장한 기독론으로서, 성자 로고스(λόγος)가 성 삼위의 일위가 아니라, 단지 세계의 구원을 위해 다른 피조물들과 마찬가지로 무로부터(ex nihilo) 창조된 특별한 피조물이라는 주장을 골자로 삼고 있다.
아리우스의 사상은 삼위일체를 부정한다는 이유로 제1차 니케아 공의회(the Council of Nicaea, 325)에서 이단 판정을 받았다. 동정녀를 통해 반신적인 존재로 창조되어 세계의 구원을 위해 분투하는 원더 우먼의 이야기는 아리우스주의 기독론의 현대적 변종의 하나로 보아도 무방하다.
신학적 논란의 소지는 있지만, 어찌되었든 원더 우먼이라는 캐릭터의 탄생이 아담의 탄생과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하여 증언한 성서 기사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로부터 알 수 있는 사실은, 처음부터 이 영화가 기독교적 구원론에 대한 신화적 알레고리의 형태로 기획되었다는 점이다.
◈테미스키라(Themyscira): 에덴 동산과 실낙원
영화 초반부의 배경은 다이애나의 고향 테미스키라(Themyscira)다. 이곳은 천혜의 열대 해안을 곁하고 있는 지상 낙원으로서, 반신적 여성 전사들인 아마존 종족이 거주하는 곳이다. 이들은 선한 신들이 특수한 목적을 위해 창조한 존재들로 사람보다 우수한 신체적 능력과 성품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소개된다.
작품 초반 다이애나의 어머니 히폴리타는 다이애나에게 사람과 아마존의 창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준다. 아마존 종족이 창조된 이유는 사람의 타락 때문이다. 천신 제우스는 태초에 자신의 형상(image)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였다. 제우스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은 원래 정의롭고 선하며, 강인하고 열정적인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제우스의 아들 중 하나인 전신(戰神) 아레스(Ares)는 사람을 향한 제우스의 총애를 시기하여 사람을 유혹하고 타락시킨다. 시기와 질투, 악의가 가득해진 세상은 전란이 끊이지 않게 된다. 사태를 보다 못한 신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다시 정의와 선으로 돌려놓기 위해 아마존 종족을 창조한다. 아마존 종족의 임무는 아레스의 흉계를 저지하고 자애(慈愛)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감화시키는 데 있다.
▲천혜의 자연 환경을 곁하고 있는 아마존 종족의 고향 테미스키라. 기독교의 낙원(paradise)에 대한 비유로 제시된다. |
아마존 종족이 아레스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중 신들은 아레스와 전쟁을 벌이고, 그 과정에서 제우스를 제외한 모든 신들은 소멸된다. 신들의 희생으로 궁지에 몰린 아레스는 제우스의 마지막 일격에 거의 모든 힘을 잃고 땅으로 추락한다. 전쟁은 끝났으나 아레스는 아직 소멸되지 않았고, 점차 힘을 되찾아 인류를 멸망으로 이끌어 가려 한다.
아마존 종족은 아레스를 상대하느라 힘을 상실한 제우스 신을 대신해 테미스키라를 지키며 아레스의 흉계를 저지하는 역할을 맡는다. 결국 다이애나는 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제1차 세계대전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아레스를 대면한다.
이 이야기는 성서에 기록된 구원사의 구도를 신화적 독법으로 재현한 것이다. 영화에는 타락 이전(prelapsarian)의 사람과 에덴 동산(아레스의 준동 이전 지상 낙원), 마귀의 유혹과 사람의 타락(아레스의 흉계),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이루어진 구약 교회의 성립(아마존 종족의 창조), 그리스도의 초림(다이애나의 탄생), 다이애나와 아레스의 전투(그리스도의 공생애) 등 구원사의 주요 장면들이 명료하게 반영되어 있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의 유명 문화평론가 브라이언 디트리히(Bryan D. Dietrich)는 <원더 우먼>이 존 밀턴(John Milton, 1608-1674)의 <실낙원>(Paradise Lost)을 계승하는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디트리히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신화란 우리가 보지 못한 세계의 창조와 인류의 기원을 찾아가는 상상력의 위대한 업적으로서 궁극적으로는 사람에게 삶의 지침을 보여주는 길잡이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실낙원>과 <원더 우먼>은 모두 자기 삶의 근원적인 의미와 목적을 찾으려는 갈망으로부터 유래된 작품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소명을 지키기 위해 낙원과는 동떨어진 전쟁터 한가운데로 뛰어든 다이애나. |
비교종교학자 미르체아 엘리아데(Mircea Eliade)는 신화가 타로 카드(Tarot, 점을 보는 카드)와 유사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신화는 타로 카드처럼 삶의 방향을 덧대어 가늠해볼 수 있는 모범적인 원형(template)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원더 우먼>은 마블 엔터테인먼트(Marvel Entertainment)나 DC 엔터테인먼트가 창조해 낸 수많은 콘텐츠들 중에서 성서의 구원사를 가장 분명하게 반영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 가미된 신화적 소재들은 구원사적 메시지에 교훈적인 힘을 부여하는 데 기여한다.
