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길이를 잴 때 “피트”(feet)를 씁니다. “피트”는 “foot”의 복수형으로 야드-파운드법에서 길이의 단위입니다. “피트”란 글자 그대로 발의 길이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반면에 한국은 길이를 잴 때 공식적으로 미터법을 쓰고 있는데, “한뼘, 두뼘”하면서 손바닥으로 길이를 재는 습관이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유일하게 대제사장의 판결흉패의 길이와 넓이를 각기 “한 뼘씩” 손바닥 크기의 정사각형으로 만들었습니다.

“너는 판결흉패를 에봇짜는 법으로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공교히 짜서 만들되 장광이 한 뼘씩 두 겹으로 네모 반듯하게 하고”(출 28:15-16)

그러나 일반적으로 성경에서 언급한 길이의 단위는 “규빗”입니다. “규빗”이란 어른의 팔꿈치부터 손 끝까지의 길이를 말합니다. 구약시대의 역사적 배경이 되는 고대 중동지역에서는 “규빗”이라는 단위를 썼는데, 공식적으로 긴 규빗(52.5cm)과 짧은 규빗(44.7cm), 두가지 쓰였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주로 짧은 규빗을 사용하였습니다. 히스기야때 만들었던 실로암 터널에서 실로암 비문이 발견되었는데, 터널을 길이가 1,200 규빗이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실로암 터널의 실제 길이를 측량해 보니 533m였습니다. 이는 1규빗당 대략 45cm정도로 히스기야 당시에 이스라엘은 짧은 규빗을 사용했다는 증거입니다.

성막의 울타리(출 27:9-13)는 남북으로 각각 100규빗 길이에 5규빗 높이로 된 세마포장으로 둘렀습니다. 동서는 각각 50규빗으로 되어 있습니다. 세마포장은 가는 실로 꼰 휘장입니다. 천으로된 휘장을 세워 울타리로 만들기 위해서 남북으로 20개씩, 동서로 10개씩의 놋기둥을 세워 고정하였습니다.

성막 뿐만 아니라, 노아의 방주, 솔로몬 성전 등의 길이를 나타낼 때에 모두 “규빗”이라는 척도를 사용하였습니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자,” “척”이라는 단위들이 나오는데, 모두 원어로는 “규빗”입니다. 길이를 측량하기 위해 1규빗을 재려면 팔꿈치를 대고 팔을 움직여 손 끝까지 닿도록 해야 합니다.

에스겔 47장에 보면, 환상 중에 성전으로 간 에스겔 선지자가 동쪽으로 난 성전문을 통해 흘러나오는 물을 보았습니다. 그 물이 남쪽 제단을 거쳐 흐르는데, 처음에 1천척을 재니까 물이 발목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그 다음에는 허리에까지 차고, 그리고 나서 다시 일천척을 재니 능히 건너지 못할 큰 강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강가에 나가보니 그 물이 흐르는 곳마다 죽었던 물고기가 살아나고 강가에 있는 나무는 달마다 열매를 맺고 그 잎사귀는 약재료로까지 쓰이는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무엇이겠습니까? 말씀의 물입니다. 은혜의 물입니다. 이 물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하여 얻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성경을 펼쳐 보았더니, 구약성경이 1331페이지, 신약성경이 423페이지로, 대략 900장 정도가 됩니다. 성경 한 장 한 장을 손으로 넘기는데, 팔꿈치에서부터 손끝까지 움직입니다. 마치 팔꿈치에서 손끝까지 사용하여 1규빗을 측량하듯 성경 한 장 한 장을 넘기게 됩니다. 이렇게 1천번을 움직이면 성경 전체를 한 번 통독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규빗”을 성경을 읽을 때마다 성경의 척도인 “규빗”을 늘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 규빗 한 규빗 성경을 읽으며, 우리의 믿음이 말씀의 물에 발목이 차고, 무릎에 차고, 허리에 차고, 급기야는 능히 헤엄쳐도 건너지 못할 정도의 큰 강물이 될 때, 슬픔이 있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 나갈 수 있습니다.

성도는 말씀의 물 속에서 살아가는 물고기와 같은 존재입니다. 물고기에게 물은 놀이대상이 아니라 생명의 근거지입니다. 특별히 물고기는 로마가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던 초대 기독교 시대에 성도들을 상징하였습니다. 물고기는 헬라어로 “익스투스”(ΙΧΘΥΣ)인데, 이는 예수(Ι) 그리스도(Χ) 하나님(Θ)의 아들(Υ) 구세주(Σ)의 첫글자를 딴 것입니다.

희망찬교회 담임 임봉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