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약속의 땅에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부한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4-5)."
하나님은 유일한 구원자이시다. 그러니 다른 신을 생각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들이 사랑할 대상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밖에 없다. 여호와를 사랑하되, 전인격으로 사랑해야 한다. 전심을 다하고, 전 영혼을 다하고, 전력을 다해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원하신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원하신다. 마음이 없는 헌금이 무슨 소용 있으며, 마음이 없는 예배와 제사를 하나님이 기뻐하시겠는가? 마음이 없는 바리새인들의 기도는 하나님에게 응답될 리 없다.
그러나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형식적인 사랑을 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외식된 믿음을 책망했다.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사 29:13)."
예수님 시대도 마찬가지였다. 예수님은 이사야 선자자의 말씀을 인용해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외식적인 믿음을 질책하셨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마 15:8-9)."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그 사람을 더 사랑하시고 가까이 하신다. 단, 입술로만 형식적으로 사랑하고, 의무적으로가 아닌, 마음이 담긴 진심으로 사랑할 때.
마음을 다하는 사랑은 비단 하나님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은 아니다. 수평적인 사랑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성도들에게 당부한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벧전 1:22)."
사실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이기적인 마음을 극복하고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필요를 따라 서로 나누어 가졌다. 물질을 나누는 것보다 마음을 나누는 사랑이 더 관건이다.
배우자에게 마음을 주지 않는 부부가 많다. 돈을 갖다 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마음을 주는 것이다. 돈으로 사랑을 대치하려는 부모가 있다. 그러나 자녀에게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 마음이다. 사람들을 움직이는 건 마음이다.
지난 수요일 목양실에서 우리 교회 출신 전도사님 한 분을 만났다. 방학도 하고, 인사차 사역에 대한 조언도 들을 겸 온 게다. 1년 정도 교역자의 길을 걸어보니 쉽지 않다는 게다. 중등부와 청년회 사역을 하는데 마음 같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예전 부교역자 시절 기억을 추억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마음의 문제로 풀어갔다. 사역과 목회는 결국 관계인 것 같다. 관계가 좋으면 안 될 것도 되고, 관계가 좋지 않으면 될 것도 안 된다. 옳고 그름의 문제보다 관계의 좋고 나쁨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그 말을 듣던 전도사님은 '그걸 놓치고 있었다'고 동의했다.
우리는 부서 사역 경험을 함께 나누었다. 중등부는 교사를 얻으면 된다. 교사를 잡는 건 그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교사들은 전도사님을 관찰하고 있다. 전도사님이 하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면 뛰어든다. 나는 중등부 사역을 할 때 결혼했다. 사례비 38만 원에 월세금 18만 원을 냈던 신혼시절이었다.
그런데도 교사들 생일이 다가오면 작은 선물을 챙겼다. 스타킹이나 양말, 아니면 손수건. 정말 하찮은 거였다. 그런데 교사들은 그 마음을 받아주었다. 한 달에 한 번씩 교사 회의를 했는데, 각자 집으로 가서 모임을 가졌다. 식사를 하고, 사역을 점검하고, 교사들의 영적 충전을 위해 간단한 내용을 준비하고, 서로 교제를 나누었다. 금요일 모임을 갖고 바로 철야 기도회에 동참했다. 그런데 그런 시간들이 교사들에게는 충전의 시간이 된 모양이다.
이런 전도사의 마음을 알고, 교사들은 명절이나 생일이 되면 선물들을 준비하고 봉투를 주기도 했다. 나는 작은 마음을 쏟았는데, 그들은 많은 것들로 섬겨주었다. 그 후로 "그때가 재미있었고, 전성기였다"는 얘기들을 들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시간을 내주라고 당부했다. 같이 놀아주고, 얘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라는 게다. 가정적인 고민을 갖고 있던 한 여학생을 상담하고 대화를 나누었더니, 그 아이가 전도사님 말이라면 꾸뻑 죽는 시늉까지 하는 걸 경험했었다.
청년회 얘기도 풀어봤다. 청년회는 예배와 리더 양육에 사활을 걸었다. 주일 저녁 5시 30분부터 드리는 청년회 자체 예배 공동체가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다. 임원들은 사역을 하게 했다. 대신 리더를 양육하는데 집중했다. 토요일 5시 반부터 7시 반까지 리더를 양육하고 점검했다. 리더들의 삶을 점검하고, 조원들을 어떻게 돌아봤는지를 체크했다. 그리고 소책자를 나누고, 내일 나눌 교재를 다루었다. 리더만 세워두면 리더들이 조원들을 관리한다.
청년들도 마찬가지로 관계가 너무 중요했다. 당시 교육목사로 사역했기 때문에 청년들과 관계를 맺기 위해 직장을 찾아가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기도 했다. 남자들과는 목욕을 함께 했다. 주일 청년회 예배를 마치고 나서는 우리 집을 개방해 주었다. 그들이 모일 수 있는 필드를 열어주는 게다. 그러면 라면을 사 갖고 와서 자기들이 끓여먹고 설거지도 했다. 그렇지 않으면 몇몇 청년들과 더불어 결석자 집으로 쳐들어갔다. 그렇게 하다 보면 결석하기가 어려워진다.
교역자가 이렇게 하다 보니 청년들이 교역자의 마음을 알았다. 그래서 임원들과 리더들이 돈을 모아 도서비를 하라고 매달 건네주기도 했다. 청년들은 역동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게 좋다고 했다. 지역 문화를 연구한다든가, 조별로 식사를 준비해서 함께 나누어 먹는다든가, 그룹별로 주제를 주고 연구 발표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갖는 등. 그리고 복지시설을 방문하고, 농어촌선교나 단기선교의 기회를 갖도록 해주는 게 좋다고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은 전도사님은 "목사님 말씀을 듣고 보니 제가 놓치고 있는 것들이 보이네요" 하며 흐뭇해했다. 사역 초년생인 전도사님이 사역에 일말의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김병태 목사(성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