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블루스 킹 이즈 곤.'
CNN과 AP통신 등 주요 언론은 B.B. 킹이 14일 라스베이거스의 자택에서 8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미시시피 주 출신으로 지난 1949년 '미스 마사 킹'을 발표하며 데뷔한 킹은 1969년 '더 스릴 이즈 곤'을 히트시키는 등 대표적인 블루스 가수와 기타리스트, 작곡가로 명성을 떨쳤었다.
특히 킹은 흑인의 노동요로 비주류에 머무르고 있었던 블루스 음악으로 그레미상을 무려 15번이나 수상하는 등 블루스를 세계의 대중음악 가운데 하나로 성장시킨 공로자다.
또 사람의 흐느낌을 닮은 비브라토와 벤딩(음 끌어올리기) 주법으로 '세계 3대 기타리스트'인 에릭 클랩튼, 제프 벡, 지미 페이지를 비롯한 거의 모든 록·R&B·재즈 기타리스트에게 영향을 준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이기도 했다.
그는 한 번도 정규 음악교육을 받은 적이 없지만 독학으로 전설의 반열에 올랐다.
킹의 변호인인 브렌트 브라이슨은 그가 "저녁 9시 40분께 자택에서 잠자던 중 평온하게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그동안 당뇨병을 앓아 온 킹은 당뇨로 인한 탈수 증상으로 지난달 라스베이거스의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었다.
본명이 라일리 B. 킹인 그는 1925년 미시시피 주인디애놀라의 가난한 목화밭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교회 성가대원으로 처음으로 음악을 시작했으며 12살 때는 전도사였던 삼촌으로부터 기타를 배웠다.
9살이 될 때까지 일당 35센트를 받으며 목회 농장에서 일하는 힘든 시절을 보냈던 그는 목화 농장에서 받는 일주일치 급료를 하룻밤의 거리 공연에서 벌 만큼 탁월한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
이후 1947년 테네시 주 멤피스로 무작정 떠나 친척이자 유명 블루스 뮤지션인 부카 화이트로부터 본격적인 블루스 수업을 받게 된다.
멤피스 지역 라디오 방송에서 디스크자키로 활동하며 '빌 스트리트 블루스 보이' 또는 '블루스 보이'라는 애칭을 얻게 된 킹은 '블루스 보이'의 머리글자를 딴 'B.B. 킹'이라는 이름으로 1949년 첫 번째 싱글 '미스 마사 킹'을 발표하며 가수로 본격적으로 데뷔했다.
그는 '루실'이라는 이름을 붙인 깁슨사의 기타를 애용하며 '스리 어클락 블루스'(1952년), '유 업셋 미 베이비'(1954년), '스위트 식스틴'(1960년), '더 스릴 이즈 곤'(1969년) 등의 명곡을 탄생시켰다. 그는 1949년 자신의 공연장에서 '루실'이란 여자를 놓고 두 사내가 싸우다가 불을 내는 바람에 타버릴 뻔했던 기타를 '루실'이라고 부른 뒤, 평생 루실을 연주해왔다.
대표곡인 '더 스릴 이즈 곤'으로 1970년 첫 번째 그래미상을 따낸 킹은 30차례나 그래미상에 노미네이트(추천 명단)됐고 그 중 15번 수상했다. 그 중 두 차례는 2000년대에 수상했을 정도로 65년간 왕성한 음악활동을 펼쳤다.
1950년부터 1970년대까지 1년 중 300일은 투어를 한 것을 포함해 최근까지 1만5000회가 넘는 공연을 했다.
이런 음악적 성과를 앞세워 그래미 평생공로상, 음악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폴라 음악상', 대통령 훈장을 수상하고 '블루스 명예의 전당'과 '록 앤드 롤 명예의 전당'에 모두 헌액됐다.
또 '버터플라이 비브라토'라고 불리는 그의 기타 연주와 노래는 지미 헨드릭슨, 로버트 크레이, 롤링 스톤, 에릭 클랩튼, 스티비 레이 본, 셰릴 크로, 존 메이어 등의 후배 뮤지션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지난 2003년 미국 롤링스톤지 선정 역대 최고의 기타리스트 100인 중 지미 헨드릭스, 듀안 올맨에 이어 3위에 오르기도 했다. 블루스에서 단순하지만 중요한 코드인 '12 바 블루스(bar blues)'를 만드는 등 기술적인 부분에도 공을 세웠다.
킹은 클랩튼이나 록그룹 U2, 엘튼 존 등 다양한 장르의 뮤지선들과 함께 앨범 작업을 하는 등 자신의 블루스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음악을 받아들이려는 노력도 놓치지 않았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1년에 100회 이상의 공연을 할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킹은 당뇨 증세가 심해지면서 지난해 10월 시카고 공연과 나머지 일정을 취소하며 건강에 적신호를 보였다.
한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블루스는 왕을 잃었다. 미국은 전설을 잃었다. 그는 갔지만 그 전율은 영원할 것"이라고 애도의 성명을 냈다. 지난 2012년 비비 킹이 연주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노래를 불렀던 인연이 있다.
에릭 클랩튼도 자신의 자신의 페이스북에 B.B. 킹을 추모하는 영상을 공개하며 "사랑하는 친구 B.B. 킹을 잃어 슬프고 그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며 "그는 내게 음악적 영감을 줬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