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우리가 서 있는 세상과 교회 안에는 '구세주'가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이 구세주이고, 재물과 권력과 명예가 구세주인 경우도 있고, 남편, 아내, 그리고 부모들이 구세주가 됩니다. 나의 취미, 내가 사랑하며 가꾸는 문화나 놀이, 그리고 자기 자신이 구세주가 되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직 예수만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하는 성도가 참 그리스도인인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신앙 명제는 자신의 삶의 자리가 어디인지에 따라,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서 있는 자리가 어디냐에 따라 그 의미와 내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평소에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배고픈 자들에게 배고픔을 해결해 주시고, 고통받는 자들과 슬퍼하는 자, 그리고 고아와 과부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특히 간음하여 죽게 된 여인을 구해 주시는 그 주님에 대한 제자들의 기대는 엄청났습니다.

그들이 기대했던 예수님은 힘 세고 능력 있으며, 로마에게서 해방시켜 주고, 정치적으로 권력을 가져 영광을 누리는 것이었지만, 주님은 제자들이 원하는 삶이 아니라, 십자가 형틀에서 이 세상 죄인들을 위해 하나님의 명령을 꼭 지켜야 하는, 수난과 고통을 선택하신 하나님의 외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당하시는 갖은 모욕과 수난, 그리고 처절한 고통이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었고, 오직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위해 꿈꾸며 큰 기대를 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의 깊은 뜻을 알지 못했지만, 예수님의 부활의 영광을 목격하고 체험함으로써, 그제야 자신들의 서 있는 자리를 깨닫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보내심을 새롭게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제자들이 기대했던 세상적 영광의 그리스도가 아니라, 가난하고 소외되고 버림받은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시고 그들의 편에서 늘 변호해 주시고 품어 주셨던 수난의 그리스도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 고통의 형틀에서 벗어날 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랐습니다. 오죽했으면 땀이 피가 되도록 간절한 애원의 기도를 하셨겠습니까? 가능한 이 잔을 내게서 옮겨 달라는 그 절규의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의 마음도 무척 아프셨으리라 부족한 생각으로 묵상해 봅니다.

그토록 고통을 하나님나라를 소개하는, 복음이란 목적의 완성을 위해 감당하신 것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참 평안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무한하신 그 사랑을 체험하고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당하신 못 자국을 우리도 당하고, 가시 면류관을 우리도 써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구원받지 못한 강도나 다를 바 없는 사람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부활의 승리와 함께 미래를 열어 주셨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과거에 묻혀 미래를 얻지 못하는 오늘날 교회는 주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깊게 깨닫지 못하고 있음에 한탄할 뿐입니다.

자기만의 생각으로, 자신의 경험과 품성으로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려는 종들이 있음을 실로 안타깝게 생각하며, 지금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보니 교회의 미래는 더욱 어두워지고 있어 마음이 아플 뿐입니다.

교회와 성도를 향해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 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히 13:16)"고 말씀하셨지만, 선을 행함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교회 안에서 어려운 성도를 멀리하며, 자신의 권모술수가 죄 짓는 것임을 모른 채 자랑하는 지도자들의 안타까운 모습에는,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며 하신 말씀이 다시 피어오릅니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고 하셨던 주님의 피 맺힌 간절한 울부짖음을  모르고 있으니, 정말 안타까울 뿐입니다.

갈수록 세상은 포악해지며, 소돔과 고모라와 노아의 홍수 사건을 잊었는지 모르는지 세상 끝에 대한 예언의 말씀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죄를 생산하는 일에 열정적인 모습을 볼 때, 주님께서 더욱 가까이 오셨음이 느껴집니다.

지금이 곧 우리가 깨어 기도하고 선을 행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지금의 때를 놓치면 교회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습니다. 속히 주님의 눈물을 닦아드려야 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복음을 실행해야 합니다. 그 길만이 우리 교회의 미래이며, 그 복음을 위해 선을 행하는 나 자신이 되어야 하고, 이웃을 향한 자비와 인애의 무기가 있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합하여 주님의 거룩한 사랑을 이루는 것이 아닐까요?

교회의 미래를 위해, 나 자신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남탓만 하지 말고, 바로 내가 바로 장본인임을 깨달아, 철저한 회개 속에 편견과 아집, 그리고 무던했던 나의 안일한 태도에서 새롭게 변화를 이끌어 내어야 하겠습니다. 그 후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어루만져 주실 것임을 확실히 믿고, 미래를 위해 나를, 지금 이 순간을 내려놓기를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