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우리에게 큰 유혹이 있습니다. 그것은 조급함입니다. 라면도 이미 성공적인 패스트푸드인데 그 조리 시간마저 아까워 컵라면을 만들었습니다. 사진을 찍되 필름 한통을 다 쓰기까지 기다렸다가 현상소에 맡기고 또 다시 기다렸다가 현상된 사진을 받아보던 기쁨을 잃어버렸습니다. 정성스레 편지를 쓰고 우표를 붙여서 보내고 상대방이 읽어줄 날을 기다리는 설렘, 기다림 끝에 답장을 받아 보는 즐거움을 상실했습니다.
사랑한단 말도 미안하단 말도... 심지어는 떠난다는 말도 카톡으로 보내고 바로 돌아오지 않는 답장에 화를 내곤 합니다. 성숙을 이루었는가를 생각하기 전에 누가 더 어릴 때 공부를 마치고 어떤 고급차를 얼마나 젊은 나이에 타는가를 따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세계에서 빠르고 건강한 성장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법칙은 Little by Little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짧아서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아직 성장하지 못해서 가나안의 이방 민족을 한 번에 몰아내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이 다스리지 못하는 땅은 어차피 들짐승들이나 가득한 황무지가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분에 넘치는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인생의 3대 불행을 이야기할 때 ‘조기성공’이 들어갑니다(조기성공, 중년상처, 노년무전). 사람들이 그토록 열망하는 ‘이른 성공’이 왜 불행일까요? 축복은 결코 성품의 그릇을 넘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조기 성공한 사람들은 성공에 준하게 성품을 성장시키지 못했을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이 한 번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기가 힘들어서 ‘100명 중 1명 정도만 춘경을 극복한다’는 명언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에만 관심을 둘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성장과 주님과의 관계를 생각하고 계십니다. 후자가 일어나면 언제든지 전자의 축복은 우리에게 머물 수 있고 의미가 있습니다. 빌 하이벨스 목사님은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나는 축복(부흥)은 곧 심각한 침체로 이어질 수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많은 교회가 연말 연초에 특별 기도를 심습니다. 자라는 시간인 것입니다. 하루를 심고 다음날 싹이 나기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오늘 뿌렸다는 사실에 의미를 두십시오. 자신을 이기고 하루 전보다 그릇을 키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조급한 마음을 버리시고 작정한 기간에 온전히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기회를 드리십시오. 교회에서 정한 기간 동안에 영성의 그릇, 인내의 그릇을 확장시키십시오.
때론 지루해 보이는 인내의 기도시간이 지나고 나면 한 순간 결실의 순간이 다가옵니다. 기도가 서서히 쌓인다고 해서 응답도 서서히 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신비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