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유용하지만, 큰물은 두렵습니다. 홍수는 많은 재산을 떠내려가게 만들고, 심지어는 목숨을 빼앗아 갑니다. 노아의 대홍수는 “깊음의 샘”이 터지고 “하늘의 창문”이 열린 대사건입니다. 큰물로 세상의 모든 사람이 죽임을 당합니다. 대홍수의 큰물은 그러므로 죽음입니다. 그 홍수는 폐로 숨을 쉬는 모든 생명, 곧 사람과 동물을 죽였습니다. 대홍수는 죽은 자와 산 자를 갈라놓았고 방주 안과 방주 밖을 분리시켰습니다. 방주 안에 있는 것들은 모두 살았습니다. 방주 바깥은 모두 죽음이었습니다.
물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물에 빠져서 오래 있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세례는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즉 침례를 의미합니다. 물에 들어가서 한 번 호흡을 하고 1시간을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물에 들어가는 것의 의미는 이제 세상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입니다. 옛사람은 이제 장사지낸바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죽은 사람이 이제 물 밖으로 나오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으로 살아남을 의미합니다. 세례는 그러므로 옛사람에 대하여 죽고 새사람으로 다시 살아나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 즉 성령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면서 홍해바다를 건넌 사건이 세례라고 설명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면서, 모세와 함께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널 때 세례를 받은 것이라 설명하고 있습니다(고전 10:2). 홍해 바다의 물은 애굽 백성과 이스라엘백성을 분리하는 역할을 했으며, 그 물은 사망과 생명을 가르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홍해 바다의 물을 통과하는 세례로 이스라엘 백성은 생명을 얻었지만, 이집트 군인들은 그 동일한 물로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놀랍게도 베드로 사도는 노아의 홍수 때, 그 창일한 물을 세례와 연결하여 설명합니다. 세례는 죽음입니다. 세례는 신자와 불신자를 가릅니다. 노아의 홍수는 세상의 모든 사람을 죽음에 가두었습니다. 그러나 방주에 탄 여덟 사람은 살아남았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말합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벧전 3:21). 노아의 대홍수로 말미암아 세상은 모두 죽었습니다. 그러나 방주에 타고 죽음의 물을 건넌 사람들은 깨끗이 양심의 씻음을 받고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양과 염소를 분리하십니다. 천국은 그물에 잡힌 물고기를 분리하여 좋은 물고기와 악한 물고기를 분류한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하고, 의인과 악인을 분리합니다. 노아의 대홍수는 모든 사람과 생물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방주 안에 있는 사람과 생물은 세례를 받고 더욱 거룩하여졌습니다. 방주 안의 가족이 되십시오. 방주와 같은 교회가 되어 시대를 살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