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5월 9일 치러질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당마다 경선 열기가 뜨겁다. 특히 야당이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들이 경선 승리의 바로미터로 삼는 지역이 바로 호남, 즉 광주를 포함한 전라남·북도라는 점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소위 '진보'를 표방한 정당 치고 '호남 민심'에 구애하지 않은 곳이 없다.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창당한 새정치민주연합이 제1야당으로 등극했던 지난 제15대 국회의원선거(총선)부터 지난해 제20대 총선까지 호남이 뽑은 국회의원 143명(중앙선거관리위원회 통계 기준) 중 보수를 표방한 신한국당과 한나라당, 새누리당 소속 의원은 단 3명 뿐. 그 외 무소속이 10명이었고, 나머지 130명은 모두 진보 정당 소속이었다.
호남 인구 5백만 중 기독교인만 120만
예장 합동 교인 57만 등 대체로 보수적
이처럼 호남의 '정치색'은 뚜렷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나라 기독교 약 130년 역사에서 호남 지역 선교는 보수적 성향이 짙었던 미국 남장로교회 소속 선교사들에 의해 시작됐고,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또 현재 호남 지역 복음화율은 타 지역에 비해 높은 편이다. 지난해 말 통계청이 발표한 '2015 인구주택총조사 표본집계결과'에 따르면 기독교(개신교)인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전북(26.9%)이었고, 이어 서울(24.2%)과 전남(23.2%) 순이었다. 광주는 20%였다. 인구수로 치면, 광주와 전라남·북도 인구 약 5백만 명(2015 인구주택총조사 전수집계결과 기준) 중 기독교인만 약 120만 명이라는 얘기다.
국내 대표적 보수 교단인 예장 합동의 호남 지역 교인 비율은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지만, 지난해 101회 정기총회에 참석한 이 지역 총대수를 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지난해 총회에는 전체 153개 노회에서 총 1,614명의 총대가 참석했는데, 이들 중 호남 지역 총대는 31개 노회 소속 352명(21%)이었다. 예장 합동 내 호남 지역 교인 수 역시 이 비율과 같다고 가정하면, 그 수는 약 57만 명(2015년 기준 예장 합동 소속 전체 교인 수는 약 270만 명)에 이른다.
그러니까 호남 지역 기독교 인구 약 120만 명 중 57만 명(48%), 즉 적어도 절반 가까이는 신앙적으로 매우 보수적 성향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그 나머지 절반 역시 기독교장로회(기장)처럼 진보성이 강하지만 상대적으로 교세가 크지 않은 교단을 제외하면, 대부분 보수성을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말해 호남 지역 기독교인 다수는 보수적이라는 뜻이다.
동성애는 반대해도 표는 민주당에?
고질적 병폐인 '신행불일치' 지적도
단순히 생각하면, 이처럼 보수적 기독교인이 많은 호남 지역에서 진보 정당이 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기란 사실상 어렵다고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본 것처럼,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최근 대선 흐름을 봐도 마찬가지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
일단 호남인들이 진보 정당(우리나라 정치사에선 주로 야당)을 지지하는 이유는 5.18 광주행쟁과 같은 정치·역사적 요인과, 지역 발전 정책에 있어 다른 곳과 달리 차별을 받았다는 감정적 요인 등이 서로 맞물렸기 때문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이 지역 출신으로 우리 근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정치인인 김대중의 영향력도 어느 정도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요인들은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기독교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에서 때에 따라 신앙적 요인보다 더 우선시되는 경향이 있다고 교계 관계자들은 분석한다.
박명수 교수(서울신대 교회사)는 "굉장히 보수적 신앙을 가진 목회자라 할지라도 그가 호남 출신일 경우 막상 선거 때가 다가오면 호남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정당의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모습을 종종 보아왔다"며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선 신앙이 이와 같은 소위 지연(地緣)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호남 지역에서 태어나 지금도 그곳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한 목사는 "어렸을 때부터 귀가 따갑도록 아버지에게서 '김대중'이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마치 습관처럼 민주당(진보 정당 내지 야당을 의미)을 지지했다"며 "신앙은 보수적이지만, 적어도 정치적인 면에 있어서만큼은 그것이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다른 한 신학자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을 보면 신앙적 성향과 그들이 지지하는 정당 사이에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가령 보수적인 남침례교인들이 대체로 공화당을 선호하는 게 바로 그런 경우"라며 "그런 점에서 세계교회협의회(WCC)나 동성애를 반대하는 집회를 여는 등 극히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해온 호남 지역 기독교인들이 유독 선거에서 진보 정당을 지지하는 건 아이러니"라고 했다.
이 밖에도 신앙과 실제 삶의 분리라는 현대 기독교인들의 고질적 병폐인 이른바 '신행(信行)불일치'가 그 원인으로 꼽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