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하이델베르크대학교-서울신학대학교 국제학술대회가 '본회퍼의 평화 사상과 동아시아의 평화'를 주제로 22일 오후 부천 서울신대 존토마스홀에서 개최됐다.
학술대회에서는 서울신대 유석성 총장이 개회사와 기조강연을 전한 후, 독일 튀빙겐대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 교수와 하이델베르크대 미하엘 벨커(Michael Welker) 교수(이상 서울신대 석좌교수), 하이델베르크대 디아코니아학연구소장 요하네스 오이리히(Johannes Eurich) 교수, 필립 슈퇼거(Phillip Stoellger) 교수가 각각 강연했다.
유석성 총장은 "본회퍼는 기독교 평화운동의 선구자로, 평화를 그리스도의 현존이자 하나님의 계명으로 보았다"며 "지금 북한의 핵 문제와 중국의 신중화주의·팽창주의, 일본의 신군국주의 경향이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데, 본회퍼에게서 한반도와 동아시아, 세계 평화의 길과 함께 한국 기독교의 시대적 사명과 과제를 발견하게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유 총장은 "본회퍼의 평화 사상은 성서에 기반을 둔 기독론·교회론적 기독교 평화 사상으로, 특히 정치·군사적 방법이나 사회복음적 전통에서 하나님나라가 이 세상에서 실현될 수 있다는 세속적 평화주의를 거부하고 예수님의 산상 설교에 기초를 두고 있는 복음적 평화 사상"이라며 "본회퍼는 무기와 군비 확장이나 안전 보장이 아닌 기도와 비폭력적 방법을 통한 평화를 호소했고, 그 평화의 개념은 진리와 정의가 실천되는 것으로 여겼다"고 설명했다.
그는 "본회퍼는 평화를 하나님의 계명과 그리스도의 현존이라고 했는데, 이는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실천할 길을 찾은 것"이라며 "본회퍼의 평화론은 '십자가 신학(theologia crucis)'에 근거한 제자직의 평화론이자 그의 대리 사상과 책임 윤리에 근거한다"고 분석했다. 본회퍼가 히틀러 암살 계획에 가담한 행위에 대해선 "처음부터 정상적인 상황에서 행해진 게 아니라 최후의 수단(ultima ratio)으로 저항권과 책임 윤리적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밝혔다.
본회퍼 평화 사상이 오늘날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에 주는 의미에 대해선 "평화를 위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문제, 빈곤의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는 등 정의를 실현해야 하고, 그 평화는 전쟁을 반대하고 비폭력적 방법으로 이뤄야 한다"며 "동아시아 평화를 위협하는 것은 자국 중심의 국수주의적 민족주의이므로, 한·중·일은 평화를 위해 역사 인식을 바르게 하고 보편적 가치인 평화와 인권, 자유와 평등과 정의, 그리고 민주주의를 추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위르겐 몰트만 교수는 '고난당하시는 하나님만이 도우실 수 있다: 디트리히 본회퍼의 하나님의 고난의 신학'을 발표했다. 전쟁 포로였던 어린 시절 본회퍼가 쓴 '나를 따르라(Nachfolge)', '신도의 공동생활(Das gemeinsame Leben)', '저항과 복종(Widerstand und Ergebung)'을 처음 접했다는 그는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고난 가운데 계신 하나님과 함께한다'는 구절에 밑줄을 그었다"며 "모든 포로들처럼 나는 자유를 원했고,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모든 감성으로 충만한 삶을 살기 원했기에, 본회퍼의 생각은 당시 내게 깊은 확신을 줬다"고 말했다.
몰트만 교수는 "우리는 감옥에서 쓴 본회퍼의 신학을 판단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본회퍼와 함께 신학적으로 생각해 보려 한다"며 "본회퍼가 '하나님은 이 세계 속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그리스도인들은 고난 속에 계신 하나님과 함께하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 것은, 나치에 저항하면서 당했던 고난이나 고백교회에 대한 박해가 아니라 기독교의 '타율'을 버리고 과학과 윤리와 정치의 '자율'로 발전한 '근대 유럽의 역사적 과정'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본회퍼는 기독교가 하나의 '구원종교(Erlösungsreligion)가 되어 거짓된 위로를 퍼트리는 것을 거부하는 대신, 우리를 성숙하고 책임적 존재로 만드는 참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십자가에 자기 아들을 홀로 두는 하나님이라고 말한다"며 "본회퍼는 골고다의 사건을 현대의 자율적 세계, 그가 즐겨 부르는 '성숙한 세계'를 해석하는 범주로 삼는다. 근대 세계가 추구한 인간의 자율과 성숙은 '거짓된 하나님 표상'을 제거했고, 이는 그의 무력함을 통해 세계 속에서 힘과 공간을 얻는 성서의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을 열어 줬다"고 했다.
