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김승진이라는 모험가가 있습니다. 그는 바람을 동력으로 삼는 요트 한 대를 구입하여 홀홀단신으로 세계일주를 마친 사람인데 인터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가 5대양을 횡단하는 중에 어떤 바다는 정말 아름답고 찬란한데, 어떤 바다는 며칠 간이나 해가 뜨지 않고 삭막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바다는 도대체 왜 그럴까?’ ‘정말 싫다’ ‘아름다운 그 바다가 그립다’를 반복하며 행복하지 않은 마음으로 지나가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마음 속에 ‘맞아. 이 바다는 원래 이 시기에 이런 바다이지. 그렇다면 이 바다를 즐겨야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갑판에 나아와 그 바다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감상하기 시작할 때, 그 바다만의 또 다른 깊은 멋을 발견하게 되고 다시 행복해지더라는 고백이었습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의 마음도 때로 그렇지 않은가 합니다. “주님, 제가 이번 시험만 합격하면 더 행복할 것 같은데요. 주님, 신분 문제만 해결되면 천국일 것 같아요. 주님, 이 병만 나으면요. 주님, 저 미운 사람만 없어지면요….” 나를 괴롭게 하는 조건들이 사라진 상태를 천국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출애굽기의 율법을 공부하다 보니 하나님은 일부다처제를 만드시지도, 찬성하시지도 않으셨지만 그렇다고 일부다처제를 폐지하라는 법을 만들라고 명령하시지도 않으십니다. 하늘나라는 여성 인권 회복으로 실현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런 조건들을 초월합니다.
하나님은 노예제도를 만들지도 찬성하시지도 않는 분이시지만 노예제도를 엎어버리라고 명령하시지도 않으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종인 상태로 예수를 믿었으면 ‘우리는 평등하니’ 주장하며 혁명 일으켜라 말씀하지 않고 계속 주인을 잘 섬길 것을 말씀하십니다. 천국은 내가 노예이고 포로라서 누리지 못하는 종류의 나라가 아닙니다.
제자들은 마지막 순간에도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로마로부터 해방되는 때는 언제입니까? 이스라엘을 회복하시는 때는 언제입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성령이 내 안에 계시지 않으면 타락한 우리 영혼은 모든 걸 다 가져다 줘도 이내 지옥의 불평거리, 내 인생이 불행한 100가지 조건을 찾아내고야 말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내 안에 임하셔 내 몸이 성전이 될 때 내 영혼은 나를 둘러싼 어떤 조건과 상관없이, 그 모든 환경들을 초월하는 천국이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해야 하는 이유도 하늘 아버지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셨는데 누가복음은 그 ‘좋은 것’을 ‘성령’이라고 풀어주십니다.
나를 둘러싼 악조건들을 물러가게 해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어떤 환경 속에서도 성령의 충만함을 통해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 안에서 담대히 천국을 누리게 하옵소서” 기도하는 성령 충만한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