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규 목사.
(Photo : 기독일보) 박석규 목사.

부활절이다.

예수 부활 했으니 할렐루야
만민 찬송 하여라 할렐루야
천사들이 즐거워 할렐루야
기쁜 찬송부르네 할렐루야

무덤 권세 이겼네 할렐루야
왕의 왕이 되셨네 할렐루야
높은 이름 세상에 할렐루야
널리 반포 하여라 할렐루야

찬송가 154장 1절과 3절이다.

예수 부활 했으니 할렐루야다
만민 찬송 하여라 할렐루야다
왕의 왕이 되셨네 할렐루야다
높은 이름 세상에 할렐루야다

촬스 웨슬레가 1739년에 작시하였다고 전해지는 이 찬송은 모두 네 절인데 절 끝마다 '할렐루야'가 나 나온다.
영국 찬송시의 天才, 大家이던 촬스 웨슬레가 예수님 부활하심에 감격하여 찬송가 154장 '예수 부활했으니' 를 쓰면서 '예수 부활'을 어떻게 완벽하고 만족하게 찬양할 단어가 없을까
찾고 찾아도 '할렐루야' 밖에 없었나보다.

그래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를 連發하고 있다.

우리도 할렐루야로
주님의 부활하심을 찬양하자.
Hallelujah !
Hallelujah !

사셨네, 사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

은혜스러운 가사에 해설을 붙이기 송구스럽다.
찬송 해설을 쓰면서 그렇게 느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오늘은 더 더욱 그렇다.
靈感을 받은 大家가 짜내고 짜낸 찬송시의 극치인데 무슨 해설이 필요할까...
그저 할렐루야! 할렐루야! 를 부를 뿐이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다.
부활 없는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부활에서 시작했다.
기독교의 중심이 부활이다.
기초가 부활이요, 기둥이 부활이요, 완성이 부활이다.

초대교회 신자를 보라.
그들은
주님의 부활하신 빈 무덤을 보았다.
부활하신 주님도 만났다.
말씀도 들었다.
그분과 사십일을 함께 있었다.
주님께서 저들이 보는 앞에서 다시 오시마 약속하시며 승천하셨다.

주님의 부활을 숨기거나 감추어 덮어 보려고 로마 권력이 氣를 썼다.
그러나 虛事였다.
진리는 막을 수 없다.
진리는 끝내 승리한다
인류 역사가 보여주는 不變의 교훈이다.

초대교회 신도들은
부활의 증인이라는 이유로 고문 당하고 옥에 갇히고 형장으로 끌려갔다.
그러나 부활을 보았기에 부활을 믿기에 죽음 앞에서 웃으며 기뻐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이 말씀 믿을진대 우리 신앙도 부활하자.
부활 신앙을 회복하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하던 그 신앙
그 부활 신앙으로 돌아가자.

예수님 다시 말씀하신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부활하사고 승천하사 하나님 우편에 계신 주님
다메섹서 사울에게 나타나시고
올더스게잇에서 웨슬레에게 나타나시고
영암 기도원에 나타나셨던 사모하는 나의 주님!

할렐루야 !
할렐루야 !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살거에요...

부활을 믿는 감격 없이는 가슴 설레이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부활을 찬양하는 신앙이 없이 그리스도인 된 보람을 느낄 수 없다.
부활의 소망을 믿지 않고는 희망도 없다.