그런 까닭에 이 영화의 대사는 사람이 죄악을 극복할 수 있는 존재인가를 묻는 데 집중되어 있다. 액션 장면조차 활극적인 화려함보다는 죽음과 죄악의 어두움을 드러내 보이는 데 주력한다.
다른 어떤 슈퍼히어로 영화도 이처럼 명확하고 무게감 있게 이 문제를 화두로 내세운 적은 없다.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도 죄악의 극복 가능성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여지를 제공하지만, 놀란 감독의 작품에는 신화적 정서가 거의 반영되지 않고, 이로 인해 영화가 제시하는 화두의 인간학적 근원성이 약화되는 모습을 보인다.
서사의 치밀함 자체는 <다크 나이트>가 월등하게 앞서고 있으나, 사람의 본성에 대한 근원적 차원의 사고를 촉구하는 면에서는 <원더 우먼>이 더 앞선다.
◈스티브 트레버(Steve Trevor): 이웃과 형제에 대한 사랑의 명령
영화 후반부에서 다이애나는 단지 아레스를 막아서는 것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죄악으로부터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 깨달음은 인류 전체에 대한 불신과 회의를 유발한다. 거의 절망에 가까운 다이애나의 회의감은 트레버의 희생적인 사랑을 통해 비로소 해소된다.
다이애나를 아마존 종족의 고향 테미스키라에서 데리고 나온 미국 정보요원 트레버는 다이애나가 사람들 속에 정착해서 아레스를 처단하는 일을 돕는다. 트레버는 다이애나의 충실한 조력자일 뿐만 아니라 그녀의 연인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그는 마지막 전투에서 다이애나가 인류 전체에 대한 극심한 회의에 빠져있을 때 자기희생적인 사랑을 통해(대량의 화학무기 살포 전 공중에서 자폭) 그녀에게 사람의 본성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 준다.
▲다이애나에게 사람의 본성이 어떠한 것인지를 가르쳐준 트레버. 트레버의 희생 덕에 다이애나는 사람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참된 소명에 대해 깨닫게 된다. |
다이애나는 사람이 타인을 향한 사랑과 책임감으로만 죄악된 본성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트레버의 죽음을 통해 확인한다. 이 깨달음을 얻는 즉시 그녀는 진정한 '원더' 우먼으로 거듭난다. 아레스와의 싸움에서 형편없이 밀리던 다이애나는 일종의 각성을 통해 자신이 특별한 방식으로 탄생한 이유, 그리고 자신의 속에 내재된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1941년 마스턴 박사가 <원더 우먼>의 스토리 작가를 담당하게 된 데는 특별한 계기가 있다. 그는 당시 슈퍼맨(1938년 6월 등장), 배트맨(1939년 5월 등장), 캡틴 아메리카(1941년 3월 등장)로 대표되는 슈퍼히어로 코믹스의 내용이 과도하게 폭력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에 우려를 표시했다.
악인의 처단을 위해 파괴를 남발하는 슈퍼히어로들과 달리, 이웃과 인류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고 평화를 지키는 슈퍼히어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는, 형제를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모티프 삼아 원더 우먼이라는 캐릭터를 창조해 냈다.
마스턴 박사는 자신의 전공인 심리학의 관점으로 원더 우먼을 바라보았다. 그는 "여성이 남성보다 몇 배나 더 감성적인 리더십(emotional leadership)을 수행할 소질을 갖고 있다"고 믿었다. 여기서 감성적이라는 말은 타인에 대한 애정(affection)과 긍휼(compassion)의 능력을 의미한다.
마스턴 박사는 슈퍼맨이나 배트맨으로 대표되는 남성 슈퍼히어로들이 보다 강한 힘을 향한 열망과 타인에 대한 우월성의 욕구를 충족시킨다고 보았다. 그는 이런 패권주의적 성향을 거부하고 타인에 대한 사랑과 돌봄의 덕목을 일깨워주는 캐릭터로 원더 우먼을 창작했다.
▲원더 우먼의 힘은 과시와 파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돌봄과 선도(善導)를 위한 것이다. <원더 우먼>의 스토리 작가 마스턴 박사는 이것이 현대에 필요한 리더십의 모범이라고 여겼다. |
마스턴 박사의 이런 의도는 팬들에게도 전해져 내려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원더 우먼의 날(Wonder Woman Day)이다. 미국 오레건 주 포틀랜드 소재 코믹스 서점인 엑스칼리버 코믹스(Excalibur Comics)는 2006년부터 '원더 우먼의 날'을 제정하고 자선행사를 펼치기 시작했다. 매년 이 행사에서 모금된 돈은 모두 가정폭력 희생자를 돕는 비영리기구에 기부된다.
