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보통 사람이 유명 인사를 만나기는 어려운 세상이다. 세상에는 항상 유명 인사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음악가 안익태 선생도 구라파에 유학 와서 당시 실력 있는 마에스트로의 제자가 되기 위해 그의 집 앞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는 수고를 통해 그의 제자가 되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처럼 보통 사람이 유명 인사를 만나기는 예나 지금이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아마 이 시대 종교인 가운데 단연 만나고 싶어하는 1순위는 바로 '교황'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사는 21세기는 가치관의 혼돈과 진리에 대해 '타는 목마름으로' 살아가는 세대다.
구라파 사람들은 선조들이 받아들인 기독교에 대하여 식상해하고 있다. 그들이 기독교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겸손하게 엎드릴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럴 수 없다는 데서 탈출구가 없지 싶다.
그래서 그런지 교황을 개인적으로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굉장하다고 한다. 교황을 만나려는 욕구는 마치 가난한 사람이 로또에 당첨됨으로써 한꺼번에 문제를 해결해 버리려는 욕망과 비슷한 일인지도 모른다.
바(Bar)에서 커피를 마시며 P집사님이 얼마 전 경험한 일을 들려주었다. 알라스카에서 여행 오신 교포 분이 예배에 참석했는데, 그는 여행 중 로마의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친구를 데리러 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고 한다.
자신의 친구는 알래스카에서 로마에 여행 왔다가 상태가 심각하여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그는 교황을 꼭 만나고 오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로마에 왔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만나야 한다고 고집을 부린다고 한다. 그는 막무가내로 교황을 만나야 한다고 생떼를 썼기 때문에, 급기야 그룹에서 떨어져 정신병원에 입원시켜야 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런 사람들이 세계 각처에서 수 없이 찾아온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이런 분들이 여행을 올 수 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아무튼 이런 분들이 로마에 와서 배회하게 될 때 제일 바빠지는 분들이 영사과 직원들이다. 이들이 로마에서 무슨 일을 저지르게 될지 몰라, 그를 귀국시키기 위해 다방면으로 설득해도 '요지부동'이라고 한다. 로마까지 올 정도이니, 누가 뭐라 해도 듣지 않을 터!
이런 병을 지니고 입원한 사람이 비행기를 타려면 의사의 증명서를 발급받아야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병원에서 퇴원해야 될 것이고....
퇴원할 때 의사가 반드시 습관적으로 질문하는 사항이 있다. 그것은 "선생님, 집에 가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이다. 이 때 "예, 집에 가겠습니다!" 라고 말하면 퇴원할 수 있으나, "아니오, 나는 교황을 만나러 가야 합니다"라고 하면 퇴원을 허락받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런 대답을 하는 사람은 더 많은 치료를 요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병원에 가 보니, 같은 방에 입원한 분이 독일 사람인데 그 역시 교황을 만나러 온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알래스카에서 교황을 만나러 온 분과 독일에서 교황을 만나러 온 분이 한 병실에 입원해, 동병상련의 정을 나눌 수 있어 정답게 지냈다고 한다. 특히 알래스카에서 오신 분은 오래 전에 이민을 간 교포로 학식이 많고 영어가 자유로워, 두 사람은 많은 대화를 통해 친숙한 사이가 됐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 있는 분을 P집사가 병원 측에 잘 설명하여 퇴원시키게 됐다(이태리 병원은 정부에서 운영하기에 병원비는 무료임). 퇴원한 분을 데리고 식당에 갔는데, 아주 점잖은 분이었다. 풍부한 학식과 지성을 겸비했고, 겉으로는 전혀 문제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식사 중 대화를 하는데 조금씩 엇나가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집사님, 제가 자동차가 일곱 대가 있는 것 아시지요? 순전히 교황을 만나려고 그 차들을 준비했는데.... 나는 반드시 돌아와야 합니다. 다시 와서 교황을 만나고 나서 그 차들을 원위치 해야 하니까요."
"뭐라고요?" 치료됐다고 여겨 퇴원시켰는데, 어느새 또 다시 교황을 만나려는 병이 도지고 있었다.
이런 분들이 세계 각처에서 밀려오기 때문인지 병원의 의사들은 전혀 놀라지 않고 태연하다고 한다. 그 만큼 현대인들의 마음이 공허하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
왜 사람들은 교황을 만나려고 할까? 하나님의 대리자(?)로 믿기 때문에 그럴까? 교황을 만나기만 하면 자신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어서가 아닐까?
사람들이 교황을 만나고 싶어하는 그런 열정으로 주님을 만나고 싶어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나는 과연 주님을 만나고자 하는 열정을 지니고 있는 목회자일까?
주님께서는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눅 18;17)고 하셨다. 나는 과연 어린아이가 항상 엄마를 찾고 확인하는 것처럼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있을까?
주님을 향한 저런 정도의 열심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한평우 목사(로마한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