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 ) 엘파소한인침례교회 이상환 목사
(Photo : ) 엘파소한인침례교회 이상환 목사

문제 제기: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몸을 통하여 세상에 나오셨다"는 성경의 증언을 이용하여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려는 자들이 있다.  인간이 엄마의 자궁 속에서 "피조(קנה)"되고 "조직(סכך)"된다는 시 139:13의 말씀을 예수님의 탄생에도 적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용납될 수 없다.  예수님의 탄생은 인간의 탄생과 전혀 다른 것이라고 성경이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구절들을 통하여 그 다름을 이야기 할 수 있지만 이 글의 취지는 많은 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어학적 접근을 통하여 인간과 예수님 탄생의 다름을 논증하는 것이다.

 

게나스따이 vs. 기네스따이: 헬라어 성경에는 "태어나다"의 의미로 쓰이는 단어가 크게 두 개있다.  게나스따이(γεννάσθαι)와 기네스따이(γίνεσθαι)이다.  게나스따이는 게나오(γεννάω)의 현재형 중간태 부정사이고, 기네스따이는 기노마이(γίνομαι)의 현재형 중간태 부정사이다.  헌데 중요한 사실은 사도 바울은 게나스따이와 기네스따이를 구별해서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의 글에 나타나는 단어 사용법을 분석하자면 게나스따이는 사람들의 탄생을 나타내기 위해 쓰이지만 예수님의 탄생에는 단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다.  오직 기네스따이만 쓰였다.  왜?  바울은 기네스따이는 게나스따이에는 없는 뜻을 강조하려 했기 때문이다:  게나스따이는 아이가 "태어나다"는 뜻이지만 기네스따이는 게나스따이에 있는 발생학적(發生學的) 뜻 외에 "~이 되다"는 뜻이 있다.

이러한 차이는 기네스따이가 게나스따이를 포함하고 있음을 명시한다.  "~이 되다"는 뜻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아이가 태어나 존재가 되다"는 뜻 이외에 "A라는 직분을 갖고 있던 사람이 B라는 직분을 가진 사람이 되다"는 의미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예컨데 과장이 사장이 되었다고 치다.  이러한 경우에는 게나스따이가 사용될 수 없다.  과장이 사장이 되는 것은 존재하지 않던 사람이 태어나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네스따이는 이 문장에 사용될 수 있다.

이처럼 발생학적 의미만 담고 있는 게나스따이는 "존재하지 않았던 아이가 태어나 존재가 되다"는 포함하지만 "A라는 직분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B라는 직분을 가진 사람이 되다"는 포함할 수 없는 것이다.  마치 "과일"은 "사과"를 포함하지만 "사과"는 "과일"을 포함할 수 없기에 "사과는 과일이다"는 표현은 성립되지만 "과일은 사과다"는 표현은 성립될 수 없는 것 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수학적으로 말하자면 게나스따이는 기네스따이를 포함하는 관계가 아니지만 기네스따이는 게나스따이를 포함하는 관계(기네스따이⊃게나스따이)이고, 논리학적으로 말하자면 게나스따이는 기네스따이의 하위 개념(下位槪念)이고 기네스따이는 게나스따이의 상위 개념(上位槪念)이다.  도표를 보라

12예수님의 신성 (9)-3

성경의 증언: 이처럼 기네스따이에는 게나스따이가 포함할 수 없는 개념이 있다는 것을 유념하고 성경을 보자.  헬라어에 능숙했던 사도 바울은 이 단어의 차이점을 가려가며 파피러스위에 붓을 흘렸음을 알 수 있다.[1]  그는 '출생(出生)'의 의미만 나타내는 게나스따이가 아니라 '존재의 선유무(先有無)에 관계없이 무엇이 되었는가'의 의미까지 담겨있는 기네스따이의 어원인 기노마이(γίνομαι)의 중간태 동사만을 사용하여 예수님의 탄생을 묘사했다.  바울의 글을 보라.

롬 1:3이다.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γενομένου)...

예수님께서 다윗 왕가의 출신이라는 의미다.  이 단어가 기네스따이로 되어있다면 존재하지 않던 예수가 다윗을 혈통으로 태어나 존재하기 시작되었다는 의미로 해석 될 수 있지만 게나스따이로 되어있기에 예전에 다윗의 하나님으로 존재하셨던 예수님께서 다윗의 혈통이 되셨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갈 4:4의 증언이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γενόμενον)...

이 단어가 게나스따이로 되어있다면 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예수가 여자에게 남으로써 존재하기 시작되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지만 기네스따이로 되어있기에 전에 여인을 창조하셨던 예수님께서 여자의 아들이 되셨다는 의미로 해석이 될 수 있다.

빌 2:7의 증언이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γενόμενος)...

이 단어가 게나스따이로 되어있다면 예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예수가 태어나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지만 기네스따이로 되어있기에 전부터 말씀으로 존재하시던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셨다는 의미로 해석 될 수 있다.  바울은 이러한 단어적 차이를 놓치지 않고 붓을 흘렸던 것이다.

한 가지 더: 글에 담긴 내용의 명료성을 위해 "낳다"는 단어로 번역된 게나스따이와 기네스따이의 차이점을 도표화 한 후 한 가지만 더 설명하겠다.

4

바울적 신학에 따르면 당신과 내가 태어난 것을 묘사할 때에는 게나스따이와 기네스따이가 다 쓰일 수 있다. 게나스따이가 쓰이면 "발생학에 기초한 생물학적 출생"을 의미하고, 기네스따이가 쓰이면 (1) 발생학에 기초한 생물학적 출생을 전체로 한 (2) 무(無)에서 유(有)로써의 인간이 되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것은 게나스따이로 쓰일 수 없고 오직 기네스따이로만 쓰여 (1) 발생학에 기초한 생물학적 출생이 아닌 (2) 유(有)이신 하나님께서 유(有)로써의 인간이 되셨다는 뜻이 된다. 즉 "예수님께서 태어 나셨다"는 문장은 도표 2에 있는 파란 칸의 흐름대로만 이해되야만 하는 것이다.

맺으며: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님의
탄생을 가르켜
성육신(成肉身)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추신: 마태복음 1:16b에 게나오가 쓰였다는 이유로 예수님의 성육신을 반증하는 자들을 향한 반증은 (http://sanghwanlee.com/2014/03/27/마태복음-116b과-성육신/)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