이 행사를 처음 기획한 이는 앤디 맹겔스(Andy Mangels)로서, 작가이자 <원더 우먼>의 열광적인 팬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원더 우먼이라는 캐릭터가 상징하는 '사랑으로 섬김(loving submission)'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행동에 나섰다고 밝힌 바 있다.
영화 속에 소개된 원더 우먼의 임무 중 아레스와의 전투는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녀의 최종적인 임무는 죄악에 물든 사람의 마음을 감화시켜 선으로 되돌이키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DC 엔터테인먼트의 다른 두 대표적 히어로인 슈퍼맨과 배트맨에게 부여된 임무와는 질적인 차이를 보인다. 슈퍼맨의 핵심 임무는 환난으로부터의 구원이다. 배트맨의 임무는 범죄의 억제이다.
둘 모두 부분적으로는 기독교적 구원자의 면모를 갖추고 있지만, 원더 우먼만큼 사람의 본성에 깊게 관여하는 임무를 받은 것은 아니다.
다이애나는 트레버의 희생을 통해 그녀의 온전한 임무를 깨닫는다. 그것은 단지 환난에서 사람들을 구해내는 것이나 범죄를 억제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사랑으로 감화시키는 데까지 이르는 것이다. 이것은 이 땅에 남아 있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영혼을 사랑하고 돌보는 소명을 수행해야 할 교회의 임무에 대한 알레고리다.
▲원더 우먼은 DC 엔터테인먼트 슈퍼히어로들 중에서 기독교적인 교훈을 가장 분명하게 반영하는 캐릭터다. |
◈원더 우먼: 슈퍼히어로판 실낙원
존 밀턴의 <실낙원>은 단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는 이야기만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위대한 작품 안에는 하늘에 있을 적 마귀의 타락, 천지창조, 그리고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 부활 등과 같은 구원사 전반의 사건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밀턴은 이 작품을 통해서 성서에 기록된 천사의 타락, 천국과 지옥의 정경, 사람의 타락 등을 청교도적 관점으로 과감하게 재해석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실낙원>은 역사적으로 다양한 신학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이 작품이 기독교 문학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존 번연(John Bunyan, 1628-1688)의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 못지 않음을 부정하는 이는 없다.
이를 보면 기독교 문학에서도 일종의 '문학적 허용'이 통용되는 듯하다. 그리고 포스트모던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오늘날에는 이런 경향이 문화 콘텐츠 전반에 활발하게 적용되고 있다.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원더 우먼>은 그간 제작된 어떤 슈퍼히어로 영화보다도 명료하게 기독교적인 세계관과 인간이해를 반영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 본다면 페미니즘이 이 작품의 중심주제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 페미니즘도 기본적으로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 사랑과 박애의 여성성(feminity)에 대한 사유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작품 전체의 설정 자체가 기독교적 알레고리인 이상, 여기에 제시되는 페미니즘적 사고도 성서적 가르침을 완전하게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칼럼 제1편을 통해 창조, 낙원, 타락, 그리고 회복이라는 기독교적 주제들을 중심으로 <원더 우먼>을 재해석해 보았다. 이는 제2편에서 다룰 <원더 우먼> 속 기독교 페미니즘 고찰을 위한 예비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이어지는 칼럼에서는 <원더 우먼>이 어떤 방식으로 성서적인 페미니즘을 반영하고 있는지, 그리고 왜곡된 남녀관계 및 성적 정체성에 대하여 어떤 교훈을 수여하고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원더 우먼>은 기독교적 세계관과 인간이해를 충실하게 반영한 작품인 만큼 여성성(feminity)과 성적 정체성에 대해서도 분명한 기독교적 가치를 전달하고 있다. |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박욱주 박사.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내신 분들은 쉽게 공감할 것이다.
이처럼 어떤 의미로든 자기 삶에 연관된 모든 감각적이고 관념적인 재료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격식 없이 조합하여 하나의 멋진 작품을 만드는 일을 브리콜라주라고 한다. 이 기법은 오늘날 광고나 뮤직비디오, 조형예술, 팝아트(pop art) 등에 자주 동원되며 영화에서도 빈번하게 활용된다.
오늘날의 영화는 삶의 모든 관심사들을 매혹적인 방식으로 조합하여 그려내고 있다. 그 안에는 기독교인들이 환영할 만한 요소와 불편해할 만한 요소들이 정교하고 복잡하게 뒤섞여 있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본 칼럼은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받은 영화들 속에 뒤섞여있는 아이디어들을 헤아려 보고, 이를 기독교적 입장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평가할 것인지 고민하는 기회를 만들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