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으며 우리들은 많은 계획들을 세우게 됩니다. 그런데 그 많은 계획들 가운데 목숨을 내 놓을 만한 가치 있는 계획이 있느냐? 고 묻는 다면 대답은 달라질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그런 한 사람을 소개 합니다, 아볼로는 고린도 교회에서 파를 이룰 정도로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따르는 사람들과 제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아볼로가 일찍이 주의 길을 알아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쳤으며 회당에서 담대히 그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했습니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그가 안다는 그것이 요한의 침례에 관한 것만 알았을 뿐이었습니다.
그럴 때 "브리스가와 아굴라가 아볼로의 말을 듣고 그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길을 더 자세히 풀어 가르쳤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볼로가 그렇게 학문적으로 뛰어난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는데,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배웠어야 했느냐? 는 것입니다, 세상 적 이치로는 전혀 맞지 않는 일이지만, 성경은 그들의 지식의 뛰어남을 말하지 않고, 다만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직업이 장막을 짓는 자임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직업에 맞게 어쩌면 그들의 손은 망치를 잡느라 굳은 살 박혀있었고 그들의 등은 짐을 지느라 굽어 있을지 모르고 그들의 옷은 헤어져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이 바울을 만난 후, 하나님의 신약 경륜에 대해 분명한 이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울의 글에 브리스가와 아굴라에 대해 "그들이 바울을 위해 목이라도 내어놓을 정도로 사역에 대해 절대적이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볼로의 지식에 뛰어남을 전혀 개의치 않고, 그를 불러 하나님의 경륜을 말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으며, 성경은 이것을 기록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아볼로는 성경에 능하고 경건했지만, 하나님의 신약 경륜에 명백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의 길은 알았지만 하나님의 중심은 바로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참된 중심 뜻과 경륜을 모르는 지식 있는 학자도 많고, 하나님의 중심 뜻을 모르는 경건한 그리스도인도 많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자신에게도 이런 것이 두렵습니다. 우리를 사랑하는 예수님과 제자들과 그 뒤를 따르던 사도들이 가르친 "신약경륜의 가르침"이 오늘날도 참된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보았고, 이것을 그토록 말하고자 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영이며, 이는 우리 목숨을 내어 놓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 것입니다. 신실한 영성과 담대함이 목숨을 바칠 가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