몰트만 교수는 "본회퍼가 말한 '세계 속에서 하나님의 고난'이 뜻하는 바는 근대 인간의 성숙을 통해 '배제되어버린 하나님'과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이다. 본회퍼는 '골고다'를 유럽 근대 세계를 신학적으로 해석하는 범주로 사용한다"며 "본회퍼는 '고난당하시는 하나님만이 도우실 수 있다'고 말했는데, 나는 '하나님은 고난당하시는 하나님인 동시에 부활과 미래 세계의 하나님'이라고 첨가하고 싶다"고 전했다.
위르겐 몰트만 교수는 "본회퍼는 자신의 고난에도 '하나님의 고난'에도 머물지 않았고, 고난을 '해방의 길'로 이해했다. 이는 우리의 일을 완전히 하나님의 손에 맡길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며 "고난당하는 것을 행위의 중단(Abbruch)으로 보지 않고 행동의 완성(Vollendung)으로 볼 때, 고난은 행동의 계속(Fortsetzung)을 뜻한다"고 정리했다. 그는 "여기서 본회퍼는 자신의 감옥생활을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며 "감옥에서 그는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이 고난을 견뎌야 했지만, 지금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고 있었기에 죽음을 '인간의 자유의 대관식'으로 찬양했다"고 덧붙였다.
이후 미하엘 벨커 교수는 '본회퍼의 평화 사상'을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본회퍼는 짧은 인생에도 불구하고 '평화'라는 주제에 대해 신학적으로 기여했지만, 아쉽게도 박사학위 논문에서 보였던 천재적인 사회학적·사회철학적 사상들을 '평화'에 응용하지도 확장시키지 못했다"며 "또 평화 문제에 대한 자신의 에큐메니칼적이고, 에큐메니칼 교회정치적 경험들을 세계적으로 확산시키고 결실을 거두게 하지도 못했는데, 이는 감옥살이와 처형으로 그의 인생이 구속받고 요절된 상황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벨커 교수는 "본회퍼가 말했듯, 오로지 그리스도론적이고 성서적으로 근거를 확보한 신학만이 '현재에 충실한' 에큐메니칼적 선포를 제공할 수 있다"며 "과거부터 지금까지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국제적 평화 질서가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무조건적 명령이고 평화의 공동체는 거짓과 불의가 아니라 진리와 정의 위에 세워질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본회퍼는 '다성부음악(多聲部音樂)과 같은 삶의 다양성'의 높은 의미를 강조하면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충만함 안으로 우리를 들어가게 하시리라는 인식이 다성부음악 같은 삶의 다양성을 그 모든 현상들 안에서 받아들이게 하는 힘을 제공한다고 말한다"며 "본회퍼는 '그들은 하나님의 평화로 사는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평화를 위해 사는 사람들'이라 표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본회퍼의 영성과 디아코니적 행위'를 설명한 요하네스 오이리히 교수는 "본회퍼는 '신도의 공동생활'을 통해 20세기 영적인 삶을 살기 위한 그리스도교적 형태에 새로운 활력을 제공했는데, 이 책에서 그는 거듭 '모든 영적 사역이 비로소 자신의 힘을 갖게 되는 토대인 침묵(Stille)과 집중(Sammlung)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며 "그는 위협적 정치 상황 한가운데서도 행동주의(Aktivismus)보다 관조(Kontemplation)를 요구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고 언급했다.
오이리히 교수는 이를 통해 두 가지 관점을 제시했다. "예배의 목적은 단순히 세상에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준비가 아니라, 그를 통한 '영성' 자체로서 하나님이 행하신 선물이자 결과"라는 점과, "육체적 측면을 포함한 삶의 전적인 긍정으로서 포기(Verzicht)를 영적 차원에서 바라봄으로써, 하나님과 이웃을 더 잘 섬기기 위해 반드시 포기와 단념이 자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회퍼에 의거한 저항권의 근거와 무근거에 대한 사유'에 대해 이야기한 필립 슈퇼거 교수는 "본회퍼는 20세기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권의 모범으로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자 우리의 질문과 연관해 거의 기준을 제시하지만, 실제로 루터교 전통에 속한 그에게 저항권에 대한 질문은 아주 심각한 것이었다. 성서적으로 저항권의 근거를 찾는다면 그 이유를 찾지 못할 뿐 아니라 반대로 '저항하지 말아야 한다'는 많은 이유를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슈퇼거 교수는 "저항권은 구성적으로는 질서의 유지를 위해 존재하는 보수적인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다른 모든 수단들이 다 소진됐을 때에야 손에 잡히는 수단으로 사람들이 자신의 양심에 근거해 상징적으로 법적 규범들을 공격하는 시민 불복종과 연관시킬 수도 없다"며 "본회퍼는 양심 대신이 아니라 양심의 루터적 내재성을 변형시킴으로써 책임의 길로 들어서고자 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