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릭사이드 교회 김칠곤 목사
(Photo : 기독일보) 크릭사이드 교회 김칠곤 목사

사회복지와 상담학을 미국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필자가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기 위해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아들과 딸에게 수십년 전에 한국에서 대학원 다닐때 공부했던 성적증명서 한 부를 학교 교무처에 가서 복사하여 미국으로 보내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런데 그 부탁을 하고서 한편으로 걱정이 되었다. 그것은 성적증명서를 아이들이 발급받는 과정에서 아빠의 성적을 혹시 알면 뭐라고 이야기 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그런데 이러한 걱정이 정말로 벌어지게 되었다. 그것은 학교 담당자가 성적증명서를 학교에 인터넷으로 발급받을 수 있다고 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그 소리를 들은 아들은 필자에게 주저 없이 전화를 걸어 인터넷으로 성적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는데 괜찮은 가에 대한 물음을 물은 것이다. 그리고 아들은 필자의 성적증명서를 발급받고 다시 전화를 했다. 그 내용은 다름이 아니라 어떻게 성적표에 F가 하나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그가 그것을 물어 보았을때 나의 답변은 전공이 맞지 아니해서 그런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말을 듣고 마음속에 대단히 챙피스럽기도 하고 혹시 그것을 가지고 두고 두고  말을 하면 어떻지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아들과 대화를 하는  내용을 들은 아내가 장난 섞인 공격을 나에게 한 것이다."자신도 과거에 공부를 못했으면서 어떻게 아이들이 공부를 못한다고 고등학교 다닐때 아이들에게 큰 소리를 치셨습니까?", "이제는 아이들에게 왜 성적을 그것 밖에 받지 못했느냐고 불평하지 마세요"

아내로 부터 공격을 받았던 필자는 거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마침내 딸에게 다시 놀림을 당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아빠가 지난날 공부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하길래 나는 아빠가 한국에서 공부를 잘 했는지 알았어", "나는 그래도 지금까지 F 학점을 맞아 본적인 한 번도 없어"라고 계속해서 놀리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딸아이가 말하기를 앞으로 아빠의 성적에 관해 자주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그 소리를  딸아이로 부터 들었지만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했다. 그것은 아이들이 아빠의 과거성적을 앎으로인해 관계가 더 가까워지는 것과 나를 더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필자의 과거 성적을 가지고 자녀들과 사랑하는 아내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더욱이 감사한 것은 가족들이 필자가 나이들어도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에 대해 너무나 기뻐한다.  

아이들이 말하기를 "다른 아빠들은 오십이 넘으면 편히 살려고 하는데, 우리 아빠는 항상 노력하는 모습이 너무나 좋아" , " 십대들과함께공부를하면서 좋은 성적을 받으려고 하는 우리 아빠가 너무 귀여워", "그래도 과거에 F를 맞았던 우리 아빠가 최고야!" 이런 소리를 들을 때 마다 자녀들을 고맙게 여긴다. 그리고 그들이 생각할 때 필자가 다른 세대를 살아 왔지만 자신들과 같이 대학 캠퍼스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려고 하는 아빠를 존경하는 마음을 표현할 때 마다 산다는 것은 정말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자녀들에게 아버지가 성실한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 준다는 것은 그리 쉬운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환경속에서 최선을 다하며 새로운 삶을 도전한다는 것은 인생의 젊음은 끊임없이 주어진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항상 꿈을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꿈은 꿈을 꾸는 자의 것이라"고 말 할 수 있다. 그리고 꿈을 꾸는 자만이 도전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이것으로 볼때 "꿈과 도전" 은 어린 아이들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든 성인들에게도 얼마든지 주어진다고 믿는다. 나의 경험으로 볼때 꿈을 이루는 것은 성실로 노력을 하면 자신의 목적하는 방향에 도달 할 수 있다. 언젠가 노인회에 참석한 일이 있었다. 그때 한가지 인상적인 것이 있었다면 80이 넘은 노인 한분이 섹스폰을 부는 것이었다. 그가 노래를 한곡 부르면서 중간에 이런말로 노인분들께 격려를 하는 것이었다. 내가 이 섹스폰을 불기 시작한 것은 이제 1년 밖에 되지 아니했습니다. 처음에는 색스폰을 배운다는 것에 대해 많이 두려웠는데 배우다 보니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에 너무나 기뻤다는 고백을 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그분이 덧붙혀서 동료들에게 이렇게 격려를 하는 것을 보았다. " 나도 이 나이에 섹스폰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도 언제든지 하고 싶은 것을 배우실 수 있습니다.", "지금 뭔가를 배우려고 한다면 결코 늦은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꿈을 향해 열심으로 달려 갔더니 지난날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볼수 있었다는 말이다. 삶의 행복은 바로 이것이라고 믿는다. 그것은 자신이 바라는 것을 포기하지 아니하고 도전하고 비록 시간이 걸린다 할지라도 앞으로 달려 나아가는 것이다. 거기에는 오직 성실만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성실(誠實)의 의미는 정성을 다하면 하고자 하는 일의 결과를 얻게 된다. 자녀들에게 가장 복된 유산을 부모가 물려 준다면 그것은 성실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면 그 자녀들은 부모가 걸어가는 삶을 모방하게 되고 나중에는 그들의 삶가운데 성실이 묻어 나오는 것이다.

삶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려고 한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감사함으로 여기며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성실한 삶을 사는 평범한 사람보다는 악인 일지라도 그들의 부자된 삶과 세상이 말하는 성공적인 삶을 너무나 부러워 하며 그런 삶을 쫓아 가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악인이 형통한 것은 죄라고 말을 한다. 또한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도 말라고 가르친다."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잠언23:17) 그 이유는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면 신앙적으로 낙심에 빠질 것이라는 것을 하나님이 아시기 때문이다. 악인의 형통은 일시적인 것이기에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것을 부러워 할 필요가 없다.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잠언24:20) 그런데 신앙인 이라 할지라도 삶이 어려워지고 환경이 힘들어지면 낙담하게 되고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 하다가 낙담에 빠지게 된다.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도 자신의 낙담에 관해 신앙 고백을 했다. "여호와여 내가 주와 쟁변할 때에는 주는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패역한 자가 다 안락함은 무슨 연고이니까"(예레미야12:1) 신앙인이 믿음을 잃지 아니하고 영적인 강건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세상을 바라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가지고 성심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다. 삶 가운데 최선을 다하면 성공은 주어진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실히 자신의 일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기쁨으로 감당하는 삶을 살기 위한 것이며 그것이 곧 행복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학교의 성적 보다는 늘 최선을 다하는 삶을 가르치고 그것을 삶에 유산으로 남기는 것이다. "네가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누워 있자 하니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잠언24: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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