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권사님은 밖으로 놀러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남편은 놀러 다니는 걸 싫어한다. 아들도 아버지처럼 다니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딸에게 부탁을 했다. "나 좀 데리고 다니라!" 그런데 딸도 엄마를 데리고 다니기를 귀찮아한다. 그래서 속이 상하다.
또 다른 권사님은 놀러 다니기를 귀찮아하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자녀들이 자꾸 엄마를 데리고 다니려고 애를 쓴다. 그래서 귀찮다.
어쩌면 좋겠는가? 어느 날 놀러 다니기를 좋아하는 권사님이 놀러 다니기를 좋아하지 않는 권사님에게 제안했다. "우리, 아들을 바꿔 보자. 그럼 너도 좋고 나도 좋잖아."
당신은 어떤 심정인가? 자식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드는가? '자식이 없으면 걱정할 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가? 자식이 없는 사람들의 아픔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우리 교회 젊은 부부는 결혼한 지 5년이 지났는데도 아이를 가질 수 없어 힘들어한다.
더구나 '세월호' 침몰로 지금도 일손을 놓고 몇날 며칠 동안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며 눈물만 흘리고 있는 부모들의 눈물을 보고 있지 않은가? 중요한 건 '자식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잘 양육'하는 것이다. 최근 나는 <행복한 자녀로 키우는 9가지 사랑의 언어>를 출간했다. 부모가 말만 잘해도 아이들을 행복한 아이로 양육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자녀들 때문에 정말 힘들 때가 있다. 그때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 아이들 안에 계신 주님이 일하시게 해야 한다. 성령께서 그들에게 깨달음과 돌이킴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한다. 내가 무력감을 느낄 때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어야 한다.
어린이날이다. 하루 이벤트로 부모 노릇 다했다고 안심하지 말아야 한다. 그보다 더 소중한 건 평소의 삶이다. 평소 가족 간에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나눠야 한다. 행복한 가정의 특징은 경청과 공감이다. 부모는 자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자녀들은 말한다. "부모들은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습니다. 아이들이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듣지 않아요."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지 말고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한다.
많은 부모들은 공부 외에는 할 말이 없다. 학원 다녀왔어? 숙제 다 했어? 시험은 언제인데? 준비는 잘하고 있어? 이번에는 몇 등 했어? 공부 못하는 친구들과는 어울리지도 말어? 그러니 아이들은 엄마를 공부 감시꾼 정도로만 인식한다. 그래서 엄마가 지겹다.
아이들에게 부모는 잔소리꾼 이상이 아님을 알고 있는가? "제발 공부 좀 해라!" "컴퓨터 게임 좀 하지 마라!" "넌, 맨날 스마트폰을 끼고 사니? 앞으로 뭐가 되려고 그러니?" 불행하게도, 아이들은 잔소리로 변하지 않는다. 관계만 나빠질 뿐이다. '욕심'만 버리면 잔소리가 줄어드는데, 욕심을 버리는 게 쉽지 않다.
자녀 양육을 할 때 주의할 게 있다. '부모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야 한다. 부모의 꿈을 심으려 애쓰지 말고, 아이들의 꿈을 함께 찾아가야 한다. 아이들의 재능과 특기가 무엇인지를 살펴봐야 한다.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뭘 하면 즐거워하는지? 어떤 것을 행복해 하는지? 부모는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게하고, '즐겁게 살 수 있는 것'을 하도록 허용해야 한다. 물론 적절한 통제가 불필요한 건 아니리라.
어린아이를 둔 어머니가 있었다. 아이를 훌륭하고 위대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었다. 그래서 위대한 사람이 되라고, 아인슈타인처럼 살라고 <아인슈타인 우유>를 먹였다. 그런데 아이는 아인슈타인처럼 되기는 힘들어 보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법조인이 되기를 바라면서 <서울우유>를 먹였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서울대 입학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연세대라도 가라고 <연세우유>를 먹였다. 연세대도 못갈 것 같아 건국대라도 가라고 <건국우유>를 먹였다. 그런데 건국대도 못갈 것 같아 지방대라도 가라고 <저지방우유>를 먹였다. 아이가 커 가면서 하는 행동이 지방대도 못가는 현실이 되어 대학은 못갈 것 같고 밝고 건강하게 살라고 <빙그레 우유>를 먹었다. 그 아이는 결국 세상을 밝고 건강하게 빙그레 살았다고 한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가? 돈 버는 기계로 살기를 원하는가? 많은 부모들이 '다 너희를 위한 거야!' 라고 하면서 아이들의 숨통을 옥죄고 있다. 아이들을 위한다고 하는 부모의 잔소리에 자녀들은 질식해 가고 있다. 오로지 공부를 위해서 사는 자신의 모습이 짜증스럽다.
세월호 침몰 때문에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고 있다. 그래서 매일 한 차례 이상 '사랑한다' '고맙다'고 고백하자고 한다. '사랑한다' '고맙다'는 말을 지금 말하자고 제안한다. 나도 요즘 가족 채팅을 통해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자주 고백한다. 기회가 될 때마다 자그마한 응원의 말을 전해준다. 작은 응원이 그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기 때문에.
부모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시간은 사랑의 표현이다." 시간을 내 주지 않는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애정이 없다는 사인을 보내는 것과 다름없다. 돈으로 시간을 대신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이 어린 시기에는 돈보다 시간을 함께해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버지 한 사람이 교장 백 명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고달픈 아빠들! 외로운 아빠들! 무척 수고가 많다. 한때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라는 말이 유행했다. 이제 아이들과 배우자에게 더 나은 가장의 자리를 찾아가기를 당부하고 싶다.
부모로서 정말 부담스러운 게 있다. "자녀는 부모의 말보다는 뒷모습을 보고 배운다." 말로 하는 교육은 쉽다. 많은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런데 삶으로 하는 교육은 쉽지 않다. 어떤 진리를 삶으로 살아내는 게 쉬운 건 아니니까. 그러나 자녀들은 부모의 '말'보다 '삶'을 보고 배운다. 자녀 양육의 가장 좋은 매뉴얼은 부모의 '바른 삶'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부모로서 자녀에게 꼭 해 주어야 할 것이 있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에게 '물질적 유산'을 물려주려고 애쓴다. 나쁠 건 없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 '정신적 유산, 바른 삶의 태도, 좋은 가족 문화'를 물려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영적 유산'을 물려주어야 한다. 여호수아는 말한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수 24:15)." 부모는 이 위대한 결단을 해야 한다. 아이들에게도 이 결단을 내리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아이들에게 '영적인 추억들'을 많이 만들어 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신앙'을 바로 심어주어야 한다. '영적인 우선순위'를 잃지 않도록 교육해야 한다.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가게 해야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세대'로 하여금 여호와를 알게 하는 데 실패했다(삿 2:10). 신앙교육에 실패했다. 영적인 유산을 물려주지 못했다. 나는?
'성공하기'만 바라서 공부, 공부만 하지 말고, 주님과의 교제 속에서 '행복하기'를 맛볼 줄 아는 아이로 양육해야 한다. '소유에 집착하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을 추구하도록 양육해야 한다. 그래야 훗날 